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맞닿을 수 없던 오른손과 왼손 공모(감상)

대상작품: 나의 오른손과 너의 왼손을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은율e, 2시간 전, 조회 20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는 그저 흔한 사별 로맨스에 과학적 설정을 한 스푼 얹은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지금, 나는 완전히 거대하고 서늘한 우주적 허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해지지 않는 인간의 실존적 사랑 앞에 압도당해 있다. 분자생물학의 ‘카이랄성’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이토록 가슴 아픈 단절의 메타포가 될 수 있다니, 작가의 정교한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유리벽이라는 절대적인 절망, 그리고 인간의 체온

형태는 완벽히 같지만 결코 포개어질 수 없는 거울상 인간. 죽은 아내가 부활했다는 기쁨도 잠시, 남편과 딸의 손이 격리실의 차가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할 때의 묘사는 읽는 내내 가슴을 턱 막히게 했다.

“유리에 손을 대면 나는 늘 촉촉하고 따뜻했던 네 손이 아닌 건조하고 차갑고 딱딱한 감촉만을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 정보나 시각적 이미지가 아무리 완벽해도 인간 본연의 ‘피부적 접촉과 체온’을 대체할 수 없다는 그 지독한 결핍이, 격리실 밖에서 매일 나이 들고 변화하는 남편과 딸의 지극히 현실적인 시간과 대비되며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유리벽 안에서 자신만의 ‘거울상 바이오스피어’를 증식해가던 유미의 고독이 얼마나 깊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과학의 사각지대를 뚫고 들어온 악의와 두 번째 죽음

소설 후반부, 첨단 방역 시스템으로 격리실을 통제하던 남편의 시선 뒤로 펼쳐지는 ‘소리굽쇠 테러’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소름 돋는 클라이맥스였다. 인간은 미생물이라는 생물학적 오염만을 완벽히 통제하려 자만했지만, 증오에 눈먼 테러리스트들은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하는 ‘물리적 공명’과 ‘화학적 독극물’을 이용해 유미를 다시 한번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인간의 통제력을 비웃는 이 잔인하고 정교한 파국 앞에서, 기술 만능주의가 가진 치명적인 맹점을 ..

지상을 떠나 우주의 별이 된 영혼

두 번째 죽음 이후 유미가 남긴 유언은 이 소설을 단순한 디스토피아 SF에서 거대한 철학적 서사로 격상시킨다. 지상의 좁은 격리실 안에서 위저 보드를 그리며 찰나의 실존 앞에 떨던 그녀는, 마침내 지구라는 새장을 떠나 확률이 0%에 수렴하는 심우주의 허공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진리란 다가갈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것”이라는 대사처럼, 신이 설계한 우주의 비대칭성을 끝내 풀지 못한 인간이 선택한 마지막 망명이 외롭기보다 오히려 거대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가장 과학적이고 숭고한 형태의 애도

이 소설의 진짜 아름다움은 마지막 결말에 숨겨져 있다. 유미를 향한 재희의 오랜, 포개어질 수 없었던 동성(同性)의 사랑을 깨달은 남편이 마침내 무력감을 깨고 내린 결단. 자신 또한 ‘거울 세포’가 되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간 아내의 곁으로 향하겠다는 마지막 선택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도입부의 거울이야기가 소설이 끝날 때 까지 배경 음악처럼 깔리는 묘한 매력이 여운처럼 남는다.

지구라는 현실에서는 카이랄성의 장벽 때문에 단 1밀리미터도 맞닿을 수 없었던 ‘나의 오른손’과 ‘너의 왼손’. 마침내 저 먼 우주라는 비대칭의 시공간 속에서 미세한 세포의 형태로 포개어져 새로운 창세기를 시작할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상실을 마주한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애도의 종착지를 보여준,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명작이다.

-저는 리뷰 이벤트에 응모하진 않는, 그냥 순수한 감상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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