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공모(감상)

대상작품: 두절된 약속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슬픈거북이, 1시간 전, 조회 12

1. 스토리 요약.

배경은 가상현실 시스템 VeX입니다.
대인은 VeX 또는 그 안의 레이어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개발자입니다.
그는 실험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 팀원들, 주변 인물들을 테스트에 참여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날 낙뢰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사고로 아들은 현실 육체를 잃고, VeX 내부 또는 미로 같은 가상공간 안에 의식만 남게 됩니다.
대인은 이 일을 단순 사고처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개발 과정의 무리한 실험, 위험 은폐, 책임 회피가 얽혀 있습니다.

이후 가상공간 안에서는 이상현상이 계속 발생합니다.

대인은 서옥이라는 무당, 혹은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부릅니다.
표면상 의뢰는 “프로그램 안에 남은 아이의 영혼을 처리해 달라”, “제령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인은 아이가 이미 죽었고, 남은 것은 위험한 잔재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서옥은 상황을 다르게 봅니다.
아이의 영혼은 단순히 해로운 악령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이해받지 못한 채 남겨진 존재입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 왜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했는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가상공간 안에서 서옥은 아이와 만나고,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아이는 피터 삼촌과 신디 이모를 구하고 싶어 하며,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복수심보다는, 인정받고 싶다는 미련이 강합니다.

반대로 대인은 아이를 구해야 할 존재라기보다 제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합니다.
그는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려 하고, 아이의 존재를 “데이터”, “오류”, “프로젝트 실패의 증거”처럼 봅니다.
서옥은 그런 대인에게 아이를 직접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대인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대인은 아이를 사랑 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부담스럽고 실패의 상징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무능, 책임, 죄책감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를 미워했습니다.
아이가 죽거나 사라지면 프로젝트도, 자기 죄책감도 정리될 수 있다고 여긴 면이 있습니다.

서옥은 대인을 몰아붙입니다.
그가 아이를 “해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을 지우려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대인은 결국 아이를 왜 미워했는지, 왜 버렸는지, 왜 외면했는지를 실토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사과합니다.

아이 역시 아버지에게 미련을 풀어놓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동시에 사랑받고 싶었다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아이의 원한은 단순히 죽음 때문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는 감정,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지막에 서옥은 겉으로는 아이를 성불시킨 것처럼 행동합니다.
대인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습니다. VeX 안의 위험한 존재가 사라졌고, 아이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옥은 아이를 완전히 없애지 않습니다.
아이를 몰래 VeX 안에 풀어줍니다. 즉, 제령해서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숨겨둔 것입니다.

결말에서 대인은 아이가 사라졌다고 믿고, 앞으로 아이의 데이터 흔적을 지우려 합니다.
반면 서옥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킨 채 떠납니다.
아이는 완전히 성불한 것이 아니라, VeX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가능성을 얻은 상태입니다.

2. 감상.

이 작품은 좀 편하게 말해보려고 합니다.

왜냐면, 하아… 뭐랄까. 살짝 보기 힘드네요.
리뷰를 할때 작품의 특장점이나 이야기를 돋보이는데 주력해야 하는데, 글을 보고 나니 집중이 안됩니다.

거두절미 결과만 놓고 보면, 잘 쓴 작품입니다.
감정이입이 되다 못해. 타자치는 손이 떨리게 까지…
글을 다 보니까 구조고, 분석이고 다른 생각은 휘발되고 빡이 칩니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들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리지 않나 싶습니다.
보면서 트라우마가 막 솟아납니다.
세대갈등이나, 가부장등 할 이야기가 끝도 없이 솟구칩니다.

억울함. 분함. 괴로움.

주빈이라는 아이는 순순히 아버지를 용서했지만,
저는 그렇게는 못할거 같거든요. 크크크.

이제는 감정이라는게 다소 무뎌진 나이인데…
이렇게 몰입이 되는 작품은 드물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비단 저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낄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이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작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이 것입니다.

[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3. 역접.

SF에 무속이 웬말이냐?

물론, 저는 말이 된다고 봅니다.
반도체, IT등 첨단산업 공장 짓는데 아직도 고사지내는 판이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뉴럴링크나 전자 생명체, 아날로그의 디지털 변환 등.
가상세계로 현실의 일부를 옮기려는 실험들은 계속 시도되고 있고, 일부 성과도 있습니다.
소설적으로도 종교나, 무속이 SF에 적용되는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또 제법 많이 시연되었습니다.

다만, 소설을 보면서 계속 느낀건 이겁니다.

“뭐가 이래?”

왜냐면, 보통은 상식적으로 접속이 안되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텔링이나, 배경설명 등 근거를 늘어놓는 법이 거든요.

독자한테 읽히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깔아놓는 작업이라는게 존재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거 전혀 없이 뻔뻔합니다.

뻔뻔하게 달려요.
설정 설명이나 배경 해설로 설득하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밀고 갑니다.

골때립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은 망하거든요.
쎈 훅을 배열해서, 억지로 끝까지 독자를 끌어버리든지 그런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게 없다고 보입니다.

골때립니다. 근데 술술 잘 읽혀요…
왜? 모르겠습니다. 크크크.
작가가 뭔 수를 쓴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나름대로 추측하기론, 개념이나 설정. 배경에 빠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독자를 훅 붙들어버리고 내려가니까 그런건가?
추측해보는데 작품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고든램지가 새우랑 카라멜 팝콘을 섞은 요리를 보고는
그게 뭔 X같은 음식이야? 라고 소리치는 밈 보신 적 있으신가요? (검색해보니 랍스터 팝콘이네요.)

딱 그 심정입니다.

도대체… 이게 왜 맛있는거지?

4. 순접.

장르적으로 이상하게 섞는건 저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다만 이 소설을 보면서 계속 특이하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이겁니다.

뭔가 다른 놈들을 전부 이어서 용접을 했다는 건 알겠는데,
용접한 부분이 안보인다는 거.

SF, 호러, 무속, 드라마. 별게 다 있습니다.
장르 각각이 있는 건 알겠는데 또 그게 막 눈에 띄는 특징은 없어요.
뭐랄까… 하나하나를 따로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밍밍합니다.

근데 합쳐놓으면 분명히 맛이 달라요.
밸런스가 갑자기 황금 비가 되나? (아닌데… 보통 망하는…)

리뷰로 감상까지 남기면서, 쓰면서 계속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이게 왜 맛있는거지?

모르겠습니다. 보면서 이렇게 원리가 안보이는 건 거의 첨봅니다.
크크크크크크크. 돌겠네…

결국, 그냥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고급 술과 싸구려 술을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맛이 아닙니다.

바로, 향과 목넘김입니다.

이 두가지로 몇십만원 돈 차이가 나죠.

이 소설은 도수가 제법 높은 술입니다.
불편한 이야기, 그리고 조화되지 않는 배경들.

근데 거부감 없이 한달음에 원샷이 가능합니다.
목넘김이 좋습니다.

원샷 후에, 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강하게 떠오릅니다.
주제의식이 아주 강하게 뒷맛을 치고 올라옵니다.
향이 참 쎕니다. 그게 맛이에요.

제 감상은 이렇습니다.

이게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향과 목넘김. 두가지가 완벽히 갖추어졌으니 고급이라고 말이죠.

이 소설은 틀림없이 고급입니다…

잘먹었습니다.

# 리뷰하는 내내 언어가 거친것은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아버지와의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는데는, 이 소설이 효과적이었습니다.
독한 술 하나를 원샷해서, 사람이 헤까닥 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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