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실로 기묘해 보이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그래서 좀처럼 진실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사건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이것을 한데 다루는 것은 거기에 피할 수 없는 공통점, 동일한 사건의 대상자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한 사람은 그렇게 여러 사건에 얽히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런 결과를 낳은 이유는 뭐고, 거기에 참여한 인물 그러니까 범인은 누구일까.
아예 차례에서부터 명확하게 ‘문제’와 ‘해결’로 나눠 이야기를 쓴 것이 꽤나 고전적이다. 이제는 잘 만들지 않는 소위 본격추리소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서다. 모양새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이 소설은 꽤 고전적인 본격추리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좀 반갑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낭만 선생’이라는 캐릭터다. 실제 선생이면서, 경찰에 협조를 하는 자문인이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사건을 풀이하고 관련자들을 모아 진실을 밝히기도 하는 전형적인 탐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역할과 그에 따른 모습을 가진 것은 그가 종종 보이는 특이한 행동과 더불어 그를 묘하고 복잡한 인물로 여기게 한다. 이것이 의외의 매력을 자아낸다.
그러나 사실 낭만 선생의 첫인상은 스스로를 마법사나 퇴마사라고 소개하고 전설같은 것을 얘기하기 때문에 별로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어 보이지는 않으며, 이게 끝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의 추리가 거의 상상과 추측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추리란 애초에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긴 하다. 다만 그걸 단서와 연결함으로써 충분히 그럴만한 당위성을 확보하는 것인데, 낭만 선생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있다해도 옅은 연결성 뿐이라서 왜 꼭 그런 가능성으로 연결되어야만 했느냐를 온전히 납득시키지는 못한다. 인간이 아니라 신처럼, 마치 전지적으로 추리를 한달까.
이런 전지적 추리 능력은 어느 정도 고전 탐정의 대명사인 ‘홈즈’나 ‘뒤팽’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단서를 통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남은 것을 타진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낭만 선생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 같아 추리라기보단 점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마법적인 능력을 사용하기도 해서 더 그렇다. 이것이 추리물로서는 좀 아쉬운 점이다.
낭만 선생은 일반적으로 추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 즉 과학과 논리가 아니라 다른 분야, 말하자면 민속학적인 쪽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좀 ‘교고쿠도’같은 인물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그 전문가적인 면모가 추리에 보탬이 되거나 하는 식으로 긴밀하게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도 아쉽다. 캐릭터 컨셉과 이야기가 그렇게 잘 짜여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이게 한다.
그래도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쫒아가는 추리쇼가 썩 나쁘지는 않고, 어느 정도 ‘그럴만하다’는 느낌을 주는것도 사실이기에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좀처럼 손이 닿을 것 같지 않았던 진실이 막상 다 드러나고 보니 별 게 아니었던 것, 단순하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는 것도 전체 사건이 있을법 한 것으로 느끼게 해 긍정적이다.
피해자가 어째서 결국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를 여러 일들과 인물들을 통해 안타깝게 엮어낸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걸 사회파 소설처럼 제대로 조명해낸 것까지는 아니고 다른 요소에 의해 그런 면모가 흐려지기도 한다.
일종의 필살기를 선보이는 마무리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중간 중간에야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더라도 종국에는 논리적인 추리로 마무리되었으면 좋았겠다만, 그보다는 이야기를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만드는 선택을 해서다. 물론 덕분에 다소 과장된 인물들의 반응과 전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곤란해진 상황 등을 대충 얼버무려 넘길 수 있었고 낭만 선생의 캐릭터성을 살린 것이기도 했다만, 이야기를 더욱 논리적인 것보다는 신적인(판타지적인) 것으로 만들기에 쫌 취향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