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이브의 네크로맨서들 비평

대상작품: 브래이브의 전사들 (작가: Nera, 작품정보)
리뷰어: 영선, 43분 전, 조회 2

“아 존나 하기 싫다… 엄마 나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 부벱 부레렉, 666장

 

※패러디-팬픽으로서 적은 글입니다. 이에 관한 변명은 글의 말미에…

 

1.그래이브. 사령술과 치사함의 산

 

핀란드에 그래이브라는 산이 있었다. 핀란드 북쪽(북위 약 69)에 위치한 이 산은 상당히 높았으며(4300m), 공장 지붕 같은 모양으로 솟았다. 북극에 가까운 데다 고지여서 그런지 그래이브 산은 상당히 추웠다.

그래이브산에는 매우 뛰어난 네크로맨서들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그래이브 족이라 불렀다. 그래이브 족이 어쩌다 핀란드의 산꼭대기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여러 민담과 썰이 오가고 그 중 몇 가지는 문헌에 기록되기도 했으나,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비록 그들의 기원은 비밀에 싸여있지만, 그들의 생김새는 고대 파피루스 문헌에 기록이 남아있다. 그래이브족은 창백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도 체격이 그리 크진 않았던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뼈말라-사람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혈색이 도는 얼굴이었지 지금처럼 창백하다 못해 시퍼레질 지경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척박하고 추운 곳에서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앞서 그들이 네크로맨서들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체를 일으키고 유령을 불러내는 네크로맨시는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있을 일이지만, 그래이브 족은 그걸 한다. 그래이브(Grave)라는 산 이름에 걸맞게 매우 우울한 그래이브 족에게 네크로맨시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업이요, 굴레였다. 그래이브 족이라면 갓난 아기부터 고조할아버지까지 살아있는 시체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이브 족의 지도자는 “대사령술사”이며, 대사령술사는 20년에 한 번 대결을 통해 선출한다.

 

그래이브 족을 설명하는 중요 키워드로 비열함, 네크로맨서, 대사령술사 등이 있지만, 그래이브 족을 설명하기 위해 빼먹어서는 안 되는 더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바로 “보살님”이다.

비열하고 이기적이며 능멸과 배신을 일삼는 그래이브 족들과는 달리, 보살님은 자비롭고 고결한 존재로 그래이브 족의 가장 큰 적이다. 그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데, 그래이브 족의 기원과 보살님의 정체 중 어느 쪽이 더 미지에 쌓여있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흰 옷을 입고 거룩하고 점잖은 자태를 뽐내는 보살님은 “성스러운 섬”에서 오신다고 하는데, 그 곳의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이 곳을 발견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이브 족은 보살님을 매우 두려워하고 증오하는데, 보살님이 그래이브 족을 납치해 가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래이브 족의 법은 보살님의 이런 기행과 크게 얽혀 있다.

그래도 그래이브 족이 역사만큼은 꼼꼼하게 챙긴다. 그들은 역사-좀비들을 일으켜 그들의 역사를 암송하게 하는데, 그들의 역사 기록이 너무 꼼꼼하기 때문에 암송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200년에 달한다고 한다.이번 이야기는 그래이브 족이라면(그리고 그래이브 족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아는, 카오스력 88년에 있었던 어느 정직한 소년의 모험과 성장, 그리고 보살님에 관한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카오스력 73년 6월 6일 그래이브 산 –

 

한 젊은 남자가 사사사삭 기어가고 있었다. 그는 기이한 기어가기 솜씨를 발휘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는데, 입을 벌리고 헉헉거리며 숨을 거칠게 쉬었다.

“형님! 형님!”

형님이라 불린 사람이 기어오는 남자를 쳐다본다. 형님이라 불린 사람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그 역시 기어오는 사람처럼 20대 정도로 보였지만 비열하고 음울한 네크로맨서로 보였다.

기어오는 남자가 가까이 접근하자, 형님이라 불린 사나이는 펄럭이는 옷소매와 망토를 휘둘러 두 팔을 널게 펼쳤다. 그 순간 쾅쾅 천둥이 울리며 시퍼런 번개가 형님이라 불린 남자의 등 뒤로 번쩍번쩍 떨어졌다.

“나를 불렀느냐! 하이든!”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실로 사악했으며, 간사하기 이를 데 없게 들렸다.

“무슨 일이지? 산 아래 마을에 역병이 돌아 우리가 일으킬 시체가 풍성해졌느냐? 아니면 가증스러운 보살이 나타나 우리 백성을 붙잡아갔느냐?!?!”

