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를 외면한 자의 26년 공모(감상)

대상작품: 주황색 (작가: Xx,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16

열다섯 살.

서안중학교 2학년.

170cm. 이제 키를 따라 잡힐 것 같다. 발은 나보다 크다.

하루 종일 기타를 끌어안고 산다.

좋아하는 것: 기타, 친구들이 들려 준 록 음악.

장래 희망: 배우, 가수, 댄서(하지만 춤에는 소질 없음).

<33페이지>

 

독자는 처음 이 수첩을 보며 형(선민)이 살아 있는 동생(선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선우는 말을 하고, 형과 밥을 먹고, 형의 차 뒷자리에 앉는다. 선우는 살아 있다.

그 인식이 뒤집히는 것은 이야기 중반, 누나가 “다음 주 토요일이 선우 기일이잖아”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독자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를 다시 파악하게 된다. 수첩의 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이 혼자 써 내려간 것이었고, 선우와의 모든 대화와 동행은 형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다. 소설은 이 반전을 극적으로 폭로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한 문장으로 선우의 죽음을 알린다.

선우는 26년 전에 죽었다.

 

[주황색이라는 증상]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색깔이 눈에 띈 건 10월의 출근길 아침이었다”로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여고생의 머리핀, 자료에 표시된 형광펜, 저녁 식탁의 당근.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된 주황색의 과도한 선명함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기이할 정도로 변해 간다. 흑백 화면 위에 형광펜으로 덧칠해 놓은 것처럼 주황색만이 타오르는 세계. 그 증상이 가장 극단에 달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색이 잿빛으로 바뀌고 주황색만이 홀로 남는다.

이 증상의 기원은 소설 후반부에서야 드러난다. 11월의 오후, 열한 살의 형이 여섯 살 선우를 컨테이너에 데려가 라이터 기름에 불을 붙인 순간. 선우의 주황색 공룡 티셔츠 위로 불길이 옮겨붙었다. 그리고 형은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 불길은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주황색은 따라서 단순한 심리적 이상 증세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기억이 신체적 감각의 형태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26년간 단단히 눌러온 죄책감이 더 이상 의식의 통제를 받지 못하게 되는 시점에서, 그 기억은 눈에 보이는 색깔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나 억압된 죄의식이 특정 감각의 과민으로 발현되는 것은 알려진 현상이다. 소설은 이를 정확하게 포착해 소재로 삼았다.

 

[수첩이라는 피조물]

소설에서 가장 서늘하게 읽히는 대목은 형이 수첩 속 선우를 설계한 원칙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너무 잘나면 안 된다. 나와 누나처럼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모든 앞가림을 직접 해서 나를 떠나게 된다.

형이 만들어낸 선우는 재능은 있지만 운이 없는 뮤지션이다. 홍대 클럽을 전전하고, 월세를 못 내고, 연습실 비용을 형에게 손 벌려야 하는 존재. 영원히 형의 그늘 아래 있어야 하는, 형이 돈을 대줘야만 음악을 할 수 있는 동생.
이것은 그리움이 아니다. 형은 자신에게 필요한 형태로만 선우를 살아있게 했다. 선우를 놓아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놓아줄 수 없었던 자신의 죄책감을 ‘선우’의 형태 안에 가두어 둔 것이다.

수첩의 첫 페이지는 선우가 여덟 살일 때이고, 마지막 기록은 서른두 살이다. 형은 열세 살에 수첩을 쓰기 시작해서 1년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열네 살 11월의 어느 아침, 그 상상 그대로 선우를 만난다. 26년에 걸쳐 선우를 스물네 살이나 나이 먹게 한 셈이다. 그 시간 동안 형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서른일곱이 되었다. 현실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수첩 속 선우는 형의 통제 아래 적당히 실패하고 적당히 철없이 머물러 있었다.

애도는 상실을 인정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형이 한 것은 그 반대였다. 형은 현실의 일부를 조금씩 갈아서 환상 속에 집어넣으며, 선우를 잃었다는 사실을 26년 동안 유예해 왔다.

