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оска по Родине
망향
목차
1. 그저 관심받고 싶은 ‘관종’ 영웅
2. 영웅의 도덕성에 대한 고찰
3. 글을 마치면서
1. 그저 관심받고 싶은 ‘관종’ 영웅
(p. 11). 머리가 텅텅 빈 열다섯 살 소년은, 얼핏 지나치면서 본, 살인을 방관하면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하는 인터넷 글을 떠올렸다. 강도질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나서기로 했다. 용기가 아닌 공권력에 대한 착각과 공포가 형우를 추동했다.
(p. 17). 텔레비전에 방영된 이 두 마디 말은 형우의 별명을 ‘태권소년’으로 만들었다. 태권소년은 용감한 시민 표창을 받았다. 시험 점수가 형편없다고 두들겨 패는 것만 잘할 줄 알았던 아버지조차,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이 국가에서 인정한 용감한 남자라고 자랑했다.
(p. 31). ‘태권도 본좌가 등판!’ 형우가 인터넷 커뮤니티 유모에 접속할 때마다 남겨놓는 게시물 제목이었다. 각종 섹스 유머 말고도, 여자 연예인의 몸매를 강조한 사진이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몸매가 화끈한 여자들 사진이 게시판에 보이곤 했다. 성 욕구에 메마른 사춘기 소년에게 유모는 멋진 사이트였다.
(p. 55). 형우의 진지한 고민을 들어줄만한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간 사이코 취급이나 당할 터였다. 영웅이라. 요즘 너무 띄워줘서 머리가 돌은 거 아니야? 정말 이상해진 건지 몰랐다. 그러나 형우는 다른 사람들이 줄곧 하고 싶었던 일을, 자신이 대신해줬다고 생각했다.
(p. 74). 형우는 자신이 해치운 두 악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린 참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하등 도움 안 되는 버러지였다. 가난한 강도는 정직하게 돈 버는 방법을 포기하고 남의 돈이나 털어먹으려 했다. 소용돌이맨은 그보단 나았지만, 쓸모없는 인간인 건 똑같았다.
(p. 111). […] 이튿날부터 형우는 연경에게 걸핏하면 현실의 히어로를 찾아 나서자고 시도 때도 없이 제안했다. 공부할 때도, 히어로 만화책을 볼 때도, 수업 시간에 졸다가도, 친구와 잡담을 나누던 도중에도, 고장난 알람시계처럼 아무 때나.
(p. 120). 그런데 형우는 매니아를 넘어선, 매니아 제곱의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이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히어로를 현실에 강림시킬 계획이라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이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녀석이 ‘정의롭다’고 하는 본인의 경험도 들을만했다. 강도를 잡은 이야기는 놀라웠고, 소용돌이맨은 어떤 학생이 봐도 처단시키고 싶었으니. 실제 히어로를 찾자고 인터넷을 뒤졌던 일도 재미었다.
(p. 131). 형우는 재수 학원의 낙서 가득한 책상 아래, 학교에서 주로 이용해먹었던 방법으로 몰래 히어로 코믹스를 탐독하는데 열중했다. 당시 히어로 코믹스는 아주 드문드문 출간됐기에 읽던 책을 또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p. 141). 형우는 유모에 틈만 나면 접속해 게시물과 댓글을 살피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부정한 데이터’라 이름붙인 자료들로, 배트맨이 악당을 처치하기 위해 컴퓨터 아래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습을 보고 착안한 행동이었다.
(p. 152). 진상들 몇몇을 코앞에서 치워버렸다고 만족해야 할까? 태권소년이 전국 뉴스를 도배했던 시절을 떠오려보라! 형우는 월급으로 주문한 검은 태권도복과 오토바이 헬멧을 착용한 채 가로등이 잘 비치지 않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히어로라면 마땅히 밤의 거리를 순찰하는 게 인지상정.
(p. 183). 어떤 히어로든 자격을 갖춘 존재인지 확인하는 시험의 순간에 부딪힌다. 그린랜턴도 용기의 반지를 얻기 위해 가디언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일반적인 뮤턴트가 엑스맨에 정식 팀원으로 합류하려면 고도의 훈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p. 190). “태권소년이 양아치 장사꾼을 심판하러 왔다!”
(p. 218). ‘노점상이 아무 싫대도 이건 아니지 않나? 그건 인간쓰래기임.’ ‘ㅋㅋㅋ 좀 찐따 같긴 해도 이 글이랑 비슷한 생각. 속 시원했음.’ 게시물에는 상반된 댓글 두 개가 달렸다. 새 깨달음이 등줄기에 전율을 일으켰다. 모든 히어로들은 찬반에 여론에 휘둘리며, 모두가 그 행보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p. 232). 감히 네가 뭔데 히어로에 대해, 영웅에 대해 떠드는 건데… 묻고 싶었다. 형우는 입 닥치라고 하고 싶었다. 이상한 논리로 정의 관계를 뒤바꿔놓는 저 입을 당장 멈추게 해야 했다. 행동으로라도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만 했다.
