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연입니다. 게임에서 6연패하고 잔뜩 속상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 브릿G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피드백을 원한다는 글을 보고 달려왔는데요.
어째 쓰는 리뷰마다 피드백이 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간단하게나마 <섬에서 온 열병>을 읽은 후기를 남기고자 합니다.
<섬에서 온 열병>은 44매라는 적당한 분량의 호러물로, 섬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형이 집에 들고 온 기념품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인지는 본편에서 확인해주십시오.라고 하고 스포일러 할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럼 본격적인 리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작가님께선 리뷰를 참고하시되, 제 리뷰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1. 무엇이 공포를 주는 주체인가?
가장 먼저 짚고 싶은 부분은 호러물의 알파이자 오메가, ‘공포를 주는 주체’입니다.
섬 출장에서 돌아온 형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듯한 조잡한 기념품을 가져오는데요.
형은 이것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라며 열변을 토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합니다.
이후 집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여동생이 기침을 하기 시작하고, 형이 사라지고, 모두가 의식을 잃고, 눈앞에 원숭이가 보이는 등.
정말이지 ‘기묘하다’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인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기묘함 속에서 ‘무서움’이 잘 와닿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의 생각일 뿐, 이 글은 누군가에겐 충분히 무서운 글일 수 있습니다.
제목에 ‘열병’이 있으니 열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괴현상들이 주된 공포의 대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실제로 주인공을 가장 괴롭힌 것도 열병이고 말이죠.
하지만 이 열병이 공포를 주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원인을 차근차근 살펴보자면,
(1) 앞에서 언급한 원주민 이야기와 동떨어진 원숭이들이 등장함으로써 이야기의 통일성 저하
(잠깐 짱X 극장판이 떠오르더군요. 혹시 열병의 진원지가 ‘섬’이라서 원숭이를 차용하신 거라면,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병’이라는 소재의 활용성 한계
(집이라는 한정된 장소와 가족이라는 한정된 대상과 빠른 감염. ‘병’이 가진 광범위한 속성과 다르게 공포의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병, 충분히 무서운 존재입니다. 오히려 이런 폐쇄적인 설정일 때 힘을 발휘하는 게 병 아닐까요? 하지만 그 병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일들이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열병’이니까 그렇게 쓰신 것 같긴 하지만….. 더 잔인하고 광기 어리게 쓰셔도 될 듯 합니다.)
정도가 떠오르네요.
호러물에서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문체의 완성도도, 문장의 구조도 아니죠.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무섭게 하는가? 이게 전부입니다.
무엇이 독자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까?
정한 소재가 독자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대화체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인물의 대사를 이탤릭볼드체로 쓴다는 것인데요.
참신한 형식이라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좋은 연출인지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화자의 독백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라 조금 과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감상하는 입장에서 봤을 땐 이탤릭체만 쓰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 흐름상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만 볼드 효과를 주시면 적절할 듯 합니다.
그리고 초반엔 대사에 큰따옴표를 쓰시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며 갑자기 큰따옴표를 버리셨는데,
단순히 쓰는 걸 잊으신 건지 아니면 작가님만의 기준에 따라 쓰신 건지 알 수 없으나 소설의 흐름을 위해 형식을 통일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3. 감상
앞서 말한 내용들과 별개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병’을 소재로 한 호러물은 처음 읽어봤거든요.
호러물이라는 것이 읽는 입장에선 재미있지만, 쓰는 입장에선 참 골치가 아픈 장르인데….
(대부분의 소재들은 물론 반전조차 너무 뻔해졌으니까요.)
고민이 좀 많으셨겠다 싶었습니다.
문체가 담담하고 과한 묘사나 수식이 없어서 술술 읽힙니다.
참신한 호러물을 읽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부족한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