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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은 작가님과 나 감상

대상작품: 그날, 아주 따뜻한 봄날 (작가: 하지은,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4시간 전, 조회 2

#0. 주로 <얼음나무 숲>에 관한 짧은 회고록

BGM “HANA-BI” by 久石譲

 

 

#1. 퉁 퉁 퉁 퉁 사후르와 그날, 아주 따뜻한 봄날

브릿G 웹사이트 하단바에는 실시간 인기 작품이 나온다. 중단편 카테고리에선 <퉁 퉁 퉁 퉁 사후르> 강점기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데, 귀멸의 칼날 무한성, 체인소맨 레제 극장판,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등등 바빠다 바빠 오랜만에 접속해보니 1위는 여전히 <퉁4>가 반겨주고 있었지만 2위에는 뉴페이스가 치고 올라와 있었다. 퉁4는 무적이기 때문에 2위가 실질적인 1위와 다름 없다.

제목을 클릭해 본 후, 나는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과 이름과 만날 수 있었다.

 

#2. 하지은 작가와의 첫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판타지, 무협 장르의 소설이 주로 연재되던 사이트인 “문피아”에서 시장의 흐름과는 궤가 다른 작품이 하나 연재되는데, 바로 작가의 네 번째 장편이자 문피아 첫 연재작인 <얼음나무 숲>이다.

<얼음나무 숲>은 10화도 채 연재되지 않았을 때부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이미 세 작품을 완결 낸 작가였지만 드림워커 쪽에 대해선 잘 몰랐던 나 또한 그 입소문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얼음나무 숲>의 연재는 20화까지만 이어졌다. 결말이 나오기 전에 출간계약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연재가 중단되었다. <얼음나무 숲>은 이후 “노블레스 클럽”이라는 레이블의 첫 작품으로 런칭 되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소소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는 사건으로 번진다.

2006년도쯤을 전후로 하여, 한국 문학계에는 다시금 ‘소설의 위기’라는 것이 대두되고 있었다. 박찬욱, 봉준호를 위시한 영화 쪽 창작자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작품을 내놓았고, 작가주의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천만 관객이라는 대중적인 흥행작마저 몇 차례 나온 참이었다. ‘미드 열풍’이라는 것도 불어서 <프리즌 브레이크>라든가 <로스트> 같은 해외 드라마들도 인기를 끌었다.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에 한국 문학계에는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열린책들을 비롯한 출판사들은 ‘경계문학’이라든가 ‘중간문학’이라든가 하는,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세계문학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기존의 문단문학과는 차별화된, 본격적으로 대중친화적인 소설을 타깃으로 한 공모전을 열기 시작하고 그 공모전의 상금 액수가 천만 원에서 2천만 원, 5천만 원, 기어코 1억으로 경쟁적으로 치솟게 되어 바야흐로 ‘공모전의 시대’가 열린 상황이었다. 노블레스 클럽의 런칭과 <얼음나무 숲>의 출간은 이런 시대적 맥락 속에 존재했고, 비록 노블레스 클럽이란 레이블은 3년을 채 이어가지 못했음에도 당시의 장르 소설에 대한 인식, 즉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것’이 주류였던 한국 장르 소설 시장에서 유의미한 판매고를 올리며 ‘장르 소설도 사서 보는 것이다’라는 인식의 개선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노블레스 클럽이란 레이블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대중에게 깊은 각인을 심어준 것은 역시나 <얼음나무 숲>일 것이다.

 

#3. 세 작품이 있었다.

여기서 잠시 <얼음나무 숲>이 연중을 한 시점으로 돌아오자.

<얼음나무 숲>이 노블레스 클럽에서 출간된 게 2008년 1월인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연중을 한 날짜는? 내 기억으론 아마 2007년 10월 경이다. 2개월의 공백 동안 나는 당연한 수순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작가는 소설 연재사이트였던 드림워커에서 2004년부터 활동하고 있었는데, 차원이동을 하게 된 후 세상을 구할 존재로 내정된 소녀의 이야기(흑색의 대나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전설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비밀 조직에 대한 이야기(전설을 만들어 드립니다) 두 편의 장편을 연달아 썼었다. 이러한 작풍은 2006년 5월 <거미무덤>에서 일변하게 되는데, 앞의 두 작품이 책으로 5권 분량의 꽤 긴 작품이었던 데에 반해 <거미무덤>은 이후 일관되게 유지하는 작풍과 같이 단권으로 완결성을 지니는 작품이었다. 긴 호흡의 장편에서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밀도 높은 구성을 신경 쓰게 되고부터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후 그러한 작가의 스타일이 완성을 이루게 된 것이 <거미무덤>로부터 고작 바로 다음 해에 쓴 <얼음나무 숲>에서였다는 점이다.

<전설을 만들어 드립니다>는 출간되었고(비록 많은 인터넷 서점에서 <얼음나무 숲>을 작가의 데뷔작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의 데뷔작은 이 작품이다), <거미무덤>은 자비출판으로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후 세 번째 작품 <얼음나무 숲>이 세상에 나오게 된 후, 작가는 다시 문피아에 <0시 0분 0초>라는 짧은 작품을 연재한다. 이것은 매회 마지막에 선택지를 제시해서 독자의 투표로 향후 전개를 결정하는, 연재 소설에서만 가능한 실험적인 호러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2009년 7월에는 상술한 노블레스 클럽에서 <모래선혈>이 출간된다.

이렇듯 작가는 매 년 한 작품 씩의 페이스로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던 중이었는데, 노블레스 클럽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2009년에는 ‘이타카’라는 장르 소설 레이블이 출범하게 된다. 그리고 이타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출간 전 연재를 예고한다. 이때의 출간 예정 작품에 작가의 신작인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이 있었다.

이후에도 작가는 1~2년을 주기로 <녹슨달>, <오만한 자들의 황야>, <눈사자와 여름>을 낸 후 긴 휴식기를 가지고 브릿G에서 <언제나 밤인 세계>를 통해 복귀한다.

 

#4. 그날, 아주 따뜻한 봄날

이번 단편 <그날, 아주 따뜻한 봄날>은 <얼음나무 숲>의 외전 단편이다. 그것도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중 한 명인 ‘키세’를 주인공으로 한.

키세란 누구인가?

그간 작가의 작품을 쭉 읽어오면서 발견한 작가의 특징 몇 가지 중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 즉 슬픔이나 비극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가의 시각에 있었다.

만약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다면, 아름다움에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_<흑색의 대나비>

‘눈물-미(美)-질식-죽음’을 한 데에 묶는 데뷔작 때부터의 이러한 시각은,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작가의 작품관을 관통하는 감성일 것이다. 물론 <얼음나무 숲>을 읽을 당시에는 이렇게 세세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아이러니’에서 오는 감성이 약 20년 동안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이유로 <얼음나무 숲>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주인공인 ‘고요’도, ‘바옐’도 아닌 ‘키세’였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 예언자의 사랑.

<얼음나무 숲>의 팬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단편이다. <얼음나무 숲>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ㅁㅁ을 보고 ㅇㅇ을 봐라’라는 권유가 성가신 건 알지만) 두 작품을 읽어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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