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간을 악마와 가까워지게 만드는 걸까? <피에타> 의뢰(감상)

대상작품: 피에타 (작가: 선연,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9시간 전, 조회 5

 

만약 당신 손으로 루인 하르만을 죽일 각오가 없다면, 전 당신이 복수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쪽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간생략)악마와 엮인 인간은 반드시 지옥에 가기 마련이에요.”

(순교자(1)-P96)

 

 


 

 

목차

1.악마(devil)에 대한 단상

2.무엇이 인간을 악마와 가까워지게 만드는 걸까?

3.독자로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본 리뷰는 “선연”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이며, 현재까지 연재된 회차 중 약 1000매 분량을 감상한 후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악마(devil)에 대한 단상

 

관습적으로 종교에서 표현되는 ‘악마(devil)’라는 존재들을 떠올릴 때면,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인간의 본성의 한 면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이들을 묘사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토록 청과 백이라는 이분법적 진영으로 나눠서 설명하기에는, 긴 세월동안 축적 되어 온 ‘악마’의 상징성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품은 ‘악(惡)’으로 규정되는 속성만큼은, 예로부터 인간이라는 생물들이 무엇을 경계해왔는지 명확한 지표로 활용됩니다. 종교관에서 ‘악(惡)’은 ‘욕(慾)’과 결이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틀에서 보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흉기와도 같아 보이죠. 그런 의미에서 ‘악마’는 곧 인간을 흔드는 흉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취기에 정신이 어지러워지듯, 피를 흘리는 고통에 눈앞이 아득해지듯, 이성의 외모에 끌려 가치판단이 흐려지듯……. 종교에서는 이런 인간이라면 한 번 쯤은 휩쓸리는, 혹은 휩쓸리고 싶은 욕구에 대해 경계하도록 가르치기 마련입니다. ‘악마’가 이런 인간을 흔들 수 있는 욕구를 가장 어두운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날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외부의 누군가에게 돌팔매를 하며 정당화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추측에도 다다를 겁니다.

 

서두가 지루했습니다. 결국 이번 <피에타> 리뷰를 의뢰받고 가장 주목했던 것 또한 ‘악마’가 인간을 휘두르는 모습 이상으로, 이런 ‘악마’에 휘둘리고 살아남는 인간의 조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릴러 무비에서 살인에 심취한 살인마를 조명하면서도, 종국에는 그런 살인마로부터 벗어난 인간에 초점을 맞추듯이 말이죠. 단순히 흉기를 든 살인마가 아닌, ‘악마’로 대표되는 초월적인 힘에 필사적으로 대적하는 인간은 어떤 형태로 그려지는가야말로 해당 장르에서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2.무엇이 인간을 악마와 가까워지게 만드는 걸까?

 

앞서 ‘악마’를 초월적인 힘이라고 묘사했는데, 그것은 종교적으로 악과 욕구에 쉽게 휩쓸리고 죄악을 반복하던 인간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창작물에서 ‘악마’는 곧 인간을 흔들고 시험하는 존재이며, 언제든지 목에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악우나 다름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인상은 그런 악마적인 존재가, 곧 악마나 다름없는 인간으로 제시되는 도입부였습니다. 작중에서 ‘루인 하르만’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악인이 대표적인 예시였죠.

 

루인 하르만. 32(중간생략)불가사의한 수법으로 역병을 퍼뜨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살해하고, 피해자들의 시체를 움직여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루인은 말 그대로 생과 사를 주관하는 신 그 자체였다.

– (어느 죄수의 고백(1)-P32)

 

주인공 ‘사라 모건’은 이런 루인에 대해 ‘생과 사를 주관하는 신 그 자체’라는 인간으로서 받기 힘든 평가를 내리며 그를 소개합니다. ‘피해자들의 시체를 움직여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데에서 그가 정신이 온전치 못 한 광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역병’과 같은 재난으로 상징되는 요소들이 살인수법으로 얽히니, 작중에서 등장하는 ‘루인 하르만’은 곧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그는 관습적으로 말하는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당신의 언니였던 세라 모건이 내 손에 죽었기 때문이지. 안 그렇습니까?”

세라는 나를 만날 걸 행운이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자주 만나서 이야기했고, 나는 세라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뇨.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라를 위해서였죠. (중간생략)세라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녀는 죽은 후에야 비로소 구원받은 겁니다.”

– (어느 죄수의 고백(2))

 

이 순간에 독자로서 그가 하는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오로지 주관적인 시선과 해석에 갇혀 있으며, 실제로 그가 세라와 어떤 관계를 나눴는지, 세라가 무엇을 바랐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꿰뚫어볼 수 없는 벽을 세워 놓고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야말로, 그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초인, 다시 말해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지점입니다.

