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 참치 현상학 비평

대상작품: 호빵에 참치를 섞어 드세요 (작가: 창궁, 작품정보)
리뷰어: 비티, 2시간 전, 조회 8

1. 들어가기

‘호빵’과 ‘참치’가 있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호빵’과 참치’를 연상한다. 언어학적으로나 논리학적으로나 동등하게 나열된 두 명사는 각각 개별적이고 객관적인 어휘로 받아들여지며 독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호빵’과 ‘참치’를 섞지 않은 이유를 떠올리게 된다.

비평에 능숙한 독자라면 나아가 ‘호빵’과 ‘참치’에서 모종의 표상을 도출해내는 실험을 시작할 것이며, ‘호빵’과 ‘참치’가 ‘승우’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해 나갈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것으로 비평가는 작가의 의식과 텍스트의 언어를 사실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내 ‘호빵’과 ‘참치’라는 두 요소의 합이 일으키는 창발을 돈오한 비평가는 ‘호빵’과 ‘참치’의 합이 갖는 지식량이 비평가 개인이 경험적으로 내릴 수 있는 ‘호빵-참치 결합’의 지식의 합보다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면 텍스트 속에서 독자들은 ‘호빵’과 ‘참치’ 사이의 기묘한 화학식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단서로는 ‘팥’이 있겠다. 하지만 ‘호빵-팥-참치의 화학적 결합’이 어째서 ‘승우’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는가는 도식화될 수 없다. ‘호빵-팥-참치’의 구조주의 분석이나 정신분석의 지형모델에 대입한 ‘호빵’, ‘팥’, ‘참치’로는 이후 발생할지 모르는 임의의 ‘호떡’, ‘꿀’, ‘김치’ 등의 결합이 불러일으킬 현상을 충분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차어피에 호빵에 참치를 섞어 드세요 는 단발적인 작품인만큼, 이 작품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을 도식화하면 충분할 것이란 생각은 과학적이지 않다. 재현이 부재한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혹자는 텍스트 비평을 통해 ‘호빵-팥-참치’의 상징과 창발을 일상어로 번역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인 비평이다. 허나 텍스트의 변화는 ‘호빵’과 ‘참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는 사라진다. 어찌되었건 간에 실증은 전복되고 문학이 남는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SF다.

일상적인 언어로 풀이해보자. 작품 속 ‘호빵’과 ‘참치’를 섞었을 때 발생한 현상은 우리가 아는 호빵과 참치를 섞었을 때의 반응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호빵에 참치를 섞어 드세요 속 ‘호빵’과 ‘참치’는 섞는 것으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를 창발이라 부른다. 돌연히 출연한 창발을 설명하기 위해 독자들은 변화무쌍한 텍스트 속에서 ‘호빵’과 ‘참치’가 승우에게 일으킨 현상을 분석할 것이다. 혹자는 정신분석학을 호명할 것이며, 혹자는 작품 내에서 ‘호빵’과 ‘참치’의 합이 갖는 기묘한 화학식을 발견하려들지도 모른다.

호빵에 참치를 섞어 드세요의 장르는 SF다. 과학적 방법론과 사변이 필요하다. 반면 이 작품 내에서만 성립하는 설명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과학은 재현이 가능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빵-팥-참치’의 결합이 승우에게 일으킨 현상을 발견하고 도식화한다고하여 그것이 언젠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호빵-꿀-김치’ 등의 결합을 설명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구태여따지면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고로 필자는 ‘호빵’과 ‘참치’를 개별 요소로 분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팥’은 ‘호빵’에 내재하는 요소로, 호명이 증언부언이 될 뿐이다. 또한 서두에서 언급한 동등하게 나열된 명사가 개별적이고 객관적인 어휘로 인식되는 것이 비평의 과학성을 저해하는 인간의 본능임을 밝히고 ‘호빵-참치’의 사태 자체를 기술할 것이다.

 

2. 호빵 참치 사태

작품 속에서 ‘호빵-참치’는 승우에게 큰 충격을 준다. 먼저 이를 ‘호빵-참치 사태’라 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호빵-참치 사태’는 텍스트 밖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가? 누군가는 호빵을 좋아할 것이며 누군가는 호빵을 싫어하고 이는 참치도 마찬가지다. 호빵-팥이 들어간-과 참치를 섞어먹는 것이 호불호가 심할 것임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우는 ‘호빵-섞인-참치’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호빵-참치 사태’는 독자에게 있어서 불호가 심할지언정 개인의 파괴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반면 승우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반응을 내비친 까닭은 공포영화는 공포가 필름 안에 갇혀있는 덕에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다시말해 우리에겐 텍스트라는 차폐막으로 가려진, 언어의 무한성 덕분에 상상은 할 수 있는 현상이 승우에게는 아무런 필터도 없이 실존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호빵-참치 사태’가 독자와 맺은 관계는. 승우와 ‘호빵-참치’ 간 관계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 알고 우리는 ‘호빵-참치 사태’에 대한 태도를 적절히 바꿀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호빵-참치 사태’가 순전히 승우에게 어떤 현상으로 나타났는지를 탈학문적인 태도로 기술할 필요가 있다. 승우는 호빵과 참치를 사왔으며, 현진은 이를 맛있게 먹었다. 승우는 제1조 2항을 잘 외운 요원이며, (건영에게 있어)승우는 사라졌다.

