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연금술 1: 금과 니그레도 비평

대상작품: 황금의 서사 – Epic of Gold (작가: 슬픈거북이,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6시간 전, 조회 26

이 리뷰는 2026년 3월 6일 연재분인 33화 – 1부 에필로그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 악마와 계약할 때는 영혼을 건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악마는 어떤 영혼을 원할까요? 그리고 그 영혼으로 무엇을 할까요. 악마와 계약을 원하는 이들은 대체로 시작부터 타락하고 저급한 영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욕망과 천박한 속내를 악마와의 계약과 마법으로 빠르게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악마 쪽에서 먼저 계약을 원하는 영혼, 더하여 악마를 조복시킬 수 있는 영혼은 사실 정반대입니다. 선악을 초월하여, 고귀하고 순수하고 맑은 영혼. 칠죄종의 악마는 물론, 아르스 게티아의 악마들 72위, 그리고 그 이외의 여러 이름난 악마를 다루는 마법서에서 그토록 금욕과 정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입니다.

사실 그쯤 되는 영혼이면 그 영혼이 행하고자 하는 것이 선이든 악이든, 세계가 그 앞뒤에서 인과를 짜 맞춰준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혹자는 이를 연금술의 작용이라고 봅니다. 연금술은 흔히 현자의 돌, 그리고 납을 황금으로 바꾸는 기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개인의 조각난 영혼을 정제하고 통합하여 초월하여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바꾸거나 자신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바꾸는 기예, 즉 영혼 연금술에 더 중점을 둡니다.

 

슬픈거북이 작가님의 <황금의 서사 – Epic of Gold>를 리뷰하면서 악마의 계약을 짚고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고, 연금술은 왜 이야기했을까요?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과 야금학이 결을 같이 했다가 갈라졌기 때문일까요?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애초에 1부의 주인공 루카 오라피니는 금 세공사이지 연금술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연금술은 이 작품을 다각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굉장히 좋은 소재입니다. 작품 내적으로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세계의 흐름을 살피기 좋고, 작품 외적으로는 슬픈거북이 작가님이 어디를 향해가는지, 어디로 향해가면 좋을지 짚어드리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작용하는 연금술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납에서 시작하여 황금과 현자의 돌을 향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작품 내적인 부분에서 작용하는 연금술은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황금에서 시작하여 납으로, 혹은 그보다도 더 비천한 것으로 굴러떨어질 것입니다. 마치 악마와 계약한 고귀한 영혼이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타락하듯이. 그렇기에 이 리뷰 시리즈의 제목은 ‘악마의 연금술’이 될 것입니다.

 

 

 

루카 오라피니: 황금의 악마가 탐낸 고귀한 영혼

루카 오라피니는 칠죄종의 악마 중 탐욕의 악마 마몬과 계약한 자입니다. 그러나 마몬은 루카 오라피니를 자신이나 다른 악마들보다도 높게 평가합니다. 1부 마지막에 드러나기를, 마몬은 자신과 계약하기 위해 찾아온 13살의 루카에게 시험을 내었습니다. 금화 한 닢과 주머니 하나. 자신 있으면 이 주머니를 전부 채워와라. 마몬은 금화를 환전해 동화 수백 닢으로 만들어 주머니를 채워오는 것이 정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실제로 많은 계약자가 그렇게 했겠지요. 그러나 루카 오라피니는 3년에 걸쳐 길드의 재무담당이 되어 주머니 안을 전부 금화로 채워왔습니다.

고귀한 금속인 황금을 구리로 바꾸는 것은 연금술의 관점에서 보면 타락에 가깝습니다. 흔히 생각나는 악마의 방식이지요. 그 마몬조차도 이것이 정론이라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루카 오라피니는 하나의 금화를 주머니 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금화로 만들어왔습니다. 연금술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승화이며 초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몬에게 있어 루카 오라피니는 더는 여느 계약자처럼 먹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동반자이자 친구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루카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복수귀’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명분과 깨끗한 수단을 쓰더라도 복수는 하는 사람의 영혼에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고스족 차림의 악마 숭배자들과 영유아 인신 공양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좌도(Left-Hand Path)에서도, 복수에 대해서는 ‘도끼를 땅에 묻어라.’라는 격언과 함께 복수를 직접 행하기보다는 복수에 써야 할 감정과 생명력을 더 생산적이고 훌륭한 일에 쓰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루카는 복수를 위해 악마, 그것도 일곱 죄악 중 일각인 탐욕의 대악마인 마몬과 계약했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타락을 각오한 것입니다.

