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의사는 성형외과죠. 감상

대상작품: 성리학펑크 2077 (작가: 하늘느타리,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5일전, 조회 15

리뷰를 쓰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전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이 2077년일 줄 알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이란 게임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제목이 거기서 기인한 것 인줄은 더더욱 몰랐죠.

그래서 ‘선왕 순조’라는 대목에서부터 엄청난 혼란을 느꼈습니다. ‘뭐? 순조? 그럼 기껏해야 1800년대잖아?? 2077년이 아니야?!’ 네, 그래서 첫 부분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downcast-sweat:

앞선 고백에서 아셨겠지만, 저는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에 문외한입니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이런 설명이 나오더군요.

하위문화 현상으로서 사이버펑크는 일반적으로 기술과 문화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성의 구조와 권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획득하고 신기술이 활용되도록 한다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버펑크 [cyperpunk] (선샤인 논술사전, 2007. 12. 17., 강준만)

네… 더 모르겠습니다 :tears-joy:  아방가르드적 태도란 대체 무엇일까요;;; 그래서 전 이 장르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리뷰를 씁니다. 그러니, 문외한의 사이버펑크 장르 입문기 쯤으로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1. 이데올로기는 성리학, 과학기술은 2077 : 이 글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치관 및 이데올로기는 성리학이 그대로 버티고 있되,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는 2077을 능가할만한 세상이죠. 자동가마(이런 디테일들이 너무 좋습니다! 재밌어요!! ㅎㅎㅎ)에 인공지능이 연결된 전립 등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이 과학기술의 이론적 근거에 명리학(혹은 점복술)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풍수지리와 오행, 관상이 이론적 베이스가 되지요.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주역이나 64괘가 나오진 않더군요. 사주팔자가 슈퍼컴 이름으로만 등장하고 명리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흑흑) 대체 역사물 특유의, 알지만 어떻게 변형될지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오늘날엔 익숙한 문물들을 그 시대 배경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 넣었을까를 찾아보는 재미가 매우 쏠쏠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아주, 많이 재미있었어요.

이러한 부분의 백미는 역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는 대목이겠지요. 그럼요, 뼛속까지 유학으로 가득한 조선인들 답습니다.

 

2. 기술의 발전이 유토피아를 부르진 않습니다. :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명리적 요소는 ‘관상’입니다. 때문에 모든 이들은 태어난 얼마 후 성형수술을 받는데요, 이 비용이 천차만별인지라 여기서부터 빈부의 차가 드러나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은 하급의 일자리를 얻는 성형수술 밖에 받을 수 없고, 부자들은 더 비싼 비용을 내고 더 좋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성형수술을 받죠. 이렇게 부는 대물림되고 사회 계층은 고착화되어 갑니다.

슈퍼컴 사주팔자는 주인공에게 이러한 사회 계층 고착화의 부당함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은 초반엔 크게 반응하지 않죠. 어쨌건 그의 관상은 ‘기존 질서의 수호’에 적합한 관상이거든요.

‘관상’이라는 단일하고 눈에 확 띄는 요소를 전면에 내세워 이해를 쉽게 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회 기득권 층의 특권 지키기 및 빈부 격차와 계층화는 사라지지 않는 점을 짚어낸 점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질 지언정, 그 ‘도구’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일이고, 그 인간들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3. 멋진 액션(?) : 이 장르가 원래 이런건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멋진 액션(?)신이 등장합니다. 주인공과 반주인공의 대결은 활자로 되어 있는데도 영상을 보는 듯 장면이 생생하고 실감나며 긴장감이 넘치는데요, 어떻게 글로 이미지를 이렇게 뚜렷하게 만드시는지 작가님의 그 능력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대목이었습니다.

4. 반전 : 이건 당연히, 자세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반전 (혹은 트릭엔딩) 중독자인 저 같은 사람에겐 매우, 몹시, 많이 흡족한 구성이었습니다. 특히 주요 등장 캐릭터들의 이름이 ‘사주팔자’ 및 ‘사필귀정’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어지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5. 각성 혹은 변화 : ‘관상’이 주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 뒤 주인공이 입는 부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변하게 되지요. 마지막까지도 ‘관상’이 사람의 입맛, 취향, 생각 등 모든 것을 정한다는 것은 작품의 일관성을 지킨다는 면에서 참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성장 변화하지 못하고 얼굴 형태에 모든 것에 메이게 된다는 한계점에서는 조금 슬프기도 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다-는 명확한 서술은 없으니, 그가 스스로 성장했다고 멋대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했던 이런저런 공상들을 덧붙여봅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성형외과 의사는 사회의 어느 계층 쯤에 있게 되는 걸까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사는 성형외과가 최고인걸까요?) 그리고 관상이 모든 걸 지배한다면, 역대 왕들의 얼굴은 모두 똑같아 지는 걸까요? 의사는 왕의 관상을 훔쳐 스스로 왕이 되려는 역심을 품지 않을까요? 타고나길 왕의 관상인 평민집 아기가 있다면, 그 아이는 어찌 되는 걸까요?

멋진 글은 읽은 뒤에도 여러 생각 거리들로 즐거움을 길게 주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참 즐겁고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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