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서사: 웹소설의 서사, 출판소설의 서사 의뢰(비평)

대상작품: 황금의 서사 – Epic of Gold (작가: 슬픈거북이,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2시간 전, 조회 10

1. 리뷰 의뢰를 받아 작성하므로 기존 리뷰 형식(선 요약 후 구조 분석)과 다르게 진행합니다.

2. 의뢰에 의해 1부 에필로그까지만 읽었으며, 따라서 현재 연재되고 있는 3부 서사까지 포괄한 것이 아닌, 1부 연재분에 한정해 얘기합니다.

 


0. 조금은 긴 서론

배움을 청할 기회를 언급하셨으니, 저 역시 저 자신에 대한 겸양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또한 너무 아프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 역시 나름대로 신경 써서 발언하겠으나, 실례가 되는 언급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일단 어디서부터 얘기해볼까요. 서론이 조금 길 듯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문피아, 노벨피아, 조아라 등으로 위시되는 웹소설 플랫폼의 웹소설과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 등으로 위시되는 출판사의 출판소설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출판소설-웹소설 분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는 장르소설의 경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허블, 아작, 황금가지, 엘릭시르, 북로드 등과 같은 출판사의 장르소설과 상기한 웹소설은 다르다고 봅니다. 이전엔 비슷했을지 모르나(그 뿌리를 추적하면 한 갈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지금은 작법도, 독법도 모두 철저하게 분리돼 작동하고 있는 ‘서로 다른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쉽게 말해서 국어 시간에 배우는 문학의 갈래인 시, 소설, 수필, 희곡에 이어 웹소설을 따로 추가하자는 것이죠. 제가 앞으로 얘기할 내용은 이러한 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브릿G는 그러면 어떻냐고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브릿G는 웹소설 플랫폼의 웹소설보다는 출판사 플랫폼의 출판소설에 가깝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게 웹소설로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사이트 전체의 성향과 개별 소설의 경향은 별개의 것이니까요.

이러한 분리를 언급하는 건, 둘의 영역이 상당히 확고하게 나뉘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출판소설’과 ‘웹소설’의 차이를 명확히 언어화하지 못해도 인지는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기대’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때문에 수많은 갈등과 오해와 경멸과 오만과 선민의식과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다룰 내용은 아니니 삼가겠습니다.

중요한 건 ‘갈래’를 다르게 볼 만큼 웹소설과 출판소설 사이에는 좁은 듯해도 분명히 존재하는 규격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또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간극을 언급하는 게 이 리뷰의 서론이 되겠네요.(예, 지금까진 서론의 서론이었습니다)

 

웹소설의 규격이란?

출판소설의 규격은 굳이 말할 필욘 없을 듯합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 곁에 있을 책장에서 소설책(웹소설이 출판된 걸 제외하고) 한 권만 뽑아도 나오는 그 익숙한 문단과 대사의 집합이 곧 출판소설의 규격이니까요. 반대로 웹소설의 규격은 뭐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요……

저는 웹소설의 규격을 이렇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1. 가독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 것

2. 1을 위배하지 않고 흥미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 것

3. 2를 위배하지 않고 서사 전개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 것

4. 3을 위배하지 않고 그 외 세부장르별로 존재하는 독자와의 암묵적 클리셰와 금기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 것

정리하면 ‘매우 쉽게 읽히고 끊임없이 흥미를 유발하며 내용이 알차고 독자의 기대를 끊임없이 충족하기 위해 많은 요소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웹소설의 규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의 범주는 출판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희생되기도 하죠.

물론 ‘잘 나가는’ 웹소가 특정 요소를 극단적으로 희생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하지만 희생의 범주와 정도에 있어서 웹소설은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지켜진다면 나머진 얼마든지 희생되거나 변형될 수 있단 점에서 기존 출판소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규격의 작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커뮤니티물, 인방물, 나데나데류 TS물, 저능아물(…) 같은 걸 생각하면 더더욱 웹소의 ‘허용 범위’라는 건 기존 출판소설의 규격보다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러한 장르들은 ‘일반적인 장르 중 하나’로 여겨지니까요. 출판소설에선 이러한 규격에 대한 도전이 모더니즘적인(혹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법을 제외하면 좀체 이뤄지지 않는 보수적인 성향이 더 강합니다.