하지만 루카는 그렇게 얻은 악마의 힘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현실적인 조형의 성수반, 위조 금화에 대응하기 위한 속임수, 로슈포르와의 대결 등 복수에 필요한 순간에는 충분하게 능력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용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황금을 비롯하여 금속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었고, 그 능력의 출처가 탐욕의 악마인 마몬이라면 복수는 뒷전이고 부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는 타락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루카는 자신의 부를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세웠고, 악마마저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는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복수를 완성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저는 개인적으로 연금술, 특히 ‘발효’의 표본과도 같은 결과물로 봅니다. 연금술의 단계는 적게는 3단계, 많게는 14단계까지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연금술을 12단계로 나누는 체계 중 일부는 제9단계를 ‘발효’로 표현합니다. 이는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재료가 어떤 물질과 만나 그 성질을 바꾸거나 자신과 동화시키거나 그 결과물로 제3의 물질이 되는 과정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루카는 악마의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촉매 삼아 또 다른 위업을 이뤘다고 볼 수 있기에, 이 과정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발효’는 그 이면에서 ‘부패’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발효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 물질이 투입되면 그것들은 반응 과정에서 부패하거나 불순물로 남아 폐기될 수 있습니다. 루카가 로렌초 추기경에게 복수하고, 로슈포르만 남겨놨을 때 계약자들 사이에 숨은 배신자가 처단되었던 것도 발효의 부(副)작용으로 발생한 부패와 그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제 과정을 거쳐서 루카는 자신의 복수를 성취하는 것은 물론, 마몬과 합의하여 계약을 해지할뿐더러 오히려 마몬에게 도움을 남기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악마에게 팔아버린 영혼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루카는 어떤 면에서 그 대가로 초월을 얻었다 할 수 있겠네요.

 

 

13세기 베니스의 두카트: 금을 납으로 떨구는 니그레도

루카의 목적 중 하나는 교황청에 비밀 은행을 세우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금본위제를 위시한 초기 자본주의의 태동에 해당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마린기, 로렌초, 로슈포르는 각각 길드 중심의 기존 상업 체계, 타락한 종교적 권위, 귀족과 국가 중심의 세속적 권력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황금에 의해 루카에게 패망했으며, 루카가 쌓아 올린 금본위제의 토대는 향후 500년간 유지될 것이라고 언급됩니다. 실제로 베네치아의 두카트는 오랫동안 기축통화가 되어 유통됩니다.

루카의 복수가 개인의 관점에서 발생한 연금술이라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초기 금본위제 시스템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상 안에서 벌어지는 연금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 5부에 걸쳐 진행될 전체 서사를 고려했을 때, 1부의 서사는 자본주의의 ‘니그레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금술을 3단계에서 5단계 정도로 나누는 체계에서는 항상 첫 번째 단계로 ‘흑화’ 즉 ‘니그레도(Nigredo)’를 진행합니다. 납, 어둠, 죽음, 연소, 부패 등으로도 표현되는 이 단계는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재료들을 끝없이 태우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질료는 모든 면이 균일하게 검은 재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불순물을 일차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이고, 이를 정제하는 것으로부터 연금술의 다음 과정이 시작됩니다. 부패라고 한다면, 마치 땅에 떨어진 과육이 썩고 그 안에서 씨앗이 드러나는 과정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루카의 복수 대상이 상징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황금, 혹은 현자의 돌이 만들어지는 연금술에서 맨 먼저 태워지고 썩어버려서 없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길드 중심의 상업 체계는 제 살을 썩혀내어 그 안에 숨은 산업 중심 상업 체계라는 씨앗이 드러내야 하고,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은 태워져서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시민들에게 그 힘을 넘겨줘야 합니다. 마침, 로렌초 추기경이 루카와 시민들의 분노에 끌려 내려와 화형당한 것이 대표적인 흑화의 사례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러나 흑화의 상징은 어디까지나 ‘납’입니다. 황금이 낄 자리는 여기에 없습니다. 흑화의 결과가 금이라면, 연금술의 최종단계는 무엇이 되는 걸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 연금술의 주체는 악마입니다. 탐욕과 배금주의의 악마인 마몬입니다. 악마의 연금술 앞에서 황금의 가치는 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금본위제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금이 가치를 잃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금속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기축통화로서의 가치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이제 은, 동, 종이 쪼가리,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허구의 존재로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체계가 영원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루카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카는 마몬에게 언젠가 필요해질 것들을 남깁니다. 이것의 정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마몬이 자본주의라는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거나, 자본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상대로 연금술을 할 때 사용하게 될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디까지 승화, 혹은 타락하게 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우리는 현실에서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과도기적인 문장 형식: 검게 태워져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황금의 서사 – Epic of Gold>는 여러모로 독특한 구성을 많이 취한 작품입니다. 흔히 말하는 순문학, 장르문학, 그리고 웹소설과 견주었을 때 상당히 생소하죠. 그 어느 장르의 독자가 읽어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형태입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이유로 첫인상에서부터 읽는 것을 포기한 독자들도 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첫인상은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읽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맛이 났습니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이 독특한 문장 형태가 저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나 비극, 그리고 운문에서 산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들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운율이나 특정한 형식적 규격을 맞추기 위해 강제되는 개행, 한 사람의 것인지 대화의 일부인지 구분되지 않는 대사, 소설이 아니라 극을 보는 듯한 인물들의 언행. 대놓고 그러한 장르를 노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효과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의도하지 않았기에 미숙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장의 형태는 논리의 기본입니다. 작품의 주제와 이를 도출하는 논리적 전개에서 문장 형태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연체를 쓰더라도 잘 읽히려면 문장 내부의 형태와 논리 구조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트렌드는 직관적인 문장입니다. 긴 문장도 안에서 쉼표나, ‘인용부호’를 이용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예 서사시나 그리스 비극의 형태와 장르를 의도하지 않은 이상, 강제 개행과 주체가 불분명한 대사들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그레도, 흑화는 이렇게 정리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고 태우는 작업입니다. 연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분석심리학의 카를 융은 흑화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쳐야 할 것, 깎아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태워야 할 것, 썩혀야 할 것을 직면하는 과정이지요. 물론 고통스럽고, 때로는 억울할 것입니다. 버려야 하는 것들을 아까워하며 손에서 놓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몬과 계약한 양 탐욕을 부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카를 융이 말하는 연금술의 최종 종착지, 즉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통합 과정에 꼭 필요한 과정이고 흑화 과정에서 탈락한 것은 새로운 형태로 승화되어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문장 형태를 제대로 다듬어야만,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제대로 갈무리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골적인 서사 구조: 태우고 남은 ‘핵심’

