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본격 SF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SF풍 판타지는 좋아하지만), 리뷰 공모를 하실 때도 관심이 없어서 안 읽고 그냥 넘겼는데요…(12월에는 리뷰들도 쟁쟁해서 추천리뷰 채택은 안 될거 같아서 더 안 쓰려고 했는데…)
이 작품, 어렵습니다. 어렵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읽어볼 만 합니다. 읽어보실 분들은 제 리뷰를 먼저 보신 다음에… 읽으시는 것도… 추천해봅니다…… ㅋㅋㅋㅋ…
원체 복잡한 이야기라서 평소와는 다르게 줄거리를 요약해 봅니다.
[줄거리]
1. 점프(Jump)의 이야기 – 내부 우주
테이는 초차원 다세대 우주선 ‘점프’의 후임 항해사로 첫 출근합니다. 선임 항해사 무리키로부터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됩니다.
-점프의 공식 사명은 “현 우주를 벗어나 상위 차원으로 도약”하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기술적 한계로 통로를 찾을 수 없는 상황
-그러다보니 점프는 우주를 정처 없이 표류하며, 함장의 명령에 따라 즉흥적으로 항로를 설정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항해사들만의 비밀
테이가 25살이 되어 선임 항해사가 되었을 때, 무리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함장 사울과의 면담에서 테이는 역대 함장들이 사명 부정자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테이는 쿠데타를 일으켜 사울과 후계자 유즈를 체포하고 함장이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지구가 이미 멸망했다는 기밀을 공개
-점퍼들에게 선택권 부여 (사명 수행 vs 새 정착지)
-30%는 새 행성으로 보내 인류 존속 보장
-나머지와 함께 진정한 차원 도약 연구 시작
80년 후, 점프는 마침내 초차원 입방체 구조를 생물에 적용하는 데 성공하고, 블랙홀 강착원반으로 뛰어들어 차원 도약을 시도합니다.
2. 블랙홀 문명의 이야기 – 외부 우주
우주의 황혼기, 인류는 블랙홀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생존합니다. 심층 출신 블랙홀 프로그래머 유진과 표층 출신 심부름꾼 찰리가 주인공입니다.
블랙홀 관측소의 새턴은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블랙홀 내부는 하나의 우주
-내부 우주에 극초기 항성 문명이 존재
-그 문명이 위성 단위의 에너지를 사용해 외부 우주로의 탈출을 시도 중
하지만 관측 중 정보값이 소실되고, 탈출 시도의 결과는 알 수 없게 됩니다.
찰리는 이 사건에 깊은 영향을 받아 사표를 제출하고, 1인용 우주선으로 끝없는 우주를 탐험하러 떠납니다. 유진은 그를 보내며 찰리가 “그날 놓쳐버린 진실”과 마주하길 기도합니다.
[읽기 힘든 이유]
이 소설은 꽤나 읽기가 힘듭니다.(혹시 나만 그랴?)
그 이유는 하나의 소설의 두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체가 반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후임 항해사 테이와 선임 항해사 무리키가 나옵니다.
점프의 사명은 ‘현 우주를 벗어나 상위 차원으로 도약(점프) 하는 것’입니다. 항해사의 역할은 ‘상위 차원으로 통할 수 있는 통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죠. 현재까지 밝혀진 통로 후보는 진공 붕괴와 특이점 뿐입니다.
문제는 진공붕괴는 임계 크기를 넘지 않는 한, 거시 세계의 물리를 따르는 점프가 활용하기엔 너무 작고, 특이점은 특이점의 중력 때문에 특이점에 들어가기 전에 점프의 구조가 버티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갑자기 유진과 새턴, 그리고 찰리가 등장합니다. 문단은 나눠져 있지만, 처음엔 이들도 ‘점프의 우주선’에 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그냥 서로 대비되는 다른 이야기거나, 중간에 이들이 함께 마주치는 장면이 나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은 다음에서야 새턴의 설명을 보고, 서로 완전히 다른 우주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있다는 걸 알았죠. 이 반전은 효과적이지만, 그 전까지는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즉, 두 이야기는 같은 사건(점프의 차원 도약 시도)의 안과 밖입니다.
점프는 ‘블랙홀 내부’에 존재하는 우주의 문명입니다.
블랙홀 문명은 그 ‘점프’를 관측하는 ‘외부 우주’의 인류입니다.
내부 우주의 점프의 차원 도약 시도=외부 우주의 새턴이 관측한 “대탈출”이 되는거죠.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은 구조적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테이의 이야기와 유진 and 찰리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오지만, 둘의 시간적 관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테이의 80년 후가 유진의 ‘현재’인지, 아니면 유진이 더 먼 미래인지 불분명합니다. “극초기 항성 문명”이라는 표현으로 점프가 매우 오래전 존재임을 암시하지만, 구체적 시간차는 모호하죠.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구요.
[내부 우주: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는가]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질문은 테이가 사울에게 던진 “함장님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입니다.
사울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비유라면 모를까. 물리적으로 어림도 없는 얘기지. 설령 물리적으로 통과한들, 바늘귀를 나온 건 낙타라 부르기 힘든 무언가일 테지.”
