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해 보이는 디스토피아 SF물이다. 하지만 빠져들어 보게 한다.
소설은 로봇의 편의성과 효율성이 비교적 이상적인 방식으로 정착한 미래 사회를 보여준다. 로봇과 로봇으로 인한 부는 일부 기득권에게 독점되지 않았으며, 일종의 세금과 그를 통해 운영되는 복지 정책으로 인해 나름 나쁘지않은 재분배가 이뤄지고 있다. 사회가 돌아가는 것 자체만 보면 나름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회는 디스토피아적인걸까. 로봇을 통한 자동사냥이, 설사 그 혜택을 조금씩 나누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소설을 꽤 잘 느끼게 한다. 잉여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무너져버린듯 하달까. 인간의 삶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목표를 이루기위해 어떤 일도 버티오던 사람이 막상 그걸 이루고 나서는 온 힘을 잃어버리는 실례도 있다보니 그런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속에서 인간들은 크게 간격지어 진 것처럼 보인다. 대가족이 아닐 뿐 아니라, 이웃 같은 것도 없어서, 넓은 땅 덩어리에 띄엄 띄엄 놓여있는듯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소수만 남은 생존자인 양 그들이 대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고용된 로봇 뿐이다. 말을 섞는 것도, 뒤를 봐주거나, 마지막을 지키는 것도 그렇다. ‘링크’로 연결된 넷 상에는 어쩌면 수많은 인간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들의 실상은 그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그런 회색같은 곳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로봇 ‘T2025’와 그가 만나는 ‘유새미’씨, 그리고 독특한 커피 자동판매기 ‘써니’는 드물게 색체를 띈 등장인물들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듯한 인간들보다, 서술적이지만 더 감성적이기도 하다. 그런 대비가 그 자체로는 그저 일상적일뿐인 그들의 이야기를 특별해보이게 한다.
그 특별한 만남을 사회적인 배경과 인물 서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그린 것도 좋다. 별 거 아닌 것 같던 일상적인 얘기들이 복선처럼 회수되는 구성은 작은 놀라움을 주면서 이야기가 잘 짜였다고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