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에게 진부한 이 명언은 마르틴 루터가 쓴 글귀로 알려져 있습니다. 표현 그대로 미래 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 하자는 교훈에 가까운 말이죠. 사실 글귀로 다가오는 말과 눈과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그 괴리감이 상당합니다만, 결국 이 명언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정말로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하는데 나무나 심고 있겠느냐’라는 말에 선뜻 고개를 조아릴 사람이 많지 않을 것도 사실이겠죠.
어쩌면 이 <침착한 종말>에서 등장하는 현실은 이 거리감 있는 명언을 재현한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은 고도화 된 문명을 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활을 대신하고, 노동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보장되어 있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간에 불과하며, 정해진 결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의회에서 통과된 인류종말계획은 시간을 들여 현실로 재현되고, 그 종말을 코앞에 둔 인류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이 종말을 앞에 둔 인류의 모습은 무척 담담합니다. 출근하고, 건물을 짓고, 꽃을 심으며 순간을 살아가기에 바쁘죠. 아니, 바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평소처럼 현실을 살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것은 마치 벌어져서는 안 되는 오싹한 장면으로 다가오면서도, 마치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공감을 동시에 전해줍니다. 그저 코앞에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에 실감이 안 나는 사람들이 아닌, 이제 그것조차 느끼고 반항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는 듯하죠. 마치 선생님이 혼내면 복도로 나가고, 허락하면 자리에 앉는 학생들을 보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엉뚱하지만, 비참하면서도, 또 함부로 소란스러워지지 않는 지점을 영리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설정과 개연성에서 공백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들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엿보게 만들며 잠시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 인공지능이 제시한 ‘종말’은 아무도 발악할 수 없는 재난이나 마찬가지였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종말로 머리를 들이미는 인류가 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멋진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