이 대화는 점프의 사명 전체를 은유합니다. 낙타는 3차원 물질로 이루어진 점프와 승무원들을, 바늘귀는 상위 차원으로의 통로인 진공 붕괴나 특이점을 의미하며, 통과의 불가능성은 물리적 한계를 상징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점프는 블랙홀 내부 우주에 갇힌 존재입니다. 그들이 시도하는 ‘상위 차원으로의 도약’은 사실 블랙홀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 이는 중력 우물을 역행하는, 말 그대로 불가능한 도전입니다. 사울을 비롯한 역대 함장들은 이 물리적 불가능성을 일찍이 깨달았고, 그래서 사명 부정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점프의 질서 유지를 위해 이 비밀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테이는 함장의 대답을 통해 함장이 사명 부정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부 우주: 역대 함장들이 사명 부정자가 된 이유]
소설은 역대 함장들이 사명 부정자가 된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맥락을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1) 지구는 이미 멸망했다 (200년 전 통신 두절, 170년 전 문명 흔적 소멸)
2) 통로 후보는 실질적으로 작동 불가능하다
-진공 붕괴: 미립자 단위로만 발생, 거시적 활용 불가
-특이점: 접근 전에 중력으로 구조 붕괴
3) 상위 차원 구조 재현 기술은 요원하다
4) 점프는 블랙홀 안에 갇혀 있다 (이건 함장들도 몰랐을 가능성이 큼)
그럼에도 그들이 사명을 유지하는 척 한 이유는 사울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난 점프의 질서를 지킨 거다! 점프가 존속될 수 있게 이어온 건 나와 역대 함장들이다!”
사명이 없는 점프에는 누구도 헌신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후대를 위해 살지 않을 것이며, 아비규환만 남을 것입니다. 즉, 거짓된 희망이라도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입니다. 역대 함장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점퍼들을 위해 거짓말을 이어간 것입니다.
테이의 선택은 이런 맥락에서 급진적입니다. 그녀는 이 온정주의적 거짓을 거부했습니다. 진실을 공개하고, 선택권을 주고,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진정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무리키가 자살로써 테이에게 길을 열어준 이유일 것입니다.
[외부우주: 심층·중층·표층의 차별 – 또 다른 갇힌 구조]
블랙홀 문명의 계층 구조는 점프의 폐쇄성과 대비됩니다. 유전자 제어에 의한 계급화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심층: 유전자 제어된 엘리트, 문명공단 운영
-중층: 과거 기록 보관, 중간 계층
-표층: 자연 출생, 차별받는 계층
내부우주의 ‘점프’는 물리적으로는 갇혔지만 내부는 세대명 시스템을 통해 평등을 추구하는 반면, 블랙홀 문명은 무한한 우주에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폐쇄되어 있습니다. 유진이 중층 자료실을 찾는 이유는 “심층의 폐쇄화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조치가 심층의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과거 문명의 역사를 통해 폐쇄된 계층 사회는 결국 붕괴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워프 기술 연구의 윤리적 딜레마도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심층은 표층 출신을 워프 실험체로 쓰려 했지만, 인권 문제로 막혔습니다. 새턴이 찰리를 지켜준 이야기는 이 사회에도 양심이 남아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는 기술 발전의 정체를 의미합니다. 블랙홀 문명은 스스로의 윤리로 인해 발전이 멈춰 있습니다.
[외부우주: 찰리의 여행]
어쩌면 남은 인류가 차지하지 못한 블랙홀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어쩌면 인류가 미처 관측하지 못한 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날 놓쳐버린 진실과 마주하게 될지 몰랐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여운이 깊습니다. 찰리가 떠난 이유는 표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맥락상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실된 정보값의 의미입니다. 점프는 정말 탈출에 성공했을까요? 아니면 결국 초차원 입방체에 의해 증발했을까요? 그도 아니면 내부에서 여전히 방황 중일까요?
둘째, 우리(외부) 우주의 정체입니다. 찰리가 새턴에게 물었던 “여기도 어딘가의 블랙홀 안인가요?”라는 질문이 그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블랙홀 안에 우주가 있고, 그 우주 안에 또 블랙홀이 있다면? (맨인블랙의 맨 마지막 장면처럼…)
찰리는 이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떠났습니다.
찰리의 여행은 점프의 도전과 대응됩니다. 점프가 집단의 불가능한 도전이며 조직적이라면, 찰리의 여행은 개인의 불확실한 탐색이며 직관적입니다. 둘 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점프는 물리적으로, 찰리는 존재론적으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어렵게 쓰였습니다. 독자를 편하게 안내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도록 만듭니다. 이는 불친절할 수 있지만, 주제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사실 급작스러운 장면 전환이나, 구조 자체의 혼란은 독자의 접근을 막는 단점이고, 초반부의 어려운 과학적 개념은 기본적으로 아는 것으로 치고 넘어가는데다 인물의 심리 묘사는 약한 편이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서라도 한번쯤은 읽어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블랙홀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블랙홀 안에는 또 다른 우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낙타는 결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프는 도약을 시도했고, 찰리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불가능인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게, SF가 보여주는 인간다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