때문에 (제게 있어서) 통상의 웹소설 규격으로 인식되는 건 보통 “문단을 이루지 않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웹소설과 출판소설을 다르게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출판소설에게 문단은 ‘굳이 해체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웹소설에게 문단은 반대로 ‘굳이 형성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문단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관점이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소설 입장에서 문단은 문장의 집합을 통해 맥락을 구성하고, 더 나아가 문단의 집합이 곧 챕터의 맥락을 구성하며, 챕터의 집합이 곧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구성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문단은 출판소설에서 ‘기본적인 요소’이고, 이러한 문단 단위의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 독해에 있어서도 상당히 효과적입니다.(또한 이것이 기본적인 요소기 때문에 문단을 해체하거나 극단적인 문단을 구성하는 모더니즘 계열 소설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웹소설의 입장을 보면, 웹소설 입장에서 문단을 통해 맥락을 구성할 필요가 잘 없습니다. 왜냐면 웹소설은 한 회차가 하나의 거대한 문단으로 작용하고, 이 문단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읽히기 때문에 굳이 그 안에서 작은 단위의 문단을 구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문단 단위의 흐름을 만들 필요 없이, ‘회차’라는 단위 안에서 흐름을 구성하고 그를 위한 문장들만 배치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웹소설은 문단이랄 게 없이 한 문장이 끝나면 줄바꿈이 들어갑니다.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말하고, 인물의 행동을 간단히 서술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줄바꿈을 넣습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신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정보들만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엄지로 훑으면서 독해하는 게 가능합니다.

네,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웹소설에서 “문단을 이루지 않음”이라는 건 곧 문단이라는 맥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독자의 신속한 독해를 위해 불필요한 수식어구나 비직관적인 문장들을 배제하게 됩니다. ‘읽는 데 힘을 쓰게 하지 말라’라는 것이죠.

그 외에도 웹소설의 규격에 대해 더 떠들 수 있겠지만, 본론을 위한 서론으로는 이정도가 충분할 듯합니다. 나머진 작품을 두고 얘기하도록 하죠.

 

1. ‘보이는 것’에 대한 지적

황금의 서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제가 처음 황금의 서사를 처음 읽었을 때 접한 당혹감은……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지?”였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건 분명 웹소설의 형식인데, 막상 읽어보면 문장에 무게를 두려고 하는 것은 출판소설에 가깝습니다. 근데 또 문장을 다 잇지도 않고 줄바꿈을 해버리거나, 같은 인물의 대사를 비일관적으로 끊어서 서술한다거나…… 어느 쪽으로 봐도 모호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상당히 일관적으로 쭉 이어지더군요.

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리뷰를 쓰기 전에 물어봤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님께선 어떤 형식으로 쓰고 계신지 인식이 아예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조금 장황할 정도로 긴 서론을 준비한 것입니다. 작가님께서 추구하고자 하신 방향에 대한 고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웹소설로 쓰셨든, 출판소설로 쓰셨든, 문장을 끊어서 서술하진 맙시다. 불필요한 스크롤이 상당히 늘어납니다. 흐름도 상당히 끊기고요. 소설을 읽는 내내 가장 힘들었던 게 이해하기 힘든 줄바꿈의 향연이었습니다. 처음에 던져진 질문인 ‘어떻게 읽어야 하지?’가 단순한 형식 분류의 문제였다면, 나중에 가서는 진짜로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읽어야 하지?’라고 되묻게 되더군요.

대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타일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고, 끊어서 서술하신 의도를 아예 모르지도 않지만…… 그냥 붙여서 쓰시는 편이 훨씬 나을 듯합니다. 그리고 문장을 쓸데없이 끊어서 줄바꿈 넣는 습관이 대사에도 똑같이 들어가니 문장부호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건 문장부호 한 쌍에 통합돼 있고, 어떤 건 분리돼 있고, 어떤 건 아예 오른쪽 따옴표가 두 번 연속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같은 사람의 연속적인 대사는 그냥 한 번에 쓰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한 문장, 한 문장 끊어서 말한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면 한 문단으로 합친 뒤 쉼표를 넣거나, 대사 사이에 지문이라도 넣는 편이 좋았을 듯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 사람이 연속적으로 발언하니 대사 인식이 상당히 힘들더군요. 심지어 누가 말하는지 불분명할 때가 더러 있고요.

