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쉽냐고 물어봤을때,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돈이 많든 적든, 몸이 건강하든 아니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짐을 끌어안고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짐이란 과연 무엇일까. 예전에 겪었던 힘든 과거일까? 아니면 노력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 같은 현재일까? 아니면 무슨 수를 써도 길이 보이지 않는 미래일까?
현재도 자신의 짐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산 입에 거미줄치지 않기 위해, 혹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자신이 원하던 미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현재가 갖고 있는 자신의 짐은 무엇일까. 가혹행위를 당했던 군생활? 경제적 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부모님? 어머니 치료에 따르는 각종 부대비용? 포기한 꿈? 군 가혹행위 가해자와 함께하는 직장생활? 거짓 의료 마케팅?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짐이 없어 보인다.
버거운 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현재의 뒤통수에 있는 혹은 지끈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며 생겼던 혹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혹은 단순한 상처부위가 아니라 현재가 느끼고 있는 부담감, 불안, 양심의 가책, 막막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마음의 상징적인 비유로 보인다.
순간 혹이 터지고, 씨방이 열렸다. 현재는 손으로 뷰파인더를 만들었다. 그 틈으로 눈을 가져갔다. 수백 개의 포자가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포자는 창 밖으로 날아가 길을 가던 사람들의 옷에 달라붙었다. 몇몇이 걸음을 멈추고 팻말을 든 사람들을 봤다.
포자는 현재의 옷에도 달라붙었다.
떠올라라. 떠올라.
현재는 봤다. 흰 버섯 중 하나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수많은 현재들이 그 안에 있었다.
먼 과거부터 조금씩 곪아오다가 터진 혹은 수많은 포자를 뿌리며 널리널리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도입부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알리는 사람들이 흰 버섯 같다고 생각했었던 현재는 결말에서 그 버섯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현재가 그동안 속으로만 삭히고 외면하고 있었던 본인의 문제를 직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그 말대로였다. 나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쁠 건 아무 것도 없다며 애써 자신의 짐을 외면해왔던 현재.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생계를 위해, 거기에 보탬이 되지 않을 일들은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꽁꽁 덮어버리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현재의 혹이 터진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깊어지던 현재의 고뇌가 시발점이 된 것이든 원장이 뒤통수를 때린 충격때문이든 간에, 어쨌든 현재의 묵고 곪은 상처는 터져나왔다. 먹고 살기 바빠 자신의 짐을 외면해왔던 현재는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흰 버섯이 될 테니까.
앞으로 현재의 뒤통수에 혹이 다시는 자라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