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서늘한 뱀의 눈빛이 청량하다 감상

대상작품: 뱀각시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herrage, 4시간전, 조회 5

쉐어하우스에서 뱀을 반려하며 지낸 적이 있다. “버터밀크”라는 이름처럼 아이보리색 바탕에 노란 무늬를 가진 가느다란 뱀. 버터밀크와 몸으로 교감할 때면 그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 은근하게 조여오는 힘에 그야말로 매혹되곤 했다. 오닉스 원석처럼 까맣고 매끄러운 광택으로 빛나던 두 눈, 유려하게 흔들거리는 혓바닥도 황홀했다. 버터밀크와 함께 산 시간이 아쉽게도 길지는 않았지만, 그의 허물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소설 <뱀각시>가 묘사하는 각시의 아름다운 몸이 버터밀크에 대한 내 기억들을 오랜만에 건져올렸다.

민담은 현대 작가들에게 노다지다. 상대적으로 덜 재발견 된 민담, 설화, 신화들을 읽어낼 수 있는 비서구권 장르소설 작가들에게 더 귀할테고. 최근 10년 사이 켄 리우나 이윤하, 정세랑의 행보는 그 맥락에 놓여 있다. 본 작품도 이 작가들의 작품들 못지 않게 멋진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뱀각시 라는 소수자(여성/동물)에게 능동적인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마을을 구하고 적을 물리치며 사랑까지 쟁취하는 영웅으로 그려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고전 서사의 재발견이 문학 뿐 아니라 연극계 등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도 선입견이 내 머릿속에도 여전했나 보다. 첫 문단에 ‘황노파’가 등장했을 때 당연히 남성 노인을 그리며 읽다가 다음 장면에서 실수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서 스크롤을 올렸다. 모계 사회의 우두머리이자 무술의 고수, 뱀각시의 어머니인 어느 할머니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호기가 정말 좋다. 황노파의 죽음 이후 가부장제의 백래시가 시작된다는 설정 때문에 현실감…아닌 현실감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애니미즘이 나오는 고전 서사를 특히 아끼는 편이다. <뱀각시>를 읽다가 생각난 레퍼런스 중에는…네이버 웹툰 <호랑신랑뎐>이 있다. 공동체의 편견과 핍박 속에서도 선하게 서로 보듬고 사는 부부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기본 플롯이 유사하다. 사랑과 의리를 시험당하는 점, 문제해결을 위해 부부가 헤어져야만 하는 위기 설정도 그렇다. 둘 다 힘쎄고 용맹하고 살림 잘하고 아리따운 아내와 부드럽고 공감 능력이 있으며 평등사상을 갖고 있는 남편의 조합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뱀각시>의 남편 ‘이연’은 물러도 너무 물러터져서 독자들의 불만을 산 것 같긴 하다. 역시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남편된 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능력인가…!

약간의 호러와 무협, 판타지와 역사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뱀처럼 매끄럽게 흐르는 재미난 플롯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옥색 저고리에 다홍치마입고 엄청난 무술을 펼치는 아리따운 뱀각시라는 설정에 안 넘어갈 독자가 있을까? 알고보니 빌런마저 맹금류 반인반수였다는 스펙터클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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