작가님께서야 작가님 머릿속에서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지 장면처럼 그려질지 몰라도, 제게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서술 스타일에서도…… “A가 아니라 B였다”로 대표되는 설명이 굉장히 남발되고 있습니다. 독자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뭐만 나왔다 하면 독자가 그것에 대해 판단하기 이전에 서술이 판단을 대신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A였다… B였다… C가 아니라 D였다…

물론 그런 설명하는 기법이 출중하다면, 재치가 있고 재미있다면 그런 작가의 인도를 입담 좋은 관광 가이드를 따라가는 것처럼 즐거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님께선 마치 독자가 ‘오해’를 할까 염려하시는 듯합니다. “아냐, 이건 이렇게 보지 말고 저렇게 봐야 해.”라고요. 그게 A가 아니라 B였다로 대표되는 설명들이죠.

또한 문단을 이루지 않으니 작가님께서 문장 하나하나마다 신경 쓰시는 게 느껴집니다. 문장 대부분이 ‘폼’을 잡으려고 한달까요. 힘을 뺀 서술이 좀체 없습니다. 그러니 독자도 자연스럽게 문장을 독해하려고 멈춰 서게 되고, 흐름이 끊겨서 멈춰 서게 되고, 피로도가 쭉쭉 올라갑니다.

웹소가 문단을 이루지 않는 건 ‘문장에 힘을 줄 필요가 전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문장에 힘을 빼고 쭉쭉 전개하니 문단을 굳이 이루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출판소설은 문단을 구성하기 때문에 ‘힘을 줘야 하는(혹은 주고 싶은) 문장’과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 생깁니다. 호흡이 생기는 것이죠. 그 호흡을 통해 묵직함을 전달하기도 하고, 경쾌함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지금으로선 작가님의 작품은 스탭도 안 밟고 호흡도 없이 스트레이트만 날리는 모습 같습니다. 지치고 피로해지기 쉽습니다.

인터루드에 대해서도 영리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선 인터루드를 통해 약간의 부연 설명과 상당한 양의 역사적 고증을 챙기셨는데, 처음에야 독자가 세계에 몰입하지 못했으니, 그 몰입의 이정표로서 적절히 기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라이트로 갈수록 더 잦아지는 인터루드를 보기 전까지는요.

대체 왜 루카의 복수가 한창일 때 카노사의 굴욕 같은 고증을 접해야 하는지 저로선 정말 모르겠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경비행기에 매달렸을 때 갑자기 다큐멘터리로 전환되면서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가 5분 정도 상영된다면, 누가 그 영화에 몰입하면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 자신의 몰입을 지키기 위해 후반부 인터루드는 거의 넘겼습니다.

고증에 예민한 웹소설의 대체역사물을 예시로 들자면…… 공지에 따로 고증 자료들을 정리할 순 있어도 작품 중간에 회차 단위로 고증 자료를 삽입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흐름이 끊기니까요. 사실 출판소설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석으로 길게 달아놓아도 ‘굳이?’ 싶을 판에 절정부가 한창일 때 떡하니 인터루드로 흐름을 끊는 건…… 제 살 깎아먹기입니다.

인터루드의 설명들도 논조의 방향을 보면 결국 독자에게 자기 작품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증은 이렇게 해서 쓰였고, 이런 의미였고…… 작가님께서 상정하신 독자가 어떤 독자인지는 몰라도, 일단 그 독자는 상당히 자기 주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가가 이렇게까지 자기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작품 속에서, 그리고 인터루드를 통해서 설명할 리가 없잖아요.

이는 근본적으로 작가가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나타냅니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자꾸 설명하려는 것이죠. 아 그게 아니라 이건데. 아 이게 사실은 이런 것들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독해 교정 행위’들이 이 작품의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내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듭니다.

그리고 더욱 유감스러운 건, 자기 작품을 신뢰하는 건 남의 말을 듣고 ‘아 신뢰하면 되겠구나!’라고 깨달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 부분은 작가님께서 기성 작품들, 그러니까 출판된 소설들을 더 많이 읽으시고, 더욱 솔직하게 쓰시면서(모르는 건 모른다고 넘기고 아는 부분만 적는 것) 독자와의 신뢰를 구축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 일이에요.

 

2. ‘읽히는 것’에 대한 지적

그럼 이제 내용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에 아직 더 남았어?) 황금의 서사 1부는 중세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여 십자군 전쟁 다시 일어난 십자군의 부정에 대해 복수심을 품고 악마와 계약한 한 금 세공사의 복수 일대기를 다룹니다.

