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s ex Simulacrum: 데우스 엑스 라티오 비평

대상작품: Deus ex Simulacrum (작가: 0x00,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2시간 전, 조회 8

이 소설을 어떻게 요약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일단 이렇게 요약해볼 것 같습니다.

신을 가정하고, 논증하고, 해체한 다음, 무화(無化)시키는 이야기

 

줄거리는 브릿G 추천사에서 이어 덧붙이자면, 근원을 조사한 끝에 한기준은 마침내 ‘신’의 근원에 닿지만, 그들은 지구를 통째로 시뮬레이션하며 조정하고 있던 존재들이었고, 한기준이 궁금해하는 걸 적당히 알려준 다음 그의 기억을 초기화하고 다시 세계를 반복시키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소설의 구조는

발단: 신의 존재를 제시함(신을 가정)

전개: 신의 구조를 설명함(신을 논증)

위기: 구조의 헛점을 지적함(신을 해체 1)

절정: 헛점을 파고들어 신과 대면함(신을 해체 2)

결말: 그러나 그 신은 ‘신’이 아니었고 세계는 반복됨(신을 무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무신론 소설 내지는 반(反)신학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소설의 백미는 절정부터 결말까지, 해체된 신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는 파트에 있습니다.

신을 해체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해체된 것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상상할 수 없는 상위 차원의 존재가 나타나버리죠. 그러면서 주인공과 질답 시간을 간단하게 가지고 세계를 다시 반복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각 개체가 자기 경험을 삶이라고 부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라는 대사,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 이번 반복에서 가장 멀리 온 쪽이 당신이었을 뿐.’이라는 대사는 자아를 가진 인간을 부정하고 ‘신’의 존재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마저 ‘반복’으로 격하시킵니다.

태그의 코즈믹호러는 이러한 지점에서 붙은 것이겠죠. 인간의 이성이 빛을 발휘해 신을 해체하는 듯했으나, 사실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인 짓이었으니까요. 무신론적이지만, 같은 무신론자를 상대로도 조소를 날리는 특이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절정 파트에서 헛점을 파고드는 방식, 곧 자아의 동일성을 끊는 부분입니다. 단순한 자기 암시가 ‘정체성을 고정시키려는 힘’을 뛰어넘어 작동하는 것이 너무나도 편의적으로 다가온 점입니다. 특히나 자아정체성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의식 이전에 더 근원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므로, 그걸 단순히 의식의 부정만으로 끊어내어지는 것인지 다소 의문스럽습니다. 심지어 그게 ‘정체성을 고정시키려는 힘’이 작용하는 상황에서요.

더군다나 이후 스스로 끊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기준은 여전히 한기준입니다. 음…… 자아정체성이 탈착식은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을 부정해서 체계 밖으로 벗어났다면 벗어난 한기준은 한기준이 아니어야 맞지 않을까요? 소설의 진행을 위한 선택인 점은 이해하지만, 이 소설은 구조와 논증이 핵심인데 그걸 스스로 부정하는 전개는 다소 의아합니다.

둘째는 코즈믹호러 연출에 대해서인데,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취향 차원에서 아쉽다는 얘기입니다. 신과 세계와 인간을 무화시키는 ‘상위 차원의 존재’를 내세우고, 신이 ‘신’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에 불과했던 걸 드러내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인격체와의 대화’인 건…… 한기준이 신을 의심했듯 독자도 ‘상위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즉, 코즈믹호러로서 ‘이해 불능성’을 지녀야 할 존재가 인격체로서 ‘동등한 대화’가 이뤄지니 코즈믹호러가 맞나…?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지금의 대화문보다 훨씬 기계적인 대답이었다면 ‘시뮬레이션 되는 지구’라는 상황이 더 차갑고 서늘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인격체로서의 상위 존재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코즈믹호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쉬운 점들이 좀 있다는 것이죠. 신이 일본어를 쓰는 애니메이션처럼 말입니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 이해는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이해지, 작품 세계의 몰입을 위한 이해는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코즈믹호러적 존재를 투입시켜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설정을 해소하기 위해 더 감당하기 힘든 설정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코즈믹호러를 좋아하니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미흡함이 보여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브릿G 추천작에 뽑힐 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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