하이든이 몸을 일으켜, 짐승처럼 헉헉거리느라 수염을 흥건히 적시며 흘러내린 침을 닦았다.

“그게 아니라,  형님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큭큭..큭…”

“뭐라고?!?!”

형님이라 불린 남자가 행복에 겨워 구역질 나는 냉소를 지었다.

“네! 방금 들은 대로입니다! 형님, 형님의 아내인 쥬가미 누님이 아들을 낳으셨어요! 크흐흣… 저의 아내 퍄가 누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서 가자!”

“네 형님! 케켓 – 케-!!”

하이든은 지네처럼,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바퀴벌레처럼 기어서 재빠르게 사사삭 달려 나갔다.

마침내 그들은 다른 집 보다도 더 좋은 저택에 도착하여(아까 말했듯 우압 가문은 그래이브 가문 최강의 권력자 집단이다.) 참나무 문을 열고 은 도금한 강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의 방에는 두 여인이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마 형님이라 불린 남자의 아내인 쥬가미일 것이고, 그녀를 돌보듯 침대 곁에 있는 여인이 하이든의 아내인 퍄일 것이다. 두 여인 모두 대단한 미인으로 둘의 미모를 감상해 보자.

우선 쥬가미는 무척 아름다웠으며[피골이 상접한 그래이브 족 답지 않게 풍만한 체형{아마 남성향 서브컬처 게임(이 글을 쓰는 필자는 남성향도 아주 싫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여성 팬도 염두에 둔 캐릭터 디자인을 좀 더 예쁘다고 느끼는 편이다)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으로, 보통 그래이브 족이 가지지 않은 매력{물론 그래이브 족도 나름의 미인상(보통 식이섭취가 곤란한 지역에서는 다소 포동포동한 여성이 미인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 듯 한데, 의외로 그래이브 족에서는 균형감있는 뼈말라 여성이 미인상이다)(균형감 있는 뼈말라 미인이 뭔지 잘 이해는 안 되는데, 우리가 거기까지 이해해줄 필요는 없고 그냥 그래이브 족의 문화로 알고 넘어가면 될 것 같다)이 있기는 하다.}을 가졌으며{그런데 솔직히 여성의 체형을 이렇게까지 일일이 묘사하기가 조금 멋쩍고(최근 『구구단편서가 ONE』으로 「코스모노미콘의 추억」을 출간할 때, 작중 화자가 여성 인물의 외형을 자꾸 평가한다는 점을 편집자님으로부터 지적 받은 적도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나저나 「코스모노미콘의 추억」 많은 관심 바랍니다. 구구단편서가 ONE 버전은 브릿G 연재 버전하고는 묘사나 문장 등이 조금 다릅니다), 어쩌면 불편감을 느낄 여성 독자에게 죄송한 면이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을 때(예를 들자면 생계를 위해 꾸금 웹소를 쓴다거나. 하지만 여기는 그런 분위기의 플랫폼은 아니니까…)가 있는 법이다. 양해 바란다…}이었다], 밝은 눈은 버건디 빛이었다. 쥬가미는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방금 아기를 낳았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하이든은 ‘제길, 출산 직후에도 이렇게 아름답다니…’ 하고 형님을 시기하는 비열하고 사악한 마음을 품었다.

한편 퍄…는 그래이브족 평균적인 미인이었다. 사악하고 우울한 매력은 쥬가미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emo 취향의 소녀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외모였다.

“쥬가미! 쥬가미! 괜찮소?!”

“닥쳐.”

쥬가미가 남편에게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이압, 아기 이름은 지었나?”

“무, 물론이오.”

잔혹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쥬가미의 카리스마에 이압이 쩔쩔맸다.

“아기 이름은…”

“닥쳐.”

“아니, 그래도 내가 대사령술사인데…”

아내에게 상대도 못 되는 모습에 대사령술사의 권위가 깎일까 안절부절하며 이압은 주변 눈치를 살폈다

“아기 이름은 달크다.”

“달크?!”

“D-A-R-K. 그 스펠링은 설마… 어둠?”

이압 우압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순간 우르릉 쾅쾅하는 천둥과 함께 창밖으로 벼락이 떨어졌고, 그 푸른 섬광이 역광으로 들이쳐 실루엣처럼 어두워진 쥬가미는 안광을 붉게 번뜩였다.

“그렇다! 달크는 이 세계에 어둠과 절망을 불러올 것이다.”

