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리뷰도 그렇지만, 장편 소설의 리뷰를 쓸 때는 언제나 고민이 깊습니다. 태생이 영민하지 않아 제가 보는 시각은 언제나 협소하고, 하고자 하는 말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금세 가라앉기 일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제나 하고자 하는 말들이 궁합니다.
근데 제가 이렇든 저렇든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소설을 인상 깊고 재미있게 읽어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느낌으로 맛있게 읽었습니다)
1. 소설의 구조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짚자면 인물들의 관계가 촘촘하며,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스피커가 돌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 흐름을 짚어나가는 보통의 방식에 비해서는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서 얻는 장점은 세계관의 설명이 보다 쉬워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사유로 (지역적인) 배경의 변화가 많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하그리아」라는 왕국에 사는 인물들로 이야기는 집중됩니다. 이는 인물들이 많다 보니 배경의 급격한 전환으로 인해 집중도의 하락과 피로감이 쌓일 수 있음을 방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이 소설은 군상극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흐름이 몇몇의 인물에 집중됩니다. 실질적으로 소설의 갈등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하그리아 왕국 내의 여왕 샤흐라자드와 세 아들입니다. 왕국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그 구성원이니 실질적인 중심 인물들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들의 주변인들은 네 인물들의 해상도를 넓히는 데 그 기능이 쓰여집니다. 그렇다고 군상극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행동을 개시합니다. 단지 큰 흐름이 왕국의 흥망성쇠에 얽혀 있기에 이런 성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번째로 중앙아시아 풍의 세계관을 차용하면서도 이유이 리뷰어님의 말씀처럼 샤머니즘 세계관을 추구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바바야가, 고라, 이스라필, 루살카, 기타 등등의 요소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차용한 개념들로 보이며, 동시에 소설의 색채가 특정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 느낌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런 샤머니즘 적인 요소들은 신화1의 세계에서만 거주하며 인간의 몸으로 강림한다는 점에서 전설2의 영역으로 격하되는 느낌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성립된 구도 인간 – 신화의 대립은 둘째 왕자 이스카로 집약되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사를 구성합니다.
2. 소설의 추동 구조
왕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최근의 이슈만 보더라도 권력의 욕망과 그에 대한 추잡함은 대대로 유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다가 王자라뇨.) 그러나 권력을 짊진 자는 그 의무를 다할 때까지 올곧게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그 의무를 헤프게 여기는 순간 최근의 이슈처럼 혼란스러움과 배덕이 발생합니다.
저마다의 욕망은 이를 관통합니다. 그렇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또 혼란이 발생하게 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뇌관은 왕이 되었으나, 사람으로서의 삶을 등진 샤흐라자드로부터 촉발됩니다. 왕이나 사람 다운 사람이 되지 못했기에, 그가 짊진 왕관의 무게는 비현실적으로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이 왕관의 무게를 가르쳐야 하나, 정작 이를 제대로 배운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하그리아 왕국의 갈등은 이 비대칭적인 욕망으로부터 촉발됩니다.
욕망은 들불처럼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번집니다. 왕국이라는 배경은 이 욕망의 범주를 긋는 선처럼 이용됩니다. 그리고 샤흐라자드의 세 아들들은 이 욕망이 집약되는 곳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물들은 남녀 / 여남 구분 없이 이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욕망들은 정치적으로 발현됩니다. 사실 모든 것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제가 놓는 순서 마저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에 부끄럽습니다.)
이 욕망을 바탕으로 소설은 세 아들들의 성장 과정과 주변 인물들의 구도적 변화를 다룹니다. 소설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굉장히 많고 그 관계도를 표로 정리하고자 하면 직관적으로 보여지긴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친절하게 이들의 스피커들을 두루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를 천천히 따라가게끔 합니다. 이 방향성이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은 작가의 친절함과 치밀함의 덕목 덕이기도 하겠지만, 「왕위는 누가 갖는가」라는 명제가 분명하게 살아있어서기도 합니다.
3. 읽고 나서
세아들의 욕망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타의에 의해 욕망하지만 어중간하게 가까운 사람과, 불욕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과, 스스로 욕망하지만 가장 먼 사람이 그것입니다.
언듯 보기에도 언벨런스한 이 구도 속에서 작가는 인물들을 장기말 삼에 밸런스를 맞추는 기예를 펼칩니다.(!) 이는 곳 소설 속에서 다뤄지는 스토리이며 역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밸런스를 맞추는 과정 속에서 불욕하는 사람은 자신의 천명을 받아들여 앞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그 과정들을 따라가면서 느낀 것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용광로가 붉게 물들고 식어가는 것이 역사라는 것. 그 흐름은 누가 보든 선명한 색채를 띄고 있단 것을. 그리고 그것은 어느 시점에서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마지막 파국에 이르러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종말에 맞설 마지막 영웅으로 이스카를 이야기합니다. 이 구도는 소설 내 지속적으로 변주 되어 하나의 테마처럼 각인됩니다. 불욕자 이스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제가 읽은 건 여기까지 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요. 마지막 마무리까지도 기대가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