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팔과 오팔라이트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산란散亂 (작가: 효모,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3일전, 조회 17

대부분의 오팔은 미세한 구멍을 가지며 이 안에 수분을 머금습니다. 수분을 함유한 정도에 따라 투명성과 특유의 광택이 결정되지요. 고온 건조한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내포한 수분이 전부 말라서 깨져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석, 특히 오팔을 좋아하는 분들은 오팔에 물을 뿌려주거나, 아예 오팔을 물에 넣은 채 보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오팔은 오히려 과하게 습할 때 깨지거나 특유의 색채가 죽어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에티오피아나 호주에서 채굴된 오팔이 이러한 성질을 많이 가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팔은 관리가 매우 까다로운 보석이지요. 이러한 까다로움과 특유의 광채, 그리고 보석으로서의 희소성이 맞물려 오팔 가루 등을 압축시켜 만든 합성석이나 사실상 유리나 플라스틱과 다름없는 모조석이 많이 취급됩니다. 오팔인 척 취급되는 오팔라이트라는 녀석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팔라이트의 악명은 대단합니다. 기본적으로 유리거든요. 그런데 오팔이라고 속인 채 비싸게 파는 것을 넘어, 아예 문스톤이나 래브라도라이트 같은 다른 보석이라고 속이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탓에 원석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오팔라이트는 증오의 대상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또 일부 오팔은 크기가 너무 작아 특유의 광채가 안 보이거나, 원래부터 오팔라이트랑 구분이 힘들게 태어난 탓에 끊임없이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증상이나 사랑이 태어날 때부터 끊임없이 의심을 받듯이.

 

효모 작가님의 <산란散亂>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소희와 재영이 등장합니다. 소희는 4년 전부터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 방법도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가족과 인연을 끊었기에, 소희의 치료를 위해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돌연 소희의 팔뚝에 비늘이 붙어 있는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희는 그것을 이쁘다고 여길 뿐이었지만, 재영은 그 이변에 불안감을 느낍니다.

재영은 소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함께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운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재영은 더욱 조급해지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소희의 증상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비늘이 돋아난 면적의 크기는 더욱 넓어지고, 평소보다도 더 짠맛을 찾거나, 온몸이 건조하다며 수분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온갖 기행을 벌이기 시작하는 소희를 보며 재영의 불안은 심해지기만 합니다. 운전학원의 강사와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만, 강사는 심드렁하게 받아줄 뿐입니다.

하지만 소희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재영은 운전학원 강사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난처하다는 반응이었지만, 이내 친구가 위험하다는 말에 강사는 도로연수용 차량을 빌려줍니다. 소희를 병원에서 꺼내오면서 재영은 온갖 생각을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무튼, 강사의 도움을 받아 바다로 달리는 재영과 소희. 재영은 바다에 도착하고, 온몸이 비늘이 나고 떨어지는 소희를 바닷물에 담급니다.

 

이 작품에는 중요한 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이 아깝다”입니다. 소희의 말로 시작된 이 표현은 운전학원 강사도, 이내 재영이도 되뇌게 됩니다. 이는 단순하게 병 때문에 서로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말버릇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다른 지점들과 함께 엮으면 조금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희와 재영은 서로의 원래 가족과 연을 끊고 둘이 살고 있습니다. 재영은 단순 입원이라면 소희의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지만, 수술이나 다른 일이 생겼을 때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습니다. 재영이 소희를 병원에서 빼돌리며 그 정신없는 와중에 했던 자조처럼요. 재영은 진짜 보호자인 척하는 가짜 보호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영과 강사의 관계에 집중하면, 강사는 무심하게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 재영의 말을 받고 나름대로 반응을 해주고 있습니다. 소희의 상태가 심각해져 재영이 찾아왔을 때는 진위를 물어보기보다는 삼키기를 선택하지요. 소희의 상태를 직접 본 뒤에는 농담이거나 진짜여도 심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사과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아깝다”는 말은, 이제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구매할 중고차의 상태를 살피는 데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에 충실해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것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볼 필요도 없이 진실한 것들이니까요.

 

오팔과 오팔라이트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오팔라이트는 오팔이나 원석을 좋아하는 분들께 있어서 분명 증오스러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오팔라이트가 오팔의 모조품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오팔라이트도 충분히 그 사람 안에서는 진짜가 될 수 있습니다. 오팔라이트는 오팔라이트 특유의 영롱함을 가지니까요.

그 영롱함과 주로 유리로 만든다는 점을 이용해서, 마치 선사시대의 흑요석 무기처럼 조각을 떼어내 장식용 무기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오팔라이트는 가짜일까요? 굳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그런 것은 시간이 아까운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진짜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님의 SNS 글에서 “누군가 투명한 구슬을 보다가 곧 아크릴인 것을 알고는 ‘가짜네’ 해 버리는 것을 보았다 어떤 투명함은 더 쉽게 긁히고 존재가 가벼워서 가짜가 되어버린다 왠지 나를 바라보다가도 ‘가짜네’ 해 버릴 것만 같다고 오래 생각한다”고 쓰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짜라고 단정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비록 남들과 다르고 쉬이 상처받을지라도, 그것이 가짜라고 불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시간이 아까운 짓이에요. 당신이 그것에 충실하고,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진짜인 것입니다.

 

제 사랑을 보고 누군가는 그것이 가짜라 말하더라도, 제게는 진짜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이야기 적어주신 효모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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