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한 줄이라도 내 글을 읽어줄까 싶어 이 사이트를 자주 드나들지만 게으름을 핑계로, 다른 공부가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의 글은 잘 읽지 않습니다. 이 나태함의 업보는 지금도 충분히 받고 있지만, 인간은 늘 어리석은 존재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죠. 그럼에도 이 글은 참 오랜만에 읽는 남의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본 낯선 글임에도 감상이 진하게 남아 이렇게 글까지 남기게 되네요.
제가 이 글에 금세 몰입하게 된 이유는 공교로운 제 처지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주인공 경원이처럼 어줍잖게 대본을 쓰던 사람이었거든요. 저는 연극이 아닌 드라마 쪽이긴 했지만, 어쨌든 운 좋게 제작사 공모에도 채택된 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 대본은 기획 단계도 못 밟고 결국 허공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부족한 제 실력과 대중의 정서를 읽지 못한 제 탓이겠죠. 그렇게 저는 길 잃은 양이 됐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경원이처럼요. 그리고 그 경원이는 현재 처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삶이 녹록해 보이진 않습니다. 그 정서는 제가 지금 느끼는 정서, 혹은 방황하는 30대 남자라면 누구나 관통당할 만한 정서이기에 저 같은 필부가 빠져들기에 더없이 좋은 글이었습니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안 비슷한 우리네 인생은, 다 똑같아 보여도 들춰보면 사연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크고 작은 정서와 이야기들은 별다른 수사 없이도 우리 가슴속에 스며듭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정서적으로 멀어지는 우리,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잘한 애잔함 같은 것들이요. 이 이야기 속 경원이가 아버지를 보며 짠해 하듯 저 또한 비슷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머니와 함께 운동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께서는 계단 내려갈 때 교차로 발을 딛지 못하시더군요. 옆으로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찬찬히 딛고 계셨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제 물음에 이미 한참 됐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럴 때 자식의 마음은 참 애잔해지죠. 경원이의 시선이 그런 제 마음과 같았고, 이 시기의 우리네 자식들이 부모를 바라보며 모두 비슷하게 느낄 정서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 또한 가슴으로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경원이가 자꾸 희진이를 떠올리는 것 또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우습고도 슬펐습니다. 인생의 갈피가 안 잡힐 때면 우린 습관처럼 지난 인연을 떠올리곤 하죠. 이 볼품 없는 날 그렇게 좋아해 줬던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요. 하지만 그것이 그 인연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종종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지금 희진이에 대한 경원이의 마음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최선을 다 하지 못했던 지난 인연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은 남아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그리움인지는 모호하죠. 그렇기에 빌어먹을 자존심이 남아 메일 하나에 답하기를 망설입니다. 그러다 결국 시기를 놓치는 경원이를 보면 비슷한 실수를 남발했던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비슷한 어리석음은 모든 남자들이 안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 싶을 때도 있네요.
그럼에도 경원이의 정서는 항상 희진이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사귈 자신은 없고, 마음이 허할 때면 관습처럼 지난 인연을 떠올리는 못난 남자들의 몹쓸 습관이죠.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에 인간이 집착하는 것처럼 내 인연이 닿았던 그 사람과의 추억에 얽매여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도 그 모진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경원이의 정서는 저보단 훨씬 건강해 보여 읽는 이에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청춘의 번민처럼 보이기도 했죠.
뭐라 쓴지도 모르겠는 처음 남기는 리뷰 글이었네요. 다만 단문 응원으로 감상을 남기기엔 여운이 길게 남아 두서없이 글을 쓰고 갑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글 속에서도 고민의 깊이와 인생의 번민을 잘 그려내신 것 같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