“이압의 아들 달크! 세상에 어둠을 불러오거라!”

 


 

이런 글을 쓰게 된 변명이 이어집니다… 원작을 쓰신 작가님 입장에서는 무례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 점은 죄송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저는 모든 작품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는 거의 운명에 걸린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운명적인 작품과 운명적인 독자의 특정한 만남이란 것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모두가 칭송하는 걸작을 보아도 그냥 “재미있군.”하고 끝날 수 있는 반면, 아무도 모르는 채 사라질 무명의 작품이 어떤 작가에게는 결정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운명적인 깨달음은 새로운 창작의 밑거름이 되고,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또 다음에 올 새로운 창작의 발단이 될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리낌 없는 창작의 중요함을 믿고, 그것을 지지합니다.

 

이 작품, 『브래이브의 전사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너무 높은 빈도의 주석입니다. 처음엔 당연히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설에서 주석을 활용다면 첫째, 비소설-인문학 글쓰기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연출일 수 있겠습니다. 논문인 척 하는 소설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러려면 보다 논문의 주석 활용과 많이 닮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존재하지 않는 참고자료를 그럴싸하게 인용하는 등). 둘째로는 작중 사용되는 고유명사를 보충 설명하기 위해서이겠습니다.

주석을 본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첨언을 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용도로 쓸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논문 같은 경우에는 첨언을 위한 주석 활용이 종종 있기도 하니, 이 또한 “논문인 척 하는 소설”을 연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논문에서도 첨언을 위해 주석을 활용하기보다는 주로 참고문헌을 제시하거나, 참고문헌의 해당 내용이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를 부연하는 데에 주로 활용합니다.

단순히 첨언을 위한 주석이라면, 소설에서는 그저 문장에 녹이거나, 이야기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과감히 덜어낼 내용에 불과할 것입니다. 번역 소설이라면 우리 말로 옮기기 힘든 시적 표현이나 말장난 등을 표시하거나, 특정 표현에 담긴 역사, 문화적 맥락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주석을 활용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그것은 역자의 수단이지 작자의 수단은 아닐 듯 합니다.

당 작품의 주석은 어떤 목적으로 활용했을까요? 어쩌면 첫 번째 이유, 즉 비소설-인문학 글쓰기처럼 연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성공했다면 정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문헌처럼 느끼며 이 작품을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품 도입부에서 위도나 연도를 구체적 숫자로 제시한 점에서 이런 의도를 살짝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도를 『패밀리의 죽음』이라는 배트맨 코믹스 앞 부분에서도 본 적이 있었는데, 엉성한 흉내일 뿐 논문 특유의 주석 활용 느낌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브래이브의 전사들』의 주석 활용이 『패밀리의 죽음』과 비슷한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라는 저의 생각이 맞는다면, 『브래이브의 전사들』역시 논문 느낌을 살리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패밀리의 죽음』의 엉성한 인문학 논문 흉내를 아주 시시하게 느꼈으며, 이 작품 역시 비슷하게 평가할 했습니다. 논문인 척 하는 소설이라고 하면 『하그리아 왕국』의 외전 에피소드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제 기억이 맞는다면 『하그리아 왕국』에서는 딱히 주석 없이도 그걸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작품의 주석은 작가가 과하게 끼어들어 가독성만 떨어트린다고 느꼈으며, 상당수의 주석은 문장 속에 녹여 넣을 수도 있었을 그런 내용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당하게 밀어붙인 덕분일지…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저의 평가는 반전되었습니다.

 

과잉할 정도의 주석, 그리고 {중괄호 속에 넣은 (소괄호)}까지 보고 나니 이 작품에서 놀라운 매력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슥 나타났다 용무만 마치고 슥 가 버리는 대마왕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루 말할수 없는 호쾌함과 통쾌함을 느꼈고, 아, 이것도 어쩌면 독자들을 즐겁게 할 방법이 될 수 있었구나…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마 논문 분위기를 내려고 했을 것이다…라는 저의 추측 자체가 잘못일지도 모르겠고 말이지요. 사실 의도 추측 따위는 별로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추측으로 인한 선입견이 작품 감상을 굉장히 망칠 수 있다는 반성까지 했습니다.

하여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농담도 아니고, 냉소도 아니고, 비아냥도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 『브래이브의 전사들』덕분에 저의 작품 세계가 더욱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패러디 팬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어떤 가능성을 즉시 실험해 보고 싶어서 말이죠.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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