중세 이탈리아라는 시공간, 십자군 전쟁이라는 맥락, 금세공사라는 직업과 길드, 상업, 교회 등의 경제/정치 구조, 그리고 루카와 로슈포르, 안나라는 중심 인물들……

1부를 이루는 요소들은 다양하게 있지만, 초입, 중반, 후반부마다 강조되어야 할 요소들은 각기 다릅니다. 그리고 일관되게 강조돼야 할 것과 후순위로 미뤄둬도 되는 것들도 역시 있고요. 이러한 요소들의 상하관계, 우선순위는 작가 자신의 결정이 제일 우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품을 이루는 내용과 구조가 이미 그걸 결정하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본 이야기는 중세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에게 부모를 잃은 주인공이 복수하고자 교회에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복수 일대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21세기 한국 독자들이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이 각자 미묘하게 달라지겠지만…… 우선 ‘중세 이탈리아’라는 시공간에 독자를 빠뜨리는 게 우선 아닐까요? 혹은 루카 오라피니라는 인물을 먼저 조명할 수 있습니다. 복수귀이자 냉철한 사업가이자 뛰어난 금세공사인 젊은 청년이 어째서 복수만을 부르짖으며 악마와 계약하게 됐을까요? 그 이야기부터 풀 수도 있겠죠. 혹은 아예 다 건너뛰고 복수 장면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루카와 로슈포르의 대립 장면을 먼저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왜 둘은 이렇게 치열하게 마주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던져줄 수도 있겠죠.

제가 언급한 세 가지는 결국 인물, 사건, 배경 중 하나를 핀포인트로 잡아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잡아놓은 흥미는 곧 독자의 초점이 됩니다.

본 작품의 도입부를 따져보면, 다소 모호합니다. 일단 중세 이탈리아라는 설명은 나왔으나 독자가 몰입할 만한 이미지는 거의 제시되지 않습니다. 배경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상 인터루드의 고증이 대체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서술 스타일도 어떠한 장면을 묘사하기보다는 장면에 대한 해설과 설명이 주가 되니 독자가 이미지를 온전히 상상하기 요원합니다.

인물에 대해서도 루카 오라피니라는 인물이 명료하게 제시되기 전부터 악마들이 나오고, 악마들의 계약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루카가 좀 더 독립적인 인물로 새겨지는 건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흥미를 끄는 사건 역시 처음 1화부터 6화(그 사이에 있는 인터루드까지 포함하면 8화)까지는 사실상 루카의 복수 동기와 계획에 대한 장황한 설명입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7화부터죠. 그리고 프롤로그부터 인터루드 2까지의 분량은 약 200매 가량 됩니다. 중단편 하나 분량이네요.

이렇게 열심히 떠들었으니 여기에 나온 정보들을 알차게 써먹었냐? 전혀 아니죠. 악마들은 마몬을 제외하면 사실 없는 거나 다름없고, 계약자들 역시 있어 보이게 나오지만 후반부에 가서야 마네티 한 명만 주목을 받고 나머지는 덤핑 처리를 당해버립니다. 작가가 본인이 만들어놓은 설정들을 감당하지 못한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도입부 이후에도 사실 복수 계획을 착착 이뤄가는 서사(및 사건)를 제외하면 여전히 이미지의 부족이 절실합니다. 독자가 상상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건 역사적 사실과 고증 자료가 아니라 작품이 제시하는, 작중에서 제시되는 묘사와 서술입니다. 처음에 베니스의 거리를 묘사하고, 그 풍경을 묘사했다면 어땠을까요? 독자가 마치 그 당시 베니스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루카를 몰아내기 위해 상인들이 머리를 맞댈 때, 그들이 모인 장소에 대해 어딘가 음험하고 은밀한 배경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의 면면들은요? 작가님께서 먼저 그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그 장면을 독자에게도 공유하시는 겁니다. 어떻게요? 묘사와 서술로요. 설명이 아니라.

마지막 복수 장소에 대한 서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 대한 고증이 독자의 몰입을 높일까요, 아니면 그곳이 어떤 풍경을 가지고 있는지 묘사하는 게 독자의 몰입을 높일까요? 지금 작가님께서 다 무너져가는 과거의 영광이 드높았던 성채의 빈 터에서 눈앞에 그리던 복수 대상을 만났는데, 그곳의 과거 역사가 이랬고 저랬고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눈에 들어오고 귀에 꽂히고 코로 맡을 수 있는 생생한 풍경이 중요할까요?

