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대체 결말로 나아가는, 원작에 비해 매우 부족하고 엉망진창이며 빈곤한 상상력의 팬픽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재희에게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격리실 안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세상이 180도로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 수업이 임박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젠테니얼로 달려갔다.
격리실 안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테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수사관들이었다. 그들은 격리실 곳곳에 퍼진 독극물을 조사하고 제거하고 있었다. 너는 그들의 분주함에 아랑곳없다는 듯이 거울 옆의 네 침대 위에 앉아 얼굴에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있었다.
“영상 봤는데 수정구슬이 터졌어. 유미가 소리굽쇠를 두드리자 마자.”
터진 수정구슬 안에서는 독극물이 나왔다. 브롬화네오스티그민. 그것은 부교감신경 흥분제인 네오스티그민이라는 약을 브롬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아주 소량으로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신경독이다.
적어도 L형 아미노산을 가진 사람에게는.
유미는 달랐다. D형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유미의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에는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 달라붙지 못했기에, 그 독성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 결과 테러는 실패했다. 너는 살아남았다.
나는 거울로 다가가 네게 물었다.
“이런 것까지 내다보고 네 세포를 D형 아미노산으로 만든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너는 쓰게 웃었다. 네 얼굴은 영혼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
테러는 자연회귀주의 조직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와 함께 밝혀진 것은 내가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펼치기 위해 도움을 받았던 사람 중에 자연회귀주의자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이 자연회귀주의자들의 주장과 똑같다는 사실을 무시한 건 그래서였는지도. 당시 나는 네 일로 초조함과 무력함을 느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었다.
그들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즉 우리가 네 격리실에 드나드는 물건들의 미생물 소독에만 만전을 기할 뿐 물건들의 내부 구조나 화학 물질 포함 여부까지 탐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아이디어를 얻어 소리굽쇠와 수정구슬을 제작했다. 수정구슬은 소리굽쇠와 고유진동수가 일치하여 소리굽쇠를 두드리면 공명하여 깨지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것의 텅 빈 내부를 채운 것은 너를 겨냥한 독극물이었다. 그것이 네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언론들은 용의자들의 체포에 관한 뉴스를 연일 내보낸 뒤에 거울 인간 복제 금지에 관한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뉴스에는 리처드 골드를 비롯한 원로 과학자들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었다. 리처드 골드는 네 죽음에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거울 세포 연구에 더욱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여론 조사 결과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80퍼센트가 넘었다. 온 세상이 너에 대한 테러를 반기는 것 같았다.
*
그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두 번이나 살해당할 뻔한 일이 네 안의 어떤 스위치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너는 마치 그것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연구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마치 광속으로 태양계를 벗어나는 우주선과의 거리처럼, 너와의 거리가 아득히 늘어나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까지의 기억이 원래 나의 기억이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네가 만든 바이오스피어 안이었다.
“일어났어?”
옆을 보니 슬아가 자고 있었다. 아, 평범한 주말이구나. 다시 눈을 감으려는 찰나, 무서운 현실이 내 머리를 때렸다. 나는 망치로 맞은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도, 슬아도 방호복을 입지 않은 채로 거울의 방에 있었다. 그것도 너와 같은 쪽 방에.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여기 있어?”
너는 슬픈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없이 단말기를 들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뉴스 기사 한 토막이 떠 있었다.
‘젠터니얼 사장의 일가족, 자연회귀주의 조직의 테러로 사망’
“놈들이 화살을 너와 슬아에게 돌렸어.”
내가 떨리는 눈으로 뉴스 기사를 읽어내릴 동안 네가 말했다.
“미안해. 너를 이런 몸으로 되살려서.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저 밖의 세상은 사라져야 해.”
“사라져야 한다고? 유미야, 대체 무슨…….”
내 말을 막아서듯, 너는 작은 튜브 하나를 들어올렸다. 안에는 액체 상태의 무언가가 찰랑이고 있었다. 너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바이러스는 저 밖의 왼손잡이 아미노산 생물체들에게 치명적이야. 그러면서도 오른손잡이 생물체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
나는 네가 대답할 말을 뻔히 알 것 같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로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오른손잡이 생물들의 신이 될꺼야.”