 

[엄마라는 거울]

이 소설에서 간과될 수 있는 인물은 엄마다. 엄마는 20년이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선우의 죽음 이후 무너진 것이다. 형은 유전적 발병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정신과 진료를 기피한다. 그리고 엄마처럼 갇히게 될까 봐 끝까지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다. 엄마는 선우를 잃은 뒤 현실 바깥으로 떠났고, 형은 수첩이라는 방식으로 현실 바깥에 선우를 붙잡아 두었다. 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유전적 질환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은 이 두 사람의 유사성을 단순히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면회 장면의 마지막에서, 엄마는 형을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근데 선민아, 애가 예술 한다니까, 머리 기르고 문신한 건 그렇다고 치자.”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11월인데 왜 저렇게 얇게 입혀 놨어. 애가 춥잖니.”

 

엄마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소설은 엄마가 형의 어깨 너머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적는다. 형의 뒤 어딘가에, 얇은 티셔츠 하나를 입고 서 있는 선우를 보고 건네는 말이다.

선우는 형의 수첩 속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이 한 장면에서 조용히 열린다. 20년 넘게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도, 선우를 보고 있다.

오랜 세월 정신의 균열을 안고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단순한 망상의 공유인지, 아니면 선우라는 존재가 이 가족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실재하는 무언가인지를 소설은 끝까지 확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소설이 호러로 작동하는 1차 시점이다. 이 장면 이후, 형의 증상은 급격히 악화된다. 엄마의 눈이 닿은 방향을 형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말의 이중 구조]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은 불타는 연습실 건물 안으로 뛰어든다. 이 행동은 선우를 구하려는 것처럼 읽히지만, 그렇지 않다. 형 자신도 알고 있다. 연습실에 선우가 없다는 것을. 그곳은 형이 매달 월세를 내며 유지해온 빈 공간일 뿐이라는 것을.

형이 뛰어드는 것은 26년간 유지해온 환상의 완성이다. 수첩을 불길 속에 던져 넣는 행위, “수첩은 가짜를 진짜로 만들 때나 쓰는 것”이라는 독백, 그리고 “다시는 너를 떠나지 않을게”라는 마지막 말.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환상의 완전한 잠식이다.

소설은 여기서 두 가지 공포를 동시에 건다. 첫 번째는 심리적 공포다.

뜨겁지 않았다. 따뜻했다.

파국이 구원처럼 느껴지는 순간, 26년간의 죄책감으로 소진된 한 인간이 마침내 자신을 환상 속에 녹여 버리는 순간의 감각이, 이 소설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이자 결말이다.

두 번째는 장르적 공포다. 소설은 끝까지 그 불길이 형의 내면이 만들어낸 환각인지, 아니면 어떤 초자연적 힘에 의해 실체화된 것인지를 확정하지 않는다. 엄마가 보았던 그 방향, 거기에 정말로 선우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불길 속에서 형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된다. 어느 쪽으로 읽든 결말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형은 구원받지 못했고, 선우 역시 편히 가지 못했다.

무지개 그림에서 주황색이 빠져 있는 것을 형이 발견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애도의 불가능을 상징한다. 주황색이 없는 세계란, 선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다. 형은 그 세계로 돌아가는 대신, 선우가 있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쪽을 택한다.

 

[이 소설이 남기는 것]

「주황색」은 죄책감에 관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그 죄책감을 직면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애도조차 하지 못한 인간에 관한 소설이다. 형은 한 번도 제대로 울지 않았다. 선우를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이라는 도구 안에 선우를 살려두고, 그 선우와 매일 대화하며 26년을 버텼다. 죄책감을 직면하는 순간 무너질 것을 알았기에, 형은 끝까지 그 앞에 서지 않았다. 그리고 애도는, 직면 없이는 시작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에는 처음부터 출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형은 끝내 선우에게 진짜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우 역시, 형의 손 안에서 26년 동안 진짜로 죽지 못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선우는 외쳤다. “형아, 절대 놓으면 안 돼!” 형은 대답했다. “걱정 마. 나는 너를 절대 놓지 않아. 평생 잡아 줄 거야.”

형은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다. 다만 그 놓지 않는 방식이,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붙드는 방식은 아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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