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장 사이에 숨어있는 악마를 처리해드립니다 감상

대상작품: 대기록원의 사서 (작가: justme,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7시간 전, 조회 7

내가 만나봤던 작가들은 대개 적독가들이었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도 더 많은 것들을 읽고 흡수하고 또 세상에 내놓기를 원한다. 책의 목록은 끊이지 않고 책장이 아니라 식탁에도 의자에도 소파에도 심지어 침대에도 책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게나 많이 읽는다고? 그러나 그들에게도 좋은 변명거리가 있다.

읽어야 잘쓴다. 당연하게도 좋은 이야기를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읽어야 하니 모으게 된다. 그렇게 책을 모을만한 이유로 아주 손쉬운 알리바이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자신의 서재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더 쉽다. 작가들의 출간된 도서 한 두권 뒤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있게 된다.

그렇게 많이 읽은 작가들은 누구보다도 이야기의 원형과 클리셰에 관심이 많다. 이야기의 원형이나 클리셰는 욕망의 관용어구다. 관용어구 위에 쌓이는 새로운 비틀기는 맛있는 양념이지만 원형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 줄다리기 사이에서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있는 작가들, 특히 웹소설 작가들은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버무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여기 작가들의 악몽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군가가 서재에 숨어들어 이야기를 멋대로 바꿔버린다. 클리셰를 태워 없애고 원형을 파괴한다. 어떤 이야기의 변형은 이야기를 아예 망가뜨린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팔다 추위 속에서 죽어야 한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의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 끝에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양치기 소년도 아니다. 비틀수는 있지. 그렇지만 안데르센은 안데르센이고 이솝우화는 이솝우화여야 하는게 아닐까?

이렇듯 온 세상의 이야기가 다 쌓여있는 서재에 악마가 끼어들어 내 서가의 이야기들을 제맘대로 바꿔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적독가들은, 작가들은 아주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악마 자식들 아주 못된 놈들이야! 용서못해!

악마들로 엉망진창이 되기 직전인 서가에 죽은 창작자들이 모여든다. 자신의 창작물을 써내려가기 위해 애썼던 작가 김유빈은 과로사로 죽고 난 뒤에 대기록원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서로 재취업하게 된다. 과로사로 죽었는데 다시 일어나서 일해야 한다니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사서로 일하면서 동료도 생기고 시스템도 있으니 더이상 과로사하지 않으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대기록원의 사서>는 판타지 소설 작가였던 김유빈이 책장 사이에 숨어든 악마들을 처단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책장에 스며든 악마 퇴치! 그런데 그 책장이 대기록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고 나는 그 곳의 사서이며 나는 그 이야기들을 수호하는 수호자이자 마법서를 꺼내들고 악마들을 퇴치하는 멋짐을 발휘한다? 이런 재취업이라면 죽음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초반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푹 빠져서 읽게 되었고 앞으로도 재밌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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