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일상 속에서 탈출구 만들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다프네, 나를 데려가 (작가: 조제, 작품정보)
리뷰어: vega, 17년 8월, 조회 70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어린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말 네가 말을 하는 거니?”

“내가 하는 말을 지금 듣고 있잖아?”

“어디로 말하는 거니?”

“나무는 몸 전체로 얘기해.

잎으로도 얘기하고 가지랑 뿌리로도 얘기해.

그럼 귀를 내 몸에 대어 봐.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거야.”

“다른 사람도 네가 얘기 한다는 걸 알아?”

“아니, 오직 너만.”

“정말?”

“맹세할 수 있어.

어떤 요정이 말해주었어.

너처럼 작은 꼬마와 친구가 되면 말도 하게 되고 아주 행복해질 거라고 말이야.”

J. M. 데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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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작가의 엽편 소설 ‘다프네, 나를 데려가’는 제목만 보면 신비로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 ‘다프네’라는 그리스 신화 속 요정이 제목에 나타나 있으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먼저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겉으로 보았을 때 문체가 간결해서지만 대체적으로 지문과 대사가 서로 ‘균형’을 맞춰서이기도 하다. 지문이 너무 많아지면 독자들의 상상력에 제한이 생기고, 반대로 대사가 많아지게 되면 오히려 산만해지는 문제가 있는 법인데 작가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 둘의 균형을 적절히 맞춘 것 같다. 또한 소녀의 행동을 자세히 묘사한 작가의 문체는 자칫 심심해 질 수 있는 작품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는데 그러한 행동들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슬픈 감정이 배가(倍加)되어 가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내용도 간결하다.

는 이야기인데 결코 단순하게만 볼 수 없는 묵직한 이야기이다. 묵직하다는 뜻은 아동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사회상을 한 소녀의 일화를 통해 상세히 담아내고 있기에 사용될 수 있는 형용사이다. 학대가 일어난다는 것은 소녀의 대사에도 등장하는데 ‘다프네는 좋겠다. 무서운 일이 생기면 나무로 변해 도망칠 수 있으니까.'(강조는 인용자)를 통해 무서운 일이 학대 받는 현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동 학대를 알게모르게 일삼고 있는 ‘엄마’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성격이 ‘괴팍한’ 사람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엄마’라는 존재는 대게 가정의 ‘안락함’을 상징하는 존재인데 그런 상징적 의미를 가진 엄마가 소녀에게 하릴 없이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는 것을 통해 소녀의 가정에서 ‘안락함’은 소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녀는 이에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낸다. 결국 소녀의 순종적인 행동을 통해 엄마의 괴팍한 성격과 가정 내의 학대는 더 부각이 되며 결론적으로 소녀와 엄마, 더 나아가서 가정과는 대척점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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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녀는 학대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소녀가 학대에 견뎌나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프네’이다. 소녀에게 다프네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에서 제제가 의지하는 밍기뉴와 같은 대상이다. 실제적으로 전자의 작품과 이 작품은 유사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가장 큰 유사점은 어려운 가정에서 ‘학대’ 받으며 주인공들이 자라난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이 작품은 차이도 보이는데 전자는 밍기뉴를 자르면서 주인공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지만 후자는 다프네처럼 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녀가 다프네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어른이 되지 않는 ‘미성숙한’ 부분으로 치부될 수 있을까? 그리고 ‘성숙’의 기준은 정해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 소녀에게 다프네는 일종의 ‘탈출구’ 같은 대상이다. 지옥 같은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소녀에게 있어서 이미 정신적 성숙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데 소녀는 탈출구의 대상과 합일(合一)마저 이루어낸다. 이 것은 단순히 토테미즘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니라 소녀 입장에서의 정신적 성숙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제가 밍기뉴를 자르면서 정신적 성숙을 완성한 것처럼 소녀는 다프네와의 합일을 통해 현실의 도피와 정신적 성숙을 함께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일상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끝이 없는 미로, 다람쥐가 돌아가는 쳇바퀴,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띄,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림 노래… 어떤 걸로 정의를 내려도 한 가지 공통점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웃기는 일상이든 끔찍한 일상이든 항상 반복된다는 순리를 가진 일상 속에서 우리는 탈출할 수 있을까? 만약 탈출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도 소녀의 친구 ‘다프네’처럼 말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이 있을까? 어딘가의 다프네를 만들어 놓고자 하는 마음이 솟아오른 채 이 글을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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