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내용은 옳고그름을 따지는 오답노트가 아닙니다. 일개 독자로서 느끼는 진솔한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1) 첫인상은 달콤하게, 또 익숙하게, 그렇기에 두렵게
친숙한 소재를 뒤틀어 두려움을 심는 방식은 이미 ‘호러’라는 장르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할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음식’이라는 소재를 뒤틀어버리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방식이다. 먹는 것은 당연히 갖춰야할 ‘식욕’을 건드리며, 인간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당연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즉, ‘음식’을 뒤틀어버린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더 나아가 도망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징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젤리’라는 소설은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왜? ‘젤리’는 간식이다. 밥과 반찬처럼 필수적으로 마주쳐야하는 식단이 아닌, 본인이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섭취하는 오락거리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평가할 때는, 이 ‘간식’에 주인공이 접근하는 과정과 더불어, 그 ‘간식’을 선택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결말을 조명해야할 것이다. ‘호러’라는 장르로 던지는 뒤틀림을 목격하는 것도 빼먹지 말도록.
ps. 스포일러가 없을 수 없으니, 아래 내용들은 전부 가려놓도록 하겠다.
2) 친숙할 수밖에 없는 인물, 친숙할 수밖에 없는 사정
주인공 ‘진영’은 15년차 주부이다. 남편과는 무탈하다. 서로 몇 마디에도 감정을 알아챌 정도로 관계도 순탄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시집살이’라는 병마가 갉아먹으며 문제가 일어난다. 시어머니 ‘연자’는 무례한 언어를 즐겨 쓰며, 보란 듯이 주인공을 자극하는 악역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진영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사는 셈이다.
작품 내에서 이 ‘시집살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하지만 연자라는 인물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친절하게만 보였던 남편은 시어머니라는 병을 집에 놔둔 원흉으로 비춰지며, 자연스럽게 먹을 것을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내는 진영의 모습에 동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대사는 실감난다. 많지 않은 대사들은 꼭 필요한 말들로 채웠으며, 그것만으로도 인물들의 바탕을 엿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다소 악마화에 치우치는 연자의 캐릭터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짧은 분량과 필요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가의 능력은 호평하고 싶다.
진영의 행동도 무척 계산적인 설계가 느껴진다. 식구들의 눈을 피해 젤리를 검색하거나, 시어머니의 핀잔에 뒷말을 흐리는 사소한 동작들에도 그녀가 처한 상황을 엿보이게 만든다. 문체와 묘사도 깔끔한 덕에 흐름이 끊기지 않고, 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신뢰를 준다. 기본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3) 그래서 특별한 젤리와의 만남은?
‘젤리’와의 만남은 전형적이지만 설득력이 충분하다. 교통사고처럼 마주친 ‘젤리’에 진영은 마음을 뺏긴다. 스스로가 식탐이 많다는 것과 더불어,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눈치까지 보인다. 하지만 기어코 ‘스마일 젤리’ 한 봉지를 집어낸다.
세 봉지도, 두 봉지도 아닌, 딱 한 봉지!
간식 한 봉지를 고르는 데도 오만가지 갈등에 휘둘리는 그녀를 보면, 시어머니라는 병마에 휘둘리는 사정이 더욱 안타까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젤리’는 이 시어머니라는 병마에 균열을 내는 총알의 역할을 한다. 겨우 고민 끝에 고른 젤리 한 봉지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긴 그녀는, 끝내 시어머니를 살해하며 소설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남은 이야기가 지저분하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하여튼 그녀의 사정에 몰입하던 독자라면 오랜 고름을 짜버리는 쾌감에 다가갈 수 있는 개연성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이 결말에서 등장한다. 반전으로 제시한 ‘마약’이라는 요소가 너무 절대적이라는 아쉬움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우연히 고른 젤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도 주문을 서두르려는 모습을 보이며, 이 ‘젤리’가 다소 위험한 매개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이 ‘마약’이라는 요소가 주인공을 조종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앞서 벌어졌던 동정과 공감은 다소 힘을 잃게 된다. 어디까지나 시집살이라는 병마를 끝낸 건 진영이 아닌, 공정실수로 들어간 ‘마약’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젤리에 집착하던 이유도, 시집살이에 눈치만 보던 고통의 산물이 아닌, ‘마약’에 휘둘리는 광인의 전조였던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연자의 죽음이 통쾌한 한방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복수를 다짐하던 대상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 죽는 허무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진영의 사정을 조명한 이유가 뭘까? 그건 독자에게 공감과 동정을 유도하기 위한 과정이다. 독자는 진영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그녀가 작은 발버둥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진영이 이뤄낸 것이 아니다. ‘마약’이라는 절대적인 힘이 그녀를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작가가 준비한 통쾌한 반전으로 인해 ‘인간’으로 존재하던 진영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추락하고 만다.
이렇게 괴물로 추락한 그녀를 보며 통쾌하다고 느껴야할까?
아니면 또 다른 연민을 느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진영은 고통 받는 인물이었다. 아주 의도적인 고통이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이 무엇을 위해 준비되었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매력적이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그릇만큼은 모양에 모난 곳이 없다. 잘 깎아놓은 도자기처럼 세워놓고 바라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색이 평범해도 기술적으로 부족한 소설은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자꾸 결말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 결말로 오는 과정만 떼어놓고 보면 무난한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정적인 구성에 느낌표를 찍을 만한 장면이 부족했다는 것은 아쉬운 요소로 꼽고 싶다.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그 변화는 물살이 없는 웅덩이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표면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고부갈등은 엿보이나, 그에 대처하는 방식이 전무하다보니 모든 갈등은 식탐이라는 내적요소에 몰입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식욕’과 관련된 소재를 비트는 공포는 피할 수 없는 무언가로 비춰진다. 하지만 ‘젤리’는 ‘간식’이며, 주인공의 선택으로 섭취하는 흐름을 가정한다. 그렇게 겨우 만난 ‘젤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주인공의 식탐을 부추기는 요소로만 소비되며, ‘마약’이라는 환각물질을 등장시키며 앞선 소재들의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앞선 이야기에서 ‘젤리’를 ‘총알’에 비유했는데, 이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이 고른 총알은 젤리였지, 자신의 이성과 감각을 버리고 상황을 뛰쳐나갈 수 있게 만드는 ‘마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운명처럼 만났다는 젤리라는 소재 또한, 그 의미가 다소 희석되고 만다.
5) 생각해볼 수 있는 퇴고 방향은?
만약 이 젤리가 조금 특별하다는 것을 주인공이 알고 있었다면 어떨까? 식욕을 달래고 현실을 달래는 위로의 대상이 아닌,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특별한 방향으로 희석시킬 수 있는 매개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이 젤리를 선택한 주인공의 의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6) 마무리하며…..
어쩌면 이 단편의 분량에서 오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과감하게 마지막 반전을 도려내고, 시어머니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진영의 모습을 조명한다면? 이 소설은 더 달콤한 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작가가 만드는 이야기에 ‘마약’이라는 쓴향이 배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