 

3. 밴앤닥스

‘호빵-참치 사태’를 형이상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보다 난해한 것은 ‘밴앤닥스’일 지 모른다. 승우의 부재는 ‘건영’으로 대체되었고 건영은 ‘현우’와 그의 ‘매니저’를 코끼리도 잠재우는 밴앤닥스로 마취시킨 채 폐허로 향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사실 ‘현우’는 깨끗한 연예인으로 가장한 머리에-디코이가-심긴 이중스파이며 현진이 수시로 디코이를 교체한다는 사실이다.

 

4. 현상학

‘호빵-참치 사태’와 ‘밴앤닥스’는 모두 현진을 축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를 현진은 자각하고 있는데, 건영에겐 ‘호빵-참치 사태’를 언급하며 자리에 없는 승우가 ‘밴앤닥스’할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두 현상으로 일어날 기분과 감정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만약 ‘호빵-참치 사태’와 ‘밴앤닥스’가 각각 ‘호빵과 팥과 참치의 결합’, ‘현우와 뇌와 디코이의 결합’으로 분석되었다면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결합이 갖는 의미를 찾아냈겠지만, 이는 각각 사태가 인물 개개인에게 어떤 현상인지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  반면 개개인의 판단과 반응을 기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물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진은 호빵과 밴앤닥스에 모두 거부감이 없다. 때문에 관찰자로서 적합하며 두 사태에 모두 참여할 수 있다.

건영은 호빵에 대한 거부감을 디코이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혐오감을 드러낸다.

승우의 태도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명명백백하다.

여기서 건영과 승우는 구조적으로 대칭을 띔을 발견할 수 있다. 건영의 부재로 ‘호빵-참치 사태’가 일어났으며, 승우의 부재가 ‘밴앤닥스’를 발생시킨 것이다.

현진은 말한다.

“내 호빵이 비주얼적으로나 테이스티적으로나 더 좋거든”

이는 ‘호빵-참치 사태’와 ‘밴앤닥스’가 현진에게 있어서 비교가능한 대상임을 보여주는 진술이며, 비교 가능하다는 것은 접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는 곧 현진에게 ‘호빵-참치 사태’와 ‘밴앤닥스’가 동일한 층위에서 발생한 일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해주는데, 앞서 언급한 ‘호떡-꿀-김치’는 이미 ‘밴앤닥스’로 실현된 것이다.

이는 곧 ‘호빵-팥-참치’의 도식이 ‘현우-뇌-디코이’의 도식과 동일함을 시사한다. 참치의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먹은 것처럼 머리에서 용액이 흘러나오기 전에 머리를 봉합한다. 드디어 구조주의적인 시도가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구조주의적 시도다. 호빵-현우, 팥-뇌, 참치-디코이, 기름-용액 등의 구조는 미리 주어진 개념을 명명하면서 발생하는 중복 용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 개념은 상보적으로 존재하나 변별되진 않는다. 때문에 기의와 기표라는 도상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듯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념들을 명명한 것이지 개념의 기저에 존재하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무언가의 대립을 통해 기술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호빵계 어휘와 현우계 어휘는 1대1로 대응하며, 특정한 대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이 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사변을 하자면 작품 속 ‘호빵-참치’가 어울리지 않은-부적절한-관계임은 현대 사회와 동일하다.

안 어울리는 걸 섞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작품소개를 통해 ‘뇌-디코이’ 또한 어울리지 않으며, 작품 속 사회에서도 ‘호빵-참치’ 못지 않은 큰 충격을 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현진에 의해 독점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존한다는 점에서, 현우를 쫓던 안티팬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독점된 추악함이 누군가에게 추적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폭격으로 발생한 폐허로 향하는 것은, 쫓아오던 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런 추악함이 벌어지는 일이 일상을 사는 평범인들에게는 무척 위험하고 어울리지 않는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쉽게 관측할 수 없음을 말한다. ‘호빵-참치 사태’가 대체로 관계자 외 출입금지로 출입할 수 없는 경비실에서 이루어졌듯.

 

5. 현실

‘호빵-참치 사태’와 ‘밴앤닥스’가 호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둘은 누군가에겐 비위상하는 일에 불과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비극이다. 작품은 이 두사람을 각각 호출한다. 허나 이조차 관계자다.

그러니 호빵에 참치를 섞어 드세요가 말한 안 어울리는 것은 호빵은 호빵으로, 참치는 참치로 먹는 우리 일반인이 도통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하고 불편한 일이 현실에서나 작품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함을 인식하라 말한다. 각성하라 말한다. 비록 그것이 호빵에 참치를 섞어먹는 것처럼 불쾌한 일일지언정.

이내 두렵다. 이 리뷰 또한, 필자 또한, 호빵-참치처럼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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