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고향, 그러나 누군가 묻는다면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비읍시에 대하여 감상

대상작품: 비읍시 이야기 (작가: 레드향20,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2시간 전, 조회 4

이유없이 학생을 때리는 선생, 가격이 애매하게 저렴한 독서실이 저렴한 이유, 비밀계단과 비밀계단 뒤쪽에 있는 수상한 교회집회, 아이돌이 되고 싶어 착한 체를 하는 일진… <비읍시 이야기>에는 어쩐지 우리가 한번쯤 곁을 스치고 간 기분나쁜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보통 호러소설과 기담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신비한 장소의 신비한 곳에서 일어나는 광기어린 기묘한 이야기라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달라 신기했다. 게다가 <비읍시 이야기>의 에피소드들은 도시 생활자들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한 두다리만 걸치면 그 일을 겪은 사람이 튀어나와 자기 이야기라고 말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야기 전체에 맴돌고 있다. <비읍시 이야기>의 비읍도 익명처리를 하듯 자음으로만 표기되었다. 어딘지 말하기 창피하거나 꺼려지는 것처럼 제목부터 <비읍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외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살아온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비읍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기묘한 이야기들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일어나고 있던 일들에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거의 없다. 대체로 주인공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러싼 사람들(방관자)의 일원이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주변부에서 사건을 목격한다. 주인공은 사건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는데 그것은 주인공이 미성년자로 추측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읍시에서 일어난 일들의 성격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피해자가 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사건의 대개는 주인공이 사건을 외면했거나 사건의 주변부로 밀려났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다. 주인공은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남으며 기묘한 일을 겪고 정신이 크게 이상해지지 않고도 성장하여 비읍시를 떠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상흔은 주인공에게 남아있다. <비읍시 이야기>의 주인공은 과연 한 명일까? 중소도시를 떠난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도 비읍시는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쇠락해가는 도시안에서 살아가며 겪었던 이상한 일들은 괴담의 형태로 익명성을 가지고 슬그머니 비읍시의 이름으로 떠오른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이라면 누구나 비읍시가 고향일 수밖에 없다.

<비읍시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잊고 살았던 비읍시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추억 혹은 괴담들을 이야기를 통해서는 반갑게 읽지만 비읍시가 네가 아는 그 도시인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보다 내가 옛날에 알았던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하고 술자리에서나 말할 수 있는 조금 끔찍하고 조금 잔혹하지만 어쩐지 찝찝하고 기분나쁜 에피소드들. 어쩐지 음습한 마음의 고향, 비읍시 이야기를 몰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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