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흙 속에 나란히 놓인 두 손목을 읽는 순간 멈췄습니다. 그런데 진짜 소름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같은 프롤로그인데 천육백 년 전으로 건너가고, 거벌이라는 남자가 손을 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었던 것의 마지막 윤곽.’ 이 한 문장에서 이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지 설명 없이 알게 됩니다.
현대와 고대가 번갈아 나오는데, 교차가 우연이 아닙니다. 현대에서 빈칸이 발견되면 고대에서 그 빈칸이 왜 생겼는지가 이어집니다. 고대 파트에서 다라가 소매 속 매듭 끝을 왼쪽으로 한 번 꺾는 장면이 있는데, 직접 말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다 전해집니다.
현대 파트도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이재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7화 끝에서 그가 경찰 조사 대상이 되는 순간 그동안 쌓인 의심이 한꺼번에 터집니다.
기록에서 지워진 이름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그 질문이 천육백 년 전에도 지금도 같다는 게 이 소설이 하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