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고와 여운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국립존엄보장센터 (작가: 모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9월, 조회 111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보여주는 어떤 냉혹한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작품으로 쓰기에도 분명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특히 그 죽음이 예정된 죽음, 그러니까 (한때 드라마 단골소재이기도 했던) 시한부 인생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을 지켜보며 독자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66매의 짧은 단편인데도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곱씹게 만드는 여운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진신고를 통해 담담히 시설에 들어간 한 할머니입니다. 서술도 사람들의 대사도 담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시설에서, 그녀는 인생의 소중하고 좋은 추억을 되돌아보고 싶지만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잠깐의 시간을 함께한 전형준이라는 사람의 이름만 자꾸 떠오를 뿐이죠. 사실 이 장면의 의미는 전형준이라는 사람의 인상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제 자신을 상상해봤을 때, 저도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만한 딱 좋은 기억이 있을지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자식이 생존세를 대납거부해 죽으러 끌려가는 노인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버림받는 현실의 독거노인들과도 닿아 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 불우한 노후를 보내는 현실의 노인들보다야 강제로 존엄사를 당하는 작품 속 모습이 훨씬 암담하긴 하지만, 경제활동의 종료와 준비되지 않은 노후의 궁핍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면 현실 쪽도 씁쓸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판국에 국민연금이 특정 대기업에 이득을 쥐어주기 위해 몇 조의 손실을 감수하는 꼬라지를 보면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구요. 사실, 이런 현실의 부조리 때문에 작품의 극단적인 모습이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형준 씨는 편안하다고 하는 죽음이 사실은 굉장히 고통스럽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얘길 해주고는 먼저 떠난 인물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시설에서 굳이 그런 방법으로 죽음을 선사할 이유는 없지요. 그렇게 한다고 시설이 얻는 것도 없구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불안감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해서, 주인공은 잠깐 잠든 사이 악몽을 꾸게 됩니다. 꿈에서 깬 주인공은 센터의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 슬픔에 잠깁니다. 다른 편의시설도 이용해보려 했지만, 영 별 볼일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란, 별 볼일 없는 시설에서의 생활을 비웃으며 죽음을 앞당기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선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능동적인 것이었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여왕처럼’ 걸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존엄을 유지하며 마지막을 받아들입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면 그나마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다가올 죽음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않을지… 물론 죽음이 멀리 있다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알차게 살아가려 하겠지만요.

그녀의 앞선 삶이 어땠는지는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자식이 없고, 젊었을 적엔 꽤 미인이었다는 정도 말고는요. 심지어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그녀가 삶의 마지막 앞에서 느끼는 먹먹함이 주어질 뿐이지요.

그 이상의 서술은 불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익명성의 효과는 단순히 불필요한 정보를 숨기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달리 말해, 우리 중 누구라도 그녀처럼 마지막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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