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적는 사람의 유형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는 거 보고 싶어서’ 쓰는 사람들이 있구요, ‘내다 팔려고’ 적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도 그럴싸한 이유겠네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골때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배운 거 한 번 써먹어 보고 싶어서.’ ‘철학적 명제를 예술로 증명하고 싶어서.’ ‘혁명하려고. 글 쓰는 무공이 있으니까 그걸로 협을 실천하는 건 당연하잖아?’
물론 우리는 골때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몇몇 소수 예시를 제외하고, 제가 언급하고 싶은 건 역시 이런 겁니다.
‘안 적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런 사람들은 정말로 안 적으면 죽어버립니다. 정신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별안간 뭔가를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소설 아이디어였어요. 저는 그 아이디어를 잊어버릴 수 없어서, 계속 외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편의점에 원고 작업 도구를 들고와서 원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으면, <드래곤 볶음면, 혹은 그 희생자들>이 그렇게 나온 물건일 겁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하게 웃긴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아이디어에 홀리는 것도 힘든데, 사람은 돌연히 어떤 우울감이든, 아니면 과도한 행복감과 전능감(보통 정신과에선 이런 걸 조증이라고 하죠)에 홀리기도 합니다.
이걸 떨쳐내는 방법 자체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야 운동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떠들고 맛있는 걸 먹으면 풀립니다. 뭐 좀 몸에 해로운 거 하고 싶으면 술담커. (물론 그 이상 선을 넘는 건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작가란 그 ‘감정의 해소’를 이야기로서 해소하는 사람들입니다.
네, 늘 그렇듯 잡소리가 길었죠. 지무님의 <고양으를 좋아할 수 있나요?>는 우화적인 판타지가 곁들여진 작품입니다. 쥐1과 쥐3은 ‘고양이’에게서 도망치다, 막다른 곳에서 인간으로 변해 인간으로서 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쥐3은 쥐1이 인간으로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쥐구멍으로 돌아와 다시 쥐가 되어 고양이에게 쫓길 걱정을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는 우화에 관한 것입니다. 다들 ‘동화’하면 ‘애들 읽는 거’ 쯤으로 무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화야말로 이야기의 원천과도 같습니다. 이영도 작가님의 SF 단편에 보면 ‘아이들의 동화를 통한 세뇌 전략’을 펼치려는 외계인들이 등장하죠.
실제로 SF 작가들도, 환상 문학 작가들도 동화에 주목했습니다. 동구권의 스타니스와프 렘의 <로봇 동화>나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는 어렵긴 합니다만, 동화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의 세계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톨킨도 자기 아들딸을 위한 동화를 썼죠. <로버랜덤> 같은 것. <던전 앤 드래곤>의 가이객스가 ‘빨간 책'(D&D 초판을 이렇게 부릅니다)을 펴낼때 모은 ‘참고 문헌’에도 <오즈의 마법사>가 있을 정도니까요. 놀랍게도 한국 최초의 노벨상 작가인 한강도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같은 스웨덴 동화를 자신의 뿌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화들은 현실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현실 그 자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안전하게 이야기를 즐기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요.
우화에는 날카로운 침이 필요합니다. 낭중지추라고 하죠. 오히려 ‘어떻게 부드럽게 침을 박아넣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메디와 호러가 사이 나쁜 이웃이듯 우화도 그 반열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지무 작가님의 글에는 늘 날카롭게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이를테면, 평범하고 지루한, 억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절망 같은 것이요.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언어화했다가는, 독자들은 지쳐 떨어지고 말 겁니다.
우화는 그런 가시를 담기 좋은 주머니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지무 작가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처음에 어떤 감정에 홀리는 수많은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해야 하는 말이 있어서,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작가들.
평범한 사람들은 겉보기에 돈 벌고 안정적인 일상패턴에 올라타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근데 작가될 사람들은 다 알아요. 글쓰기를 그만두는 순간, 서서히 언어를 잃어버리고 내면이 누수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는 걸.
그 결과 작가들은 다시 한 번 고양이에게 자기 몸을 내던지러 갑니다. 승리? 있을까요. 그건 완전한 루프입니다.
하지만 루프에 끝이 있다면, 우린 그걸 루프 대신 나선이라 할 수 있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