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인간화가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서, 한 로봇이 오직 최애 아이돌의 콘서트장에 가기 위해 인간화를 결심합니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감정이나 사랑의 유무로 따지는 세상에서 ‘아이돌 덕질’은 인간다움이 차고 넘쳐서 굳이 뭘 더 할 필요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의 제조 목적이 공업용인 탓에 거대하고 단단한 몸체로 콘서트장에서 형광봉을 이용한 아이돌 응원 군무를 췄다간 같은 최애를 가진 동지들에게 상해를 입힐 수밖에 없었거든요.
인간화는 유기질 의체와 인간 프로세스를 거쳐야 합니다. 유기질 의체로 개종하면 더는 이전 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고, 인간 프로세스를 받으면 정보 처리 능력을 인간 수준으로 억제당합니다. 자그맣고 덜 유해한 몸으로 변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유기질 두뇌로는 꿈도 꾸지 못할 연산이 가능한 인공지능조차 포기할 수 있다니, 왕자의 곁에 서기 위해 목소리를 바치고 평생을 헤엄치며 살아온 바다를 등진 인어공주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리고 이런 데서 찾아오는 뜻밖의 손님은 인간화의 목적인 최애 아이돌일 수밖에 없는데, 제목이 제목이니 만큼 주인공과 대립하는 의견을 내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이유를 말하기 직전에 암살당한 건 뜻밖이었지만요. 그래서 이 작품은 ‘누가 어째서 아이돌 지유를 죽였는가’를 중심으로 범인을 찾아가고, 주인공이 아직 인간 프로세스를 받지 않아선지 추리는 순조롭게 들어맞습니다. 위협을 받아도 로봇이라 그런가, 죽어도 괜찮다는 태도여서 초조함이나 두려움이 없는 건 읽기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체 왜인가 알아보니 지유가 활동하는 비밀단체의 내분입니다. 십 년 넘게 걸려 알아낸 인간 프로세스의 진실을 확실한 증거를 모을 때까지 비밀로 부치자는 파와 그냥 바로 공개하자는 파로 나뉘어 갈등하다가, 서로 설득을 포기하고 물리적인 반대를 시작한 거죠.
그런데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지유와의 대화 동영상이 왜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유는 인간화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죽었어요. 불법 개조 안드로이드가 되었을 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건 로봇일 적에 우선순위가 높은 인간이 부탁했으므로 인간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쓰일 수 있을 텐데, 안드로이드권리연대와 지유의 연결이 각자 반대파를 암살해가면서까지 숨겨야 할 내용인가는 리뷰를 쓰면서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에 대화록 전체를 제출했는데 그걸 입수하지 못한 탓일까요? 권리연대보다는 한창 주목받고 있는 아이돌 소속사가 더 숨기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거부권을 행사하기 힘든 안드로이드에게 불법을 종용하는 귀여운 컨셉의 아이돌은 이런 세상이어도 무리수일 것 같으니까요.
최애 아이돌이 내 적수라는 건 흥미로운 제목이지만, 최애 아이돌이 죽은 시점에서 내용과 어긋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유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여전히 주인공을 노리는 게 적수라고 말할 만큼 대등한 관계인가도 의문이고요.
그렇지만 인간화 관련 법안과 인간 프로세스가 정한 인간의 정의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구체적이고 세세해서 이 세계관으로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란마와 안드로이드권리연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도, 같은 세계관 내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에서 종종 뉴스나 소문으로 이어질 것 같은 마무리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