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 나무대륙의 세계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무 대륙기 (작가: 은림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브릿G리뷰팀, 17년 1월, 조회 551

나무대륙기는 동서양이 혼재된 느낌의 세계를 굉장히 내밀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작품이다. 여러 책을 읽다보면 더러 작가가 쉽게 써내려간 느낌의 문장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나무대륙기에서는 흐르듯 지나가는 단락 하나도 허투루 쓰여진 부분이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분명 허구의 세계이지만 눈 앞에 잡힐 듯, 또는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 밀도 있으면서도 거추장스럽지 않은 묘사는 (작가의 필요에 의해) 조금은 혼란스러운 구성의 작품을 가상현실에 단단히 고정해주는 닻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여 써내려갔는지 눈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둔’을 막기 위한 방비를 묘사하는 장면과 고래등걸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과정들은, 정말이지 실제 그런 광경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또는 우리가 사는 현 세상에 그러한 일들이 여상 이루어졌던 듯한 현실감을 안겨주는 장면들이었다.

그런 부드럽고 잔잔한 묘사 외에도, ‘로맨스’라는 장르에 담기기에는 생각보다 과격한-‘둥지’를 묘사한 부분이나 어둔들이 들고 나는 모습들과 전투 및 살해현장의 묘사 등-부분들에서도 때로는 읽는 행위만으로 피비린내가 느껴질만큼 생생하면서도 지나침 없이 담백한 필체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실과 환상-또는 뒤바뀐 기억-의 혼란스러운 부분에 대한 교차 편집과 연출 역시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이 책의 서사를 힘있게 당기는 동력이 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문장력은 요즘 양산되는 장르문학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자, 큰 장점이라 손에 꼽게 된다. 작가의 탄탄하고 힘있는 문장 위에 펼쳐지는 인물들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개연성있게 행동하며, 매력적이다. 특히 여주인공들은 무척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나무대륙기에서의 여성들은 부속품과 같은 존재이다. 과거 지구의 여성들처럼 가부장제 속의 재산이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힘있는 남성들을 조정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이 최대의 권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세계관에서 주인공 ‘무화’는 여성이며, 심지어 왼손을 쓰지 못하는 병신(작중 인물들은 그녀를 그렇게 비하한다)이며 고아와 다름없는 상태이며 귀족도 아니고 반쪽짜리 공주의 시녀다.

그러나 그녀는 아홉개 언어를 할 줄 알며, 어지간한 사내보다 매섭게 칼을 다를 줄 알고 나무의 노래를 들을 줄 아는 재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신비한 비밀을 지닌, 꺾이지 않는 강인한 영혼의 ‘사람’이다.

으레 이런 장르에서 여주인공들은 주체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소극적이고, 보다 강력한 어떤 자(로맨스 장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주로 남자주인공이거나, 아버지 또는 미래의 시아버지)의 힘에 의지해서만 난관을 극복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력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나무대륙기의 여주인공-나는 개인적으로 무화와 서미 둘 다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들은 자신의 일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따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누군가의 다리를 잡는 거추장스러운 캐릭터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위기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고 선택한다. (오죽하면 나는 읽는 동안 ‘얘는 대체 왜 저렇게 혼자서 먼저 나서고 뛰어드는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누구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맡기는 인물들이 아니다.)

이 작품상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으며, 예쁜 장식품이나 가축 같은 존재와 다를 바 없이 취급받지만 여주인공들은 그러한 작중 사회적 한계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의탁하지 않는다. 쉽게 질투하거나 실망하지도 않고 의리가 있으며 생각해서 행동을 한다.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남주인공과의 인연 역시 어쩌다보니, 또는 눈치채지 못한 강권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엮이게 되고 그 과정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게 된다.

나무대륙기의 여자들은 ‘여자’이되 ‘사람’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로맨스소설(여성은 여성답고, 남성은 남성다운)을 생각하고 읽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색하거나 아쉬울 수도 있는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르적 편견을 조금만 배제하고 보면 어느새 불쑥, 읽는 사람에게 많은 여운과 질문을 던지는 유의미한 이야기가 다가와있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숙고를 통해 장치를 안배했는지, 이 세계관과 인물들을 얼마나 생동감있게 다루는지 꼼꼼히 음미하고 싶은 작품이다.

 

*리뷰어: 레몬밤 님
*서평 원문: http://blog.aladin.co.kr/773925194/8299616
*레몬밤 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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