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당신, 인간 맞지요? 감상

대상작품: 만세, 엘리자베스 (작가: 김유정,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3일전, 조회 12

오랜만에 집중해 글을 읽었습니다. 그간은 다른데 신경쓸게 많았거든요. (그런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글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감상이란 개인의 경험을 반영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도 이 작품을 한번 읽었었지만, 일련의 상황들을 보내고 난 지금에 와서는, 이 글이 또 다르게 읽혔거든요.

처음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건 소설 한편과 영화 한편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나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죠. 특히 소설의 경우, 저는 예전부터 저 작품이 ‘이 세상 최고의 공포 소설’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해 오싹하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글은 저의 개인적인 인상과는 달리, 아주 재기발랄하고 명랑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은 그 상황에도 너무나 침착하고 태연하게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죠. (아주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구나, 감탄했습니다) 얼마나 잘 해결했던지, 그 임시방편적 상황이 순탄하게 잘 흘러가 ‘임시’가 아닌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 것 처럼 느껴집니다. 주인공마저 낙담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싶을 무렵,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고, 결국 주인공은 ‘진짜’ 문제를 직면하죠. 

작가님은, 조금은 황당하다 싶은 설정을 유쾌 발랄하게 잘 풀어감과 동시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가족내 여러 문제들을 예리하게 되짚습니다. 그러니까 마냥 웃기기만 한 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날카롭고 비판적인 지점들을 유머로 잘 감싼 훌륭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화끈한 액션(?)신은 덤이고요.

그런데, 처음 읽었을 땐 이 정도의 감상에서 그쳤는데, 오늘 차분히 다시 읽다보니 엉뚱한 생각이 떠 오릅니다. 이건 얼마 전 생성형 AI에 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학습형 AI들은 잘못된 정보를 (나름의 일관성이 있게) 꾸준히 입력해 주면, 잘못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엉터리 판단을 내 놓는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여러 종류의 깡통을 보여주며 ‘케이크’라고 가르치면, 찌그러진 깡통을 보고 ‘한 입 먹은 케이크’ 라는 답을 내 놓는다는 식이죠.

아니 얘는 리뷰쓰다말고 갑자기 뭔 소리야- 생각하실거 같은데 ^^;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니 특정 인물이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작품을 읽고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것도, 결국은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가봅니다. 때문에 혼란이 잦아든 뒤 언젠가 이 리뷰를 다시 읽고, 맞아- 이런 때도 있었지- 하고 넘겨버릴만큼, 온화하고 평온한 날들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