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프리랜서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당차게 아무 계획도 없이 독립을 했는데, 생각만큼 일은 들어오지 않고 마음은 답답해지던 날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가 벽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길래 이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왔더랬지요. 얼마만에 밖에 나온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살던 곳이 한강 근처라(한남 뭐시기 하는 럭셔리한 그 곳 아닙니다. 선사 유적지가 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동네였지요) 바람이나 쐴까 하고 빌라들이 늘어선 골목을 걷고 있는데 ‘어, 어, 야아.’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계속 들리는 겁니다. 잘못 들었다기엔 규칙적으로 몇 번 씩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계속 걷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는 항상 그대로였다는 겁니다. 타고난 쫄보이긴 하지만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에 겁을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근처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경계심만 보이면서 한강 근처까지 갔는데 거기서 그 녀석을 보았습니다. 동네에서도 보기 흔한 오렌지색 줄무늬를 가진 대호였는데, 털 끝에 거뭇하게 낀 검댕이가 범상치 않은 관록을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그 녀석과… 아니 그 분과 저는 최소 3분 간 시선을 고정하다가 결국 압박감을 못 이긴 제가 먼저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만, 중요한 건 제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위안을 얻었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던 그 소리부터 어디선가 나타나 저를 뚫어지게 보던 모두 저를 위한 신의 세팅이라고 보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소리를 듣는 익숙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는 당치 않은 믿음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어처구나 없지요. 믿어 달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작품은 글을 통한 위안을 얻는 데에는 화려한 필력이나 절절한 메시지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재미있는 단편입니다. 주인공은 우리 대부분이 한 번씩은 거치는 위기의 순간을 겪고 있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직장은 사라졌고 투자는 실패했고… 그래도 이웃들과 허물 없이 지내며 스스로 길을 찾아내려 애쓰는 그는 갑자기 동물들의 인사 공격(?)을 받게 되고 혼란에 빠집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비 상식 적인 상황이 닥치면 그걸 모두 자신의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주인공 또한 넉살 좋게 간식을 요구하는 고양이나 당연한 듯이 인사를 건네는 강아지를 보며 그저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라 믿고 넘기려 합니다. 물론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한 번 쯤 걸려보고 싶은 바로 그 ‘%^$#’에 걸렸으니까요.
이 작품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아주 큰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캐릭터와 이야기거리가 넘쳐 나는데 여기서 이 신나는 경험을 접어야 한다니…
이 작품을 읽으신 독자분들께서는 쁘렝땅 작가님께 이 작품의 연작화를 요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작품도 많이 내신 분이 글을 이렇게 딱 자르시다니 독자 분들의 원성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여러 매체로 활용된 정말 뻔한 주제입니다. 그걸 이렇게 다시 재미있는 만들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래서 더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소설인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한 번 쯤 삶의 무게와 그것을 잠시 내려 놓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이 작품은 읽으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재미있는 글과 좋은 글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특히 단편은 추천을 하는데 부담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네요.
이 작품에서 자꾸만 기억에 남는 글귀가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인사를 해도 돌아서서 집 문을 닫으면 여러 어두운 감정이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던 시기의 제 기분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 같아서 기억에 남네요.
사람의 관계는 복잡하다… 나의 단점과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항상 불안과 강박증에 시달리며 산다…
인간의 관계는 그렇다.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항상 끊어져 있기도 하다. 결국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하고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건 나 자신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도 약해 있다. 그러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먹이감이다. 직장, 사회, 은행, 친구 모두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