네가 웃었다. 네 왼손이 내 왼손을 붙들었다.
SF 단편 ‘나의 오른손과 너의 왼손을’은 흔치 않은 소재인 D형과 L형 아미노산을 소재로 삼아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화자와 유미 사이에 일어나는 섬세한 감정의 기복 묘사가 일품인 이야기로, 이상의 시 이야기로 여는 도입부부터 그 감성이 해소되는 결말까지, 극 T인 저로서는 발치에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화자와 유미 사이에 이뤄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화들이 감정 이입을 쉽게 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히 극 T인 저로서는) 한 명의 독자로서 아쉬운 점 역시 있었는데요. 작품의 장단점을 가리지 않고 짚어달라는 작가님의 요청이 있었기에, 제 솔직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아쉬운 점은, 이 이야기에서 이성질체라는 소재가 초반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다가 중후반부에서는 영혼이나 우주라는 소재에 주연 자리를 내어주면서 맥없이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철저한 과학자였던 유미가 영혼같은 재현불가능한 분야에 뛰어드는 전개에서 오는 의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야 했을까 하는 질문이 작품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유미의 죽음에서 극대화되었습니다.
유미를 살해한 이들은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을 사용했는데요. 위에 팬픽에서 썼듯이, D아미노산/L핵산을 가진 유미에게는 이 약물이 제대로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약물의 타겟인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는 L형 기반이므로, 유미가 가진 D형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에는 제대로 결합하지 못할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여기서 저는 개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과학적/이론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차피 상상의 영역으로 둔다면,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 광학이성질체 유미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겠지요. 어느 쪽으로 설정을 하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유미의 두번째 죽음에서 어떤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왜 그랬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요. 사실 구조와 원리가 단순한 화학물질이라서 이성질체 인간 양쪽에 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청산가리같은 물질을 테러에 사용했더라도, 저는 비슷한 이질감을 마주하고 위와 같은 팬픽을 썼을 것 같았거든요. 그럼 그 이질감의 정체는 대체 뭐였을까요.
저는 유미의 두번째 죽음이 이성질체 인간이라는 테마에서 이야기를 갑작스레 뜯어내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번의 상실은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 작품의 주제에 부합하는 전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라는 한 명의 독자에게, 그 죽음은 그 전까지 쌓아온 이성질체에 대한 서사를 묻어버리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다른 독자분들은 다른 감상을 느끼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작품의 초반부, 유미가 거울 세포를 만드는 과정이 언급된 후, 저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좋아. 그래서 이 거울 세포로 할 수 있는 게 뭐지?’ 그리고 작품은 나와 슬아, 재희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면서 전개됩니다. 저는 화자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 화자와 유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구나. 나였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아. 그런데 유미의 거울 세포로는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이 발명의 갖는 의미가 작품 내에서 어떻게 표출될지 정말 궁금해.’ 그리고 이야기는 후반부로 달려갑니다. 신, 영혼 그리고 천국과 우주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제 반응은 이랬습니다. ‘유미가 좁은 곳에 갇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그래서 거울 세포로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리고 갑자기, 유미가 죽었습니다. 헉.
어쩌면 거울세포의 활용에 집착(?)하는 제 반응이 작가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이 시종일관 유지하는 담담한 어조부터가 제가 좋아하는 SF 액션물 등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만약 유미가 자신의 거울상 세포 특성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장르적 쾌감이 더 극대화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서 이성질체 설정을 걷어내고, 그냥 ‘재생 과정에서 면역 기능에 문제가 생겨 평생 격리되어야 하는 지유미’라는 설정으로만 이야기를 꾸려도 이야기가 성립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주된 소재가 충실하게 활용된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아쉬웠던 점만 나열한 리뷰가 되어 버린 모습이네요…. 사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저는 이성질체를 활용한다는 이 작품의 시도 자체가 너무 좋았고, 작품에서 느껴지는 상실감에도 깊이 이입하면서 읽었습니다. 위대한 대문호 사피엔스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