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밑도 끝도 없이 멍청해지면서 바보 같은 일에는 진지하게 뛰어들기 일쑤인 20대 초반의 남자 다섯은 휘발유 위에 던져진 성냥불 역할을 하는 술 기운의 세례를 받고 가지 말았어야 할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오랜 한이 쌓여 무속인들도 근처에는 터를 잡지 않고 짐승조차 접근하지 않는다는 그 곳, 수 백 년의 독기를 온 몸에 담은 악귀가 웃으며 춤까지 춘다는 그 곳에 겁 없이 들어선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와 함께 섬뜩하리 만치 단호한 경고를 받지만, 함께 있으면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모든 위험 신호들을 무시합니다.
더 무식한 사람이 더 용감해 보이는 젊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그들은 경쟁적으로 봉분의 주인을 모욕하고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욕망을 분출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크나큰 실수를 잊어버리지만, 모욕을 당한 존재는 술에 취한 것도 아니요, 이런 치욕을 허허 하고 용서해 줄 정도로 선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한 순간의 치기로 인해 벌어진 늦은 밤의 해프닝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가졌던 네 명의 젊은이들은 한 달을 넘기지 못 하고 모두 목숨을 잃고 맙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바닥이 없는 지옥을 헤메면서도 한 가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왜 네 명이지? 왜 한 명은 여기 오지 않았지?
이렇게 새로운 원한이 지옥에서 잉태되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장르 소설의 천국 브릿G에서도 오랜만에 보는 아주 끈적하고 불길한 느낌의 호러 물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이끌어가지만 생동감 넘치는 친구들의 대화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느슨해질 틈 없이 흘러갑니다.
외국의 저예산 공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이런 스타일의 공포물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는 답답함과 불안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알고 있을텐데, 분명 느낄 텐데도 뚜벅뚜벅 통발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 낙지와 장어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죠. 그러면서도 언제 음산한 웃음 소리와 함께 함정의 뚜껑이 닫힐 지, 또한 불운한 희생자들은 언제 쯤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곳까지 들어왔음을 깨닫게 될 것인지 하는 기대감 또한 이런 소설들을 즐기게 되는 요소라고 봅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반복하는 젊은이들의 심리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1인치이 시점이다 보니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함이 주로 묘사되어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친구들 또한 점차 자신들의 발걸음이 좋지 않은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도 과감해지지만 그 음성에는 떨림을 숨길 수가 없고 행동 또한 어색해지는 걸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내부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외침을 물리적으로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술이죠. 둔해진 오감을 깨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주인공의 친구들은 더 위험한 곳에서 더욱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한 행동들이 지옥의 문을 열었으니 어찌 보면 억울할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우리 세상은 내가 한 행동의 결과라는 게 존재하는 곳이니까요. 내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근처에 있던 곰을 깨울 수도 있는 거죠.
이 작품을 재미있게 만드는 건 이 다음부터입니다. 왜 이것뿐이지? 주인공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 질문을 갖습니다. 그 질문은 시간이 흐를 수록 몸집을 불려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던 영혼에 살을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몸은 원한이라는 양분으로 움직이는 악령이 됩니다.
원한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 이라고 정의되더군요. 사실 주인공의 억울함은 그 근원이 바르지는 않습니다만, 영원히 계속될 지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정도 뿐일 겁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뒤틀린 한에 원망이라는 살을 붙여서 스스로 악귀가 됩니다.
초반에는 불나방처럼 죽어야 할 곳으로 가는 젊은이들의 광폭한 날개짓 정도로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교묘한 장치들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을 향해 돌진합니다. 쓸데없는 곁 가지가 없기 때문에 작품의 몰입도가 매우 높다는 것도 장점인데, 주인공이 보여주는 의식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반복이 많이 사용된 부분은 극 후반부에 흐름을 더디게 하는 요소가 되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습니다.
브릿G에 계신 독자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만한 느낌이 좋은 공포 소설이라 감히 추천을 드려 봅니다. 중후반에 이어지는 반복은 결말의 재미를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시고 함께 작가님이 내신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