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아래에서 비평

대상작품: 영원의 단면 (작가: 샤유, 작품정보)
리뷰어: 스트렐카, 17년 8월, 조회 77

잔에 물을 붓다 보면 물이 잔의 가장자리에 힘겹게 매달리게 되는 순간이 온다. 글을 읽으며, 그런 넘치기 직전의 잔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가장자리를 긁어대는 듯한, 마냥 간지럽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그렇지만 통증까지는 아닌.

글은 서술으로만 이어진다. 어딘가로 환기되는 일 따윈 없이, 서술은 ‘나’의 내면과 행위를 오간다. 흉터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아래에서 달라지는 것은 ‘나’가 집착하는 디테일이다. 그녀의, 그녀가 아닌 사람들의, 행성이 새로 갖게 되었거나 이전부터 갖고 있던 흉터들. 연원이나 과정은 다를지언정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된다. 모든 것이 평균화한다. 세부사항은 죽고 줄기만이 남는다.

 

“똑같은 필름을 여러 개 이어 붙인 다음 약간의 스크래치만 그어놓으면 내 삶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줄기마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이 다가온다. 흉터라는 관념에 부여된 영속성에는 끝이 있으며 그것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리리라는 사실이.

충분한 거대함 앞에서 자그마한 것들은 구분할 수 없다. 영원에 대비되는 모든 사건들이 그렇다. 그 영원 가운데에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면 무언가가 불연속적으로 바뀌는 순간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예를 들자면 잔이 넘치는 순간.

그 순간을 무한히 확장하다 보면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가득 찬 잔을 넘치게 하는 것은 아주 자그마한 물 한 방울이라는 사실을.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균형은 깨어지고 물은 흐른다. 마음 한 구석을 긁어대는 듯한 감각은 앙금을 남기며 해소된다.

돌아보면, 그 한 방울을 위해서 기나긴 천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천착조차 영원 아래에서는 찰나로 화한다. 그러므로 단면이다. 우리가 관측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영원의 단면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근사(近似)할 수 있다. ‘나’의 천착이 시작되어 끝나는 과정을, 물이 넘치는 그 순간으로. 영원 아래에서, 하나의 단면으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