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중해 글을 읽었습니다. 그간은 다른데 신경쓸게 많았거든요. (그런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글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감상이란 개인의 경험을 반영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도 이 작품을 한번 읽었었지만, 일련의 상황들을 보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이 글이 또 다르게 읽혔거든요.
처음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건 소설 한편과 영화 한편이었습니다.
[변신]과 [겟아웃]이요. 자고 일어났더니 로봇청소기가 되었다는 설정부터, 신체강탈 상황 때문인지 저 두편이 떠올더라고요.
그런데, 글은 저의 개인적인 인상과는 달리, 아주 재기발랄하고 명랑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은 그 상황에도 너무나 침착하고 태연하게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죠. (아주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구나, 감탄했습니다) 얼마나 잘 해결했던지, 그 임시방편적 상황이 순탄하게 잘 흘러가 ‘임시’가 아닌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 것 처럼 느껴집니다. 주인공마저 낙담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싶을 무렵,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고, 결국 주인공은 ‘진짜’ 문제를 직면하죠.
결말부에 대해선 댓글에서 보이듯 의견이 분분한데, 저는 일단 해결했다는 쪽으로 보고 있긴 합니다.
작가님은, 조금은 황당하다 싶은 설정을 유쾌 발랄하게 잘 풀어감과 동시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가족내 여러 문제들을 예리하게 되짚습니다. 그러니까 마냥 웃기기만 한 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날카롭고 비판적인 지점들을 유머로 잘 감싼 훌륭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화끈한 액션(?)신은 덤이고요.
그런데, 처음 읽었을 땐 이 정도의 감상에서 그쳤는데, 오늘 차분히 다시 읽다보니 엉뚱한 생각이 떠 오릅니다. 이건 얼마 전 생성형 AI에 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학습형 AI들은 잘못된 정보를 (나름의 일관성이 있게) 꾸준히 입력해 주면, 잘못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엉터리 판단을 내 놓는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여러 종류의 깡통을 보여주며 ‘케이크’라고 가르치면, 찌그러진 깡통을 보고 ‘한 입 먹은 케이크’ 라는 답을 내 놓는다는 식이죠.
아니 얘는 리뷰쓰다말고 갑자기 뭔 소리야- 생각하실거 같은데 ^^;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니 특정 인물이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저 사람, 혹시 기계가 아닐까? 어딘가에 신체를 강탈당한?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기계에 계속 엉뚱한 정보를 입력하고 있는거죠. 한쪽으로 편향된, 치우친 정보 말이에요. 그래서 이 인물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진심으로 믿는거죠. 자기가 가진 데이터 상에선 전혀 잘못된 것이 없으니까요. 딱딱하고 어색한 표정, 말투, 퀭한 눈빛, 독선적인 태도 등에 ‘인간이라면 저럴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니 결국 이런 엉뚱한 생각에까지 닿고 말았네요.
작품을 읽고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것도, 결국은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가봅니다. 때문에 혼란이 잦아든 뒤 언젠가 이 리뷰를 다시 읽고, 맞아- 이런 때도 있었지- 하고 넘겨버릴만큼, 온화하고 평온한 날들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