자료 조사를 꼼꼼히 하시는 걸 볼 때, 작가님께선 서술 방향을 잘못 잡으신 것이지,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신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문단을 구성하고, 호흡을 구성해서 힘준 문장과 힘 뺀 문장을 섞고, 설명하기보다 보여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고 읽기 편하며 몰입하기 쉬운 글이 될 겁니다.

또한 판타지적인 능력에 대한 서술 역시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시기보다, 그리고 설명을 자꾸 미루려고 하는 것보단 좀 더 직관적인 이미지들을 동원하시는 게 좋습니다. 설명은 친절해야 하고요. 왜냐면 그 판타지 능력은 독자의 머릿속 그 어디를 뒤져도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작가님은 좀 더 친절을 발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복수물에서 능력을 괜히 비밀로 할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능력자배틀물로 따져도 주인공 능력을 비롯해 다른 능력자들의 능력을 꽁꽁 숨겨둘 이유는 없고요.(작중 인물에게야 숨길 수 있어도 독자에게까지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요)

또한 루카가 검술을 배운다는 설정은 시기상 중반부에 이미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뒤늦게 인터루드로 삽입해서 개연성을 보충하는 것보단 사전에 언급해둬서 루카의 설계가 빛나는 복선으로 작용하는 편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복선을 깔아두고 회수하는 건 노련함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추리물이나 남성향 웹소설들을 접하셔도 좋습니다. 웹소설이 읽기 힘드시면 웹툰화된 웹소설도 좋고요.(특히 회귀물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는 식의 복선 깔기가 굉장히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복선을 깔아두고 회수하는 작업에 대한 일반적인 감각을 얻기에 좋습니다)

이외에는 오타 검수를 좀 더 면밀히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름 큼지막한 것들만 건드렸습니다. 나머지는 작가님께서 서사를 설계하시고 그 설계된 서사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셔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강조돼야 하는지를 스스로 파악하시는 게 필요합니다.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글의 방향과 목적, 현재 서술된 것에 대한 이해, 그리고 본인이 닿을 수 있는 영역과 닿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인지 등…… 절대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저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한 평생에 걸쳐 이뤄나가야 하는 작업입니다.

 

3.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조언

지금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분량이 9613자라고 나오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니 “이런 글 당장 때려치우고 폐관수련부터 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쓰시던 글을 내려놓으실 필요는 전혀 없고, 그걸 권장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 리뷰를 통해 바라는 게 있다면, 작가님이 조금 더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부만 해도 1,110매의 분량인데, 이걸 2부, 3부, 나아가 5부까지 구상한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작가님의 설계 능력은 어느 정도 증명됐다고 생각합니다. 1부 자체의 서사 설계만 보더라도 초점의 불균형과 작법 자체에 대한 무지는 있을지 몰라도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작가님은 감각이 있으십니다.

그렇기에 작가님께선 조금 더 연구하시고 고민하시고 공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뭐 어디 문창과라도 들어가서 공부하란 얘기는 아니고, 우리 곁엔 훌륭한 기성 작품들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교보재가 무수히 쌓였습니다. 그것들을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읽고,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연구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리고 본인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요. 본인 작품을 ‘구상’하는 것과 ‘연구’하는 건 전혀 다릅니다. 구상은 몰입을 요구하지만, 연구는 정반대로 몰입을 차단해야 합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작가님께서 놓으신 레일이 정녕 작가님께서 바라시는 형태로 놓였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수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레일을 어떻게 놓아야 진정으로 잘 굴러갈지 역시 고민하셔야 하고요.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작가님께선 본인 작품을 연구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쓰시는 글은 그대로 쭉 쓰셔도 됩니다. 굳이 지금 연재분부터 갑자기 문단을 구성해보려고 하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관성을 억지로 부수면 오히려 예정하신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하시고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제가 바라지 않아요. 이러한 대서사시는 어떤 비판에도 완성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 경험이 작가님을 더욱 성장시킬 겁니다.

저는 늘 장편을 완성하는 창작자에게 그 장편의 완성도와 별개로 그 열정과 노력을 칭찬합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되고요. 작가님께선 벌써 3부를 쓰고 계십니다. 쭉 쓰세요. 이 리뷰는 잠시 잊으시고 그대로 쓰셔도 됩니다. 다 쓰시고 완결을 내신 다음에 본 리뷰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말고를 결정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가르침을 청하신 만큼, 저도 진심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들여가며 리뷰를 썼습니다. 부디 작가님께 좋은 피드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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