<황금의 서사 – Epic of Gold>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중에서, 서사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장 형태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전체 서사를 구성하는 구조의 독특함은 겉으로 드러난 무대장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흑화와 관련지어 비유하자면, 전소한 건물에서 드러나는 새까만 철골과도 같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말 그대로 ‘노골(露骨)’입니다. 뼈대가 이슬에 젖을 정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 이러한 감상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대목은 역시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터루드입니다.

인터루드는 작품의 의도와 서사의 설계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품 집필을 위한 자료조사는 작가님이 직접 하셨겠지만,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조사한 내용을 검토했음이 인터루드에서 고스란히 들어옵니다. 어디서 어떻게 변주를 줄 것인지, 독자들에게 의도된 혼란과 명쾌한 해답을 줄 타이밍이 어디인지, 작가님이 고민한 지점도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읽는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독자에게 감상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전부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색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와 효과를 나타내는 문학 용어가 있습니다. ‘소격 효과’입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고안한 ‘소격 효과’의 기본적인 의도는 관객, 문학에서는 독자를 낯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무대장치 드러내기’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볼 일이 없고 관심도 없을 무대장치, 무대에서 퇴장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는 무대의 뒷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의 감정적 이입을 차단하고, 지금 접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더 나아가,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하지요.

이 작품의 인터루드가 바로 이러한 작용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핀 문장 형태의 미숙함과는 달리, 인터루드의 삽입만큼은 작가님의 분명한 의도가 보입니다. 서사의 핵심이 되는 뼈대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 마치 흑화의 결과물, 새까맣게 타버린 질료를 화로에서 꺼내, 이 안에 현자의 돌이 잠들어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설계하고 드러내는 방식을 고안한 데에 있어 작가님이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가 의도했던 대로 잘 설계된 것인가, 설계한 대로 잘 지어진 것인가, 지어진 대로 잘 작동하고 있는가, 최종적으로 작가의 의도대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읽히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물을 철근만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작품은 구조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는 구조 자체는 의도하신 대로 성립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여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읽히기 위해서는 구조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오늘날은 그렇습니다. 구조만 성립하고, 그것만으로 작동하면 충분하다는 논리가 문학에서 성립할 수 있는 건 딱 한순간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빠져 죽은 바다의 이름에 그 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라는 것과 같은 설명을 위해 신화가 만들어진 기원전 시대이지요.

 

외피를 거두고 뼈대를 보이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살을 내어주는 대신 뼈를 취하는 것에 의미가 있으려면, 뼈에서 뜯겨나간 외피와 살에도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그저 붙어있는 외피이고 살일 뿐이라면, 루카의 복수극은 의미를 잃습니다. 흑화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그 불순물이 무의미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흑화의 결과물을 정제하고 발효하여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흑화의 결과물만으로는 현자의 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리뷰 작성을 위해 비교적 최근의 회차인 4부 초반을 빠르게 훑었을 때 1부에서 보이는 아쉬움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입니다. 강제 개행과 분절된 대사들은 여전하지만, 나름의 운율과 형식적 미를 위해 작동합니다. 인터루드는 서사의 설계도와 작가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신, 그 자체로 하나의 운문처럼 읽히게끔 쓰여있습니다. 무대장치와 구조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대신, 인터루드를 읽을 때 독자가 느낄 거부감과 당혹감이 많이 줄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부와 3부는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분명 그 지점에서는 그 지점 나름의 이야깃거리가 있겠습니다만, 4부를 얼핏 보았을 때는 작가님 나름의 연금술이 잘 되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마몬이 자본주의와 세상을 가지고 연금술을 하는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 또 어떤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실지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고찰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를 써주고 계신 슬픈거북이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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