 

앞서 말했든 ‘악마’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가증스러운 흉기로 대표됩니다. 그 지점은 곧 인간을 흔드는 ‘욕구’와 ‘감정’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고, 이 순간에 ‘루인 하르만’이 하는 행위는 주인공 ‘사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데에 있습니다. 바로 언니의 죽음. 루인 하르만에 대한 ‘복수심’이죠.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언니가 웬 정신병자한테 걸려 살해당한 것도, 내가 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 내 삶이 언니의 무덤이 되어버린 것도, 자기가 악마라고 떠드는 미친놈이 언니의 그림자를 가지고 장난치 것도, 전부 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 (악의 꽃(1) – P63)

 

떠올려보면, 사라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재난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길거리를 건너다나 음주운전에 폭주하는 차량과 맞부딪히는 것처럼, 그녀로서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걷다가 바닥이 꺼진 듯한 영문도 모를 ‘재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루인 하르만’이라는 인물의 표면적인 모습을 살펴봐도, 그는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짐작컨대 사라의 언니를 죽였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이 자매는 휘둘린 것에 가깝습니다. 그녀들로서는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말이죠. 울분이 끓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네가 순순히 믿어줄 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대부분의 개체가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어. 한 마디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예측할 수 있다고. 나는 그 놈이 간수들을 죽이고 탈옥하는 미래를 보았고, 어떤 변수가 생기든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지.”

말 그대로야. 넌 성을 떠나지 않을 거고, 네 발로 백작을 찾아가서 제발 자기를 부려먹어 달라고 싹싹 빌게 돼. 혼자 힘으로 루인 하르만한테 복수하는 건 힘들 테니까.”

– (악의 꽃(4) )

 

사실 앞선 내용들만 살펴봐도 사라가 복수를 결심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든 과정은, 오로지 그녀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작중에서 악마는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능력을 언급하며, 마치 앞으로 사라가 능동적으로 이뤄낼 결과물까지 누군가의 손아귀에 재단되는 듯한 감각을 주고 있습니다. 작중의 벨리알은 그저 책에 적힌 구절을 읽듯 앞으로 사라의 행위를 읊어준 것에 불과하나, 오히려 이런 행동 자체가 사라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악마의 말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하지만 독자들은 사라가 복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굴욕적인 처사라도 목적을 위해 감수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라가 느끼고 있는 복수심이, 독자가 루인 하르만으로부터 느꼈던 악에 대한 공포와 일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일직선적인 감정조차, 미래를 감지하는 악마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는 행위로 격하되는 느낌을 줍니다. 사라는 목줄에 끌려가듯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길에 이정표만 두 갈래로 놓아둔 꼴입니다.

 

당신이 절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면 제가 당신과 계약할 인간을 찾아주겠다. 어때요?”

당신이랑 계약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 많다니, 당신은 인간을 유희거리로 여기면서도 인간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네요.”

– (악의 꽃(7) )

 

아이러니하게도 사라가 이런 악마들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은, 그들 또한 인간과 같은 욕구가 있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라가 악마 ‘포칼로르’를 설득하는 장면은 그런 욕구의 밀고 끌어당김에 나오는 위태함이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악마들이 혀를 놀리는 과정에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사라(인간)로서는, 그에 휘둘리고 대처를 궁리하는 것밖에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옭아맨 모든 규칙들은 당연하게도 그 대상이 악마에 한정되어 있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어. 우리는 물론 우리 계약자들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바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야.”

– (악의 꽃(7) )

 

‘맹세를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 마치 내 말은 믿어도 된다는 식의 가식이라는 것은 눈치챌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악마’라는 신분으로 사라를 설득하는 과정이 무척 ‘인간’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도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라는 그 연약한 지점을 마치 ‘악마’처럼 건드렸던 셈이죠.

 

하지만 그것이 곧 인간과 악마가 동등하다는 의미로 읽히지는 않습니다. 힘의 논리에 의하면 인간은 그들과 대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악마와 거리를 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작중에서 그 모든 것이 무마됩니다. 악마가 ‘계약’ 혹은 ‘내기’라는 형태로 인간과 교류하고, 대가를 주고받는 과정이야말로, 이렇게 사라가 잠시나마 그들을 인간처럼 설득했다고 느꼈던 거짓된 희열감조차, 필수적으로 인간과 더불어 움직이려는 악마들의 위험한 속성과 거리를 두겠다는 사고를 거세시키는 듯한 시도로 느껴집니다. 그렇게 인간은 ‘악마’와 가까워집니다.

 

그럼 당신이 말한 복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당신은 루인을 어느 정도로 증오하죠?”

루인 하르만을 죽이고 싶나요?”

