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옳고그름을 따지는 오답노트가 아닙니다. 일개 독자의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진부한 사족으로 말문을 열어도 될까요?
사실 제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빠져드는 이유를 넘어, 이 ‘미스터리’에 빠져들고 싶은 이유를 논하는 일은 적지 않은 즐거움을 향유합니다. 여러분이 흥미를 느끼는 냄새는 제각각이지만, 그중에서 색이 분명한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긴장감 있는 사건, 수상한 인물들과의 동행,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타래처럼 풀어버리는 주인공의 존재까지……. 모두 공감하면서도, 이 매력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명확해 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 선을 두면서도, 그 일상을 벗어나는 미묘한 지점을 간지럽히고 있다는 점이죠.
이 <안티백서 음모론자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라는 소설 또한 그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가는 작품입니다. ‘엔젠필드’라는 미국의 시골마을에 ‘빅터’라는 학자를 초대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담고 있으며, 비루하고 고요하다고 생각되었던 마을에서 목격되는 수상한 징후들로 인해 음모론자인 아버지에게 위협받는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목격되는 수상한 징후들을 표현하기 위해 ‘괴이(怪異)1’라는 단어를 즐겨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 또한 평범함을 무너뜨리는 ‘괴이(怪異)’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제 부족한 시선에 포착된 ‘괴이(怪異)’를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해볼까 합니다. 이 감평에서는 외(外)적인 키워드, 내(內)적인 키워드로 나눠보겠습니다.
(外) 음모가 가득한 ‘엔젤필드’라는 마을에 대해…….
일반적으로 ‘미스터리’가 성립되는 과정은, 일상의 뒤틀림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믿고 있던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다고 되는 무언가의 개입으로 인해 주인공이 움직이는 과정을, 우리는 ‘추리’ 혹은 ‘미스터리’라고 정의하죠.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이 영유하는 배경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일상의 개념을 흥미롭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제시 자매가 살고 있는 ‘엔젤필드’는 눅눅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자체가 뒤틀렸다고 느껴질 정도로 괴이한 요소가 가득합니다. 마을 변두리에는 수상한 유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종자 연구소라는 이름의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작품 내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하다며 선을 긋고 시작하지만, 사실 우리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음모’이자 ‘괴담’으로 보이는 무언가입니다.
어쩌면 방금 키워드에서 비슷한 작품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가 그것이죠.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마을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그 너머에 숨겨져 있던 음모에 가까웠던 진실이 밝혀진다는 플롯 또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묘한 이야기(Stranger)’는 노골적으로 복고풍을 노리며 고전으로 불리는 미스터리극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이 <안티백서 음모론자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는 조금 더 그 정체를 감추며 ‘괴담’에 가까운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서는 마을의 ‘유적’이라는 심볼(Symbol)을 목표로 두며, 그곳을 쫓아가며 겪는 일련의 사건을 제시합니다. 즉, 주인공 일행이 능동적으로 쫓는 것은 이 ‘엔젤필드’라는 마을 자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셈입니다.
(內) 적은 내부에 있다! 피할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뒤틀림은 마을도, 유적도, 괴현상도, 주민들도 아닙니다. 바로 제시 자매의 ‘아버지’라는 존재이죠. 당장 제목이 <아버지에게서 살아남기>라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 아버지 ‘아이작 히긴스’라는 것이 자명하죠.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리키는 바는 작지 않습니다. 관습적인 ‘아버지’의 이미지는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가장 커다란 존재이고, 발언이 강한 존재이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존재가 향하는 화살이 바깥이 아닌 집안으로 향하게 된다면, 방금 말한 강렬한 요소들은 하나의 위협으로 변질됩니다.
자매의 아버지 ‘아이작 히긴스’는 무척 강렬한 캐릭터입니다. 각종 음모론을 신봉하며 두려움에 떠는 것도 모자라, 그에 대한 불신을 분노로 풀어내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때문에 유적을 조사하려는 주인공 일행을 적대 혹은 불신하며 위협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아이작은 폭력적이고, 정이 부족하며,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제시는 그와 거리감을 두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아버지’라는 인물이 주는 속성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부녀관계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테두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단순히 광인의 전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단순히 ‘음모론자’라는 배경을 떼어놓고 봐도,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충분히 뒤틀려 있기 때문이죠. 마을에서는 각종 괴현상이 벌어지며, 주변에서는 그를 설득하기보다는 납득하는 데에 그치고, 믿음직한 딸이 트랜스젠더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정마저 얹고 있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 그의 존재를 조소하기는 쉽지만, 사실 그야말로 이 뒤틀림 사이서 끊임없이 올바른 선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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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설에서 많은 매력을 찾아냈습니다. 위처럼 두 가지 키워드로만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수어 번 고민했을 정도였죠.
다만 그것이 이 소설이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가령 초반부에 각종 기괴한 설정들이 등장하며 무엇에 집중해야할지 몰라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던 것과, 아버지에 비해 역할에만 함몰되어 다소 밋밋해진 주변인물들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간간히 영문 직역체의 비문들이 눈에 띄며 소설치고 글맛이 떨어지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SNS로 소통이 가능한 동네에서 이런 유적에 얽힌 사정들이 주목받지 못 하고 흘러가는 것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면이 있었죠. 어쩌면 그 또한 안티백서들이 믿는 ‘음모’가 주는 속성에 가려졌다고 한다면, 굳이 언성을 높이며 반박할 것도 없겠습니다.
잠깐 괜찮을까요?
문득 ‘안티백서’라는 키워드를 떠올려보면, 그 속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티백서’는 ‘백신을 거부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흔히 자신을 ‘백신 거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면, 이 ‘안티백서’의 속성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상인의 입장에서는 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거부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건강을 지킨다는 주장과 심히 모순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백신이야말로 병을 부르는 해악이며, 그 근거 또한 본인들의 망상에서 비롯됩니다.
즉, ‘안티백서’라는 단어 자체가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합니다. 본인의 신념에 광적으로 함몰된 인물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인물을 조소하고 풍자하는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겠죠. 몸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거부하는 그들을 우매하다고 조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소의 의미가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안티백서 음모론자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 또한 그런 속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목에 ‘안티백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음모론에 시달리는 아이작을 조소하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막상 내용에서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사건들이 등장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연재 중인 작품인 만큼, 이 길을 어떻게 바로잡을까를 지켜보는 것 또한 하나의 정독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때까지 주절거린 제 주장 또한 ‘안티백서’들이나 할 법한 헛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선뜻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 적은 내용들이 전부 이 훌륭한 작품을 제 시선에 따라 멋대로 재단하려고 한 흉악한 시도이며, 그 자체의 매력을 음미하지 못 하는 까다로운 입맛의 산물일지도 모르죠.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그 한마디를 뒤로 미루려고 버텨온 제 고집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백하자면, 분량 좀 채우려고 일부러 그랬어요 ㅎㅎ;;
이상 <안티백서 음모론자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의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