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과 2일이 멕시코에서 ‘망자의 날’로 불리는 걸 아시나요? 그 마지막 날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의회에서 인류의 종말을 발표하는 소식을 읽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작중 연도가 2257년이니 사실 망자 여부를 따지자면 2024년에 살고 있는 저겠지만, 이 리뷰를 보면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종말을 맞이하진 않았으니까요. 물론 모든 기록이 그렇듯, 작성이 완료된 시점에서 작성자의 생존 여부는 불확실해지지만요.
2257년의 혜민은 하루에 두 시간, 일주일에 사흘만 일해도 생활을 꾸리고 여가를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는 쾌적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게 어쩌면 직업의 전문성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작품 초반에 저소득층을 양산해 낸 걸 보면 다른 직군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인간에게 돈을 주려고 일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단지 부서지기 위해 짓는 건물이라니 허무하면서도, 이런 일조차 없으면 이 세상에선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양받는 것뿐이구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그러니 인공지능도 멸종하는 게 낫겠다 판단한 게 아닐까요? 아직 아무것도 추가로 발표된 게 없어선지, 아니면 폭풍이 너무 멀리 있어선지 혜민이 사는 곳은 종말 소식을 듣지 않은 날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됩니다. 부모님이 평소와 다른 용건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직장 칸막이 너머에 몇 사람이 앉아 있지 않으며, 말끔히 다니는 사장님이 넥타이를 하지 않아도, 사회의 일상을 유지하는 건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가 된 지 오래니까요.
그런 나날에도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이 남은 인생을 바꾸는 건 지금이나 이때나 같아서, 세상은 이렇게 많이 바뀌어도 인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작가를 바로 찾아가는 행동력은 종말이 코앞이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시청에 찾아간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부럽기도 잠시, 저도 내일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 같아서 조금 설렜습니다. 제 세계의 종말은 사고나 전쟁이 아닌 이상 느리고 확실하게 찾아오지만, 어쨌든 끝난다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인류 덕분인지 때문인지 힘겹게 대성전에 들어가 작가가 있는 예배당으로 달려가는 혜민의 모습은 제 작은 설렘을 두근거림으로 바꿨고, 저는 젤라토도 후속편이 궁금한 책도 없지만, 후속편의 줄거리를 들은 뒤 침착하게 일어난 인류의 종말은 맞이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신장의 네트워크가 새로운 중국인을 만들었듯이, 어쩌면 생산해낸 인류만을 끝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안드로이드가 지원하는 삶에 익숙한 인류에게는 그것도 종말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