만약 당신 손으로 루인 하르만을 죽일 각오가 없다면, 전 당신이 복수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쪽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 (순교자(1) )

 

전술했듯 악마는 초월적인 존재이며, 인간을 앞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실제로도 작중의 악마들은 그런 능력으로 인간을 위협합니다. ‘루인 하르만’이라는 존재가 위험한 살인마로 불리게 된 것도, 사라의 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결국 ‘악마’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힘이란 곧 그런 악의 존재가 주는 대가와 같습니다. ‘리안’이 지적하는 것은 사라가 인간으로 불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런 존재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힘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논리에서 비롯되죠. 당장 사라는 ‘앤드류’라는 인간의 힘을 빌리려고 애쓰고 있죠. 하지만 그 배후에 힘을 주고 있는 ‘악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오히려 ‘앤드류’라는 인간이 곧 사라를 악마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방파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스타로트가 제 부탁을 들어줬다면 우리 계약은 진작 해지됐을 거예요 (중간생략)온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타 죽으라는 부탁이요.”

정말이에요. 그 여자가 몇 번을 죽여도 되살아나는 존재라면, 한 번쯤은 나를 위해 죽어줬으면 좋겠어요. 흉측하고 고통스럽게.”

– (달과 6폰도(3) )

 

리안의 비도덕적인 사고는, 그가 ‘악마’와 거리를 두지 않으며 섞여 든 불순물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치부하는 일도 ‘악마’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곁에 있는 것으로 가능해집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할 때 인간은 도덕이라는 언어로 가려놓았던 표면을 찢고 가장 추악한 감정을 이루고 싶다는 또 다른 욕구에 휘둘립니다. 리안은 이런 ‘악마’와 가까워진 누군가의 표본입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악마와 계약하고, 부도덕한 일로 손을 더럽혔지만, 사라에게 자신의 현상을 경고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인간성을 부여잡는 시도를 반복합니다.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으면서도 사람이 죽는 걸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도 당신 언니를 죽인 살인자와 다를 바 없게 되니까.”

우린 틀림없이 우리가 저지른 짓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을 거예요. (중간생략)지금, 이번 생에서 원하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요.”

– (달과 6폰도(5) )

 

리안이 건네는 말은 걱정과 충고가 어려 있습니다만, 냉정히 떠올려보면 평범한 사람이 살생에 거부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입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인간의 본성을 인정과 동시에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칼을 쥐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칼을 휘두를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그 또한 악마가 주는 힘이 있기에 악마와 대적하겠다는 욕구를 다집니다. 사라는 그런 ‘악마를 손에 쥔 인간’의 표본을 마주하며, 언니의 복수로 가는 길에 고민을 삼킬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는 얼마나 ‘악마’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그녀에 대한 응원을 작게 구겨두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독자로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제가 이 작품을 사랑했다는 것은 독자로서 드릴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감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독성 있고 깊이가 있는 문체와 더불어, 재해석을 위한 철저한 지식 조사, 그리고 명확한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그야말로 저를 위해 차려놓은 작은 정식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첫인상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을 읽으며 놀랐던 가장 큰 특징은 그 호흡이 무척 ‘웹소설’스러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미 300회가 넘는 분량을 연재한 만큼 그 방대한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로 담길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않았지만, 막상 짧게 끊어지는 한 분량의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는 감각들은, 웹연재에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라가 처음 호라이즌 성에 진입하는 공간 변화의 과정이 다소 작위스럽다거나, 벨리알과 첫 대면에서 주고받는 지식과 그림자를 찾기 위한 내기들은 큰 흐름에서 사족처럼 느껴지는 감도 있었습니다만, 긴 연재 흐름을 끌고 나가기 위해 도입부를 최소화하고 직접적으로 악마와 맞부딪히는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에피소드로 간주하자면, 마냥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낯선 사라의 입장에서 설명을 이어가다보니 인물이 늘어나거나 대화를 듣는 입장이 되면 호흡이 미묘하게 늘어지는 감이 있었고, 언니의 복수라는 목적과 그를 이루기 위해 엔드류에게 집착하는 동기가 다소 표면적인 이해만 구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문해력이 부족한 독자 입장에서 무신경하게 던지는 트집에 불과하니 무시해주세요 :downcast-sweat: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에타>라는 작품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님이 작품에 쏟고 있는 애정의 정도가 무척 훌륭하기 때문이라는 인상도 받게 됩니다. ‘악마’를 관념으로 두지 않고 철저히 인간과 맞붙으려는 존재로 묘사하는 집중도는 물론이며, 사라가 관찰하는 삐걱거리는 세상은 그 깊이에 심취하기 충분한 여지가 있습니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저는 이 작품의 초반부를 훑는 수준에 멈춰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의 분량을 생각하면, 저로서는 머리맡에 가득 선물을 놓아두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분을 간직하게 됩니다.

 

작가님이 사랑한 이야기. 더불어 독자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피에타>의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마음을 빼앗긴 독자로서 남은 이야기도 최선을 다해 쫓아가겠습니다 :g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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