[리뷰] 제5회 로맨스릴러 우승후보작. 공모(감상)

대상작품: 파리이야기 (작가: 클레이븐, 작품정보)
리뷰어: 슬픈거북이, 2시간 전, 조회 17

1. 굉장히 도발적인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제5회 로맨스릴러 우승후보작.”

저는 이 작품을 굉장히 강렬하고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봤거든요.

원래는 좀 촐싹대면서 주접을 떨어보려고 했습니다.

이 소설은 어쩌고 장점과 이런 어쩌고 견지에서 라면서요.

 

문제는 제목을 달아놓고 생각해보니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보는 안목이 있나?”

“내 소설 부터가 브릿G 추천작들이랑 거리도 멀고 성향이 안 맞는데?”

“괜히 남의 작품에 우승후보작이라고 어그로를 끌고 유탄맞게 하는 거 아냐? 그건 민폐인데…”

 

쭈글해져서 자기 검열을 열심히 해보다가

마침내, 결론을 냈습니다.

“안되면 되게하라. 이것이 우승후보라고 내가 설득해보리라!”

 

제목 – 제5회 로맨스릴러 우승후보작.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2. 장르 바디호러.

바디호러라는게 뭔지는 브릿G에 와서 클레이븐님의 작품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걸 반복해서 쓰네? 흠. 태그 바디호러? 어? 이런 맛이로군. 이거… 음. 아무래도 자기 몸이 붕괴되는 걸 통해 공포를 주는 거 같은데… 아?!!”

작품을 보면서,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1)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86년 영화 플라이
2) 프랜시스 베이컨 (화가)

이제부터 1), 2)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올리고 3) 제가 받은 감상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3.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플라이.

플라이는 바디호러를 이야기할 때 거의 교과서처럼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한 천재 과학자가 순간이동 장치를 개발합니다.
그런데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순간, 캡슐 안에 들어와 있던 파리 한 마리와 유전적으로 섞여버립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저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더 강해지고, 더 민첩해지고, 더 자신만만해집니다.

그러니까 플라이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괴물이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진화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몸이 무너집니다.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과 치아가 빠지고, 식욕과 감각이 변하고, 인간이었던 몸은 점점 인간의 형상을 벗어납니다.

여기서 바디호러의 핵심이 나옵니다.

몸이 변하면, 나는 아직 나인가?

플라이의 공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인공 세스 브런들은 어느 순간까지는 여전히 말하고,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다른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는 아직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었던 기억을 가진 다른 생물인가?
정신이 남아 있으면 인간인가?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함께 무너지는가?

바디호러는 단순히 “징그러운 몸”을 보여주는 장르가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지점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 결과 내가 나라는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플라이는 괴물 영화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비극입니다.

괴물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괴물이 내 몸 안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 괴물이 완전히 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괴물은 여전히 나입니다.

혹은, 나였던 것입니다.

 

4.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은 20세기 회화에서 인간의 몸을 가장 불안하고 잔혹하게 그린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사람의 얼굴과 몸이 뒤틀려 있습니다.
입은 비명처럼 벌어져 있고, 얼굴은 뭉개져 있으며, 몸은 고깃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끔찍하게 그리려는 그림이 아닙니다.

베이컨의 그림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디까지 망가져도 인간인가?

얼굴이 뭉개져도 인간인가?
말이 비명으로 무너져도 인간인가?
몸이 고기처럼 보여도 인간인가?
권위와 품위와 이성이 벗겨진 뒤에도, 그 안에 인간이 남아 있는가?

이 지점에서 베이컨은 바디호러와 강하게 맞닿습니다.

바디호러가 몸의 붕괴를 통해 정체성의 붕괴를 보여준다면,
베이컨은 회화 안에서 이미 그 일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인간을 정신이나 영혼의 차원에서 고귀하게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살, 입, 얼굴, 고통, 욕망, 죽음 같은 육체의 조건 안에서 들여다봅니다.

그래서 베이컨의 그림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인간은 고상한 관념이기 전에, 먼저 손상 가능한 몸이다.

그리고 바디호러는 바로 그 손상 가능한 몸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경계를 시험합니다.

 

5. 그래서 이 작품에서 제가 받은 감상

여기까지 길게 돌아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클레이븐님의 작품이 제게 단순한 괴기담으로 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바디호러의 충실한 재현이나 단순한 요소의 차용, 혹은 오마주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높은 평가를 하지않았을 것 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몸이 무너지고, 변형되고, 침식되는 공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강하게 느낀 것은 그 너머였습니다.

 

플라이 & 베이컨의 그림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이성, 정신, 영혼, 품위 같은 말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더 면밀히 관찰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은 몸으로부터 귀속되고 제한받습니다.

정신도 몸을 통해 드러납니다.

욕망도 몸을 통해 드러납니다.

고통도 몸을 통해 드러납니다.

사랑조차 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여기에 로맨스 한 방울을 섞은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무엇일까요?”

 

수 없는 매체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끝없이 그리고 다양한 해석이 오갑니다.
저마다의 메세지로 그것을 정의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저만 해도 사랑을 지배나 권력, 인정투정으로 해석하는 등 별별 말을 다 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에서의 사랑을 조금 다르게 보았습니다.

물론 사랑은 독자에게 문학적, 정서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육체라는 것이 목적하는 궁극의 지향점.

 

네. 불완전한 고기덩어리인 인간의 육체가 추구하는 귀결점.

바로 ‘번식’입니다.

 

주인공은 사랑을 거부당합니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서도, 심지어 부모에게서도.

“오빤 좋은사람이야.”

하지만 거부당합니다.

오로지 그의 육체 때문에.

태생부터 일그러진 육체.

“파리의 얼굴.”

여기엔 그 어떤 구원도 없습니다.

파리 얼굴이 징그럽다거나, 부서진 머리에서 오는 분열이 끔찍하다는 감각.
그 이전에, 바디호러가 던지는 “내가 나인가?”라는 정체성의 공포.
그보다도 더 앞에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 그 육체가 가진 존재성 자체가 부정받는 참혹함. ]

 

그리고 그것이 거부당한 사랑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이 작품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정서적으로도 훌륭합니다.
이런 분석 이전에, 소설 끝자락에서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으니까요.

 

“와… X나 비참하다… ‘고급’스럽게.”

 

6. 로맨스릴러 우승후보작(?)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자격도 없는 내가 이걸 우승후보작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마지막 되새김 끝에 주장해봅니다.

“작품성이 있으니” 남은 건 취향과 평가기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로맨스와 스릴러의 밸런스에 주목한다면 강한 후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디호러라는 장르로 로맨스와 조화를 이룬 작품성을 본다면, 이만한 소설을 또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로맨스물로는 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약한 로맨스가 바디호러의 장르성을 미친듯이 폭발시킨다.

(저는 이 작품이 장르적 성취만 놓고 보면 정말 최고 수준이라고 봤습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이번 5회 로맨스릴러 우승후보작이 틀림없다고 말입니다.

왜냐면 우승작은

.

.

.

분명 제 소설이니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건 real 농담입니다. 진짜로요.)

 

제가 쓰는게 올바른 리뷰인지 늘 망설이지만, 항상 용기를 가지고 올려봅니다.

(등록 클릭할 때마다. 손이 덜덜 떨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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