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완독한 후 그림자는 현대인의 질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는 반드시 원 본체가 있어야 하며, 빛에 의해 생기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그림자병’은 문자 그대로 그림자가 되어 끝내 사라지고 마는 작품 속 설정의 해심이다. 그림자는 동시에 투명하기도 하다. 그림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잃고 무언가(대상)에 압도당하거나 잠식당하여 그 잔흔으로만 남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다정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한 안온, 다정, 무해함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림자가 되어가거나 그림자가 되어 사라진 이들에 대한,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떠나가고 남겨진 이들이 서로 연대하는 방식은 ‘다정함’을 기반으로 한다. 주인공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보통의 정상성에서 벗어난 유년시절과 과거를 근거로 자신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주인공이 자신의 죄책감을 치유하는 방식 역시 다정함이다. 고양이 미아를 끌어안는 마지막 장면은 그 다정함의 발현이다.
주인공에게 병원은 고해하고 회개하는 일종의 ‘성당’, ‘교회’ 쯤 되는 장소라고 볼 수 있다(임상시험 역시 그렇다). 병원이 사람에게 꼭 필요하지만 두려운 곳인 것처럼, 성당이나 교회 역시 ‘믿는 자’에겐 꼭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자신이 그림자 병에 걸린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는 것도 그 방증이다. 주인공의 내면 갈등이 해결되는 방향은 자신의 내부에서 자기가 믿는 신을 발견하고 그에게 구원받는 것일 터이다. 이 소설은 그 해결(치유)의 방식으로 다정함을 제시하는데, 하영을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도 그러한 현상이다.
가장 주목할 것은 이 소설에서 쓰인 ‘눈’과 ‘비’다. 눈과 비가 오는 날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림자 병에 걸리거나 이미 걸려 사라진 이들에겐 잠시나마 ‘평범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나’가 그림자로 타인과 구별되지 않으므로 그렇다. 누구나 그 존재 자체로서 존중 받는 날인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한 날씨 소재는 이 작품에 적절한 분위기 형성과 미학을 더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해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얘기하면, 다소 날것의 과잉된 묘사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하늘이 어두울수록 가로등과 네온은 기를 쓰고 빛을 쏘아댔다.’, ‘마치 빛과 어둠의 치열한 전쟁을 보는 기분이었다.’ 가 그렇다. 이미지(인물의 행동, 공간 등)로 보여줄 수 있는 건 그러는 게 더 좋지 않나 생각도 한다. ‘나는 그냥, 네 옆에 늘 있어서 없어져도 한참 뒤에나 깨닫게 되는 물건 같은 거야?’ 라는 문장이 그렇다.
나도 그림자에 관한 소설을 이 작품이 업로드 된 시기에 쓴 적이 있어 더 반갑게 읽었다. 여러 모로 작가의 기발하고 재미난 상상력이 후에 더 다듬어진 문장과 묘사, 이미지를 만나면 좀 더 완성도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