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장르는 마지막까지 추측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동면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는 스티븐 킹의 ‘조운트‘와 같은 호러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미레이가 나왔을 때는 인간괴 로봇 간의 금단의 사랑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며, 미레이가 스스로 자신의 모델이 인간을 닮고자 한다고 말할 땐 인간을 질투한 안드로이드의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범죄(특히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라는 제목 덕분에 더더욱)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제 예상을 빗나간,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빗나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주선을 타면서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구식 인간 승객 테이와 21년간 우주선에서 근무한 안드로이드 승무원 미레이, 이 둘의 이야기입니다. 둘은 칼리스토로 가는 우주선에서 만나 서로 가까워지고 친해지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일어나지 않은 채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테이는 1년 뒤에야 우연히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듣듯, 칼리스토의 바텐더에게 미레이가 그에게 품었을 오류, 혹은 감정 -아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아마 사랑에 가장 가까웠지 않을까 하는- 을 듣게 됩니다. 테이는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오듯 ‘구식 인간’ 입니다. 동면을 거부하고, 굳이 종이책들을 읽으며, 커피를 직접 갈아먹는. 반대로 미레이는 과학기술의 최첨단인 우주선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의 정점인 안드로이드입니다. 하지민 작품에선 이 둘의 차이를 강조하며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둘은 양 극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대화하고 친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과 커피에 대한 이들의 대화는 강렬한 sf적 스토리나 뜨거운 금단의 로맨스 대신, 근처 카페에서 들을 법한 평범한 대화를 연상시켰죠. 그리고 전 그런 평범함이 어째서인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향기로우면서도 씁쓸한, 그러면서도 길게 여운이 남는 한 잔의 커피 같은 글이었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이 내린 더 많은 커피를 맛보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