이규락 작가님의 중단편 소설인 <관종영웅 태권소년!>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작중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진 문장들을 인용하였습니다. ‘영웅’이라는 단어에 ‘관종’이라는 단어를 조응하여, 이규락 작가님께서 작품의 주인공인 태권소년 ‘형우’라는 캐릭터를 조형하신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 형우는 그저 관심에 목마른 인터넷 중독자 같으면서, 영웅 흉내를 내고 싶은 남성 찐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형우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태권소년’이었지요. 덕분에,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과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태권소년이라고 존경받던 유소년기를 지나서 형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형우는 재수학원에 다니고, 편의점 알바를 하게 됩니다. 어릴 때, 용감한 시민상을 받아서 주목받았던 ‘태권소년’은 평범한 어른이 되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어렸을 때는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받기 쉽지요. 하지만, 미성년자였던 19세를 넘어서 성년인 20세가 되면 대학 진학이나 직장 취업, 혹은 결혼과 육아로 인해 사회 구성원 중에 한 명으로 편입됩니다. 어른이 되면, 칭찬을 받거나 주목받기가 어릴 때보다 훨씬 어렵지요.
어른이 됨으로서 겪는 성장통입니다. 합법적으로 술과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합법적으로 19세 이상 관람 가능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렸을 때보다 규제가 덜하고 자유가 생깁니다. 그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음과 동시에, 사회구성원 중 한 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형우는, 어른이 됨으로써 겪는 성장통이 많이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영광(용감한 시민상을 받고 ‘태권소년’이라고 주목받음)에 메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이런 형우가 ‘태권소년’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오직 인터넷 커뮤니티 뿐입니다.
‘유모’라고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제 생각에는 유머 모음집의 줄임말 같습니다)에서 형우는 ‘태권소년’으로 활약합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자, 형우는 마치 본인이 슈퍼 히어로가 된 것 같은 고양감을 느끼게 됩니다. 형우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 돌아간 것 같은 향수를 느끼며, 슈퍼 히어로처럼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런 형우의 모습이 몹시 가엾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작품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형우는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였어요.
2. 영웅의 도덕성에 대한 고찰
슈퍼 히어로에 대해서 다루는 미국 드라마 중에 <더 보이즈>(The Boys)1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6년 발표된 동명의 코믹스를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슈퍼 히어로가 사실은 윤리성이 결여된 슈퍼 빌런이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2 이 작품에서는 슈퍼맨, 아쿠아맨, 플래시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슈퍼 히어로들을 패러디한 인물들이 빌런으로 등장하고 그에 맞서는 힘없는 소시민의 분투가 주된 내용입니다.3 이 작품은 슈퍼 히어로의 이면을 들추고, 사회 전방위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하고 있으며, 기존의 슈퍼 히어로물에서 신화화되었던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비틂으로써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물, 그것이 소비되는 사회까지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합니다.4
슈퍼 히어로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정의와 선함을 계승하는 영웅으로, 그들의 임무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입니다.5 하지만, <더 보이즈>의 슈퍼히어로 ‘홈랜더’와 <관종영웅 태권소년!>의 관종영웅 ‘태권소년’은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정의와 선함을 계승하는 히어로(Hero)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히어로의 기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수준의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년~1776년)은 『인성론』에서 경험과 관찰이 진리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경험주의의 원칙을 천명하며, 자아와 지각 작용은 인식의 성립 조건이지만, 지각대상은 인상과 관념뿐이라고 주장합니다.6
데이비드 흄은 도덕성 문제는 인간 본성의 문제이며, 이것이 인간 본성의 법정(the tribuanl)에서 논의할 가장 중요한 문제7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어떤 대상을 보고 고통이나 쾌락을 예상할 수 있고 동시에 혐오나 편애(aversion or propensity)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불편함이나 만족감을 주는 대상을 회피하거나 포용하며, 이러한 경험적 추론을 통해서 대상들과 근원적 감정들의 관계를 파악한 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도덕성은 특정한 감각인 도덕감(moral sense)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하며, 도덕성은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8 즉, 도덕성은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흄에게 있어서, 정의는 인류의 선(good)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인 덕9입니다. 도덕성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선함, 정의, 도덕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또 다른 철학자인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는 본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도덕성의 핵심이라고 말하며, 맹자의 도덕성은 心, 性, 情, 理, 氣 개념을 통해 설명되는데, 맹자의 이런 개념들은 송대 정주학을 거치면서 철학적 내용이 많이 부여되어 맹자 자신의 원래 의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은데, 맹자의 理라는 글자는 條理의 의미이지 理氣論의 理의 의미가 아닙니다.10 맹자는 立命은 하늘이 부여해 준 것을 온전히 보존하여 人爲로써 해치지 않음을 말한다11고 합니다.
맹자에 따르면,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盡心)자는 자신의 본성을 알게(知性) 되고, 본성을 알게 되면 천명을 알게(知天)되고, 따라서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기에, 몸을 닦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12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하는 까닭은 이제 어떤 사람이 문득 한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려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보자면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仁의 실마리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義의 실마리요,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실마리요,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智의 실마리다.”13 즉, 측은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마음이 인간의 선천적 도덕성의 실마리이며, 맹자의 四端은 인간 본성인 四德의 존재를 알려주는 실마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선천적 본성을 良知, 良能으로 표현하는데,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여도 능한 것은 본래 능한 것(良能)이요,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본래 아는 것(良知)이다.”14 또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을 지니고 있다”15고 합니다.
데이비드 흄과 맹자는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았던 철학자들입니다. 전근대사회에 살았던 그들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선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1명의 개인이자 시민으로서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됩니다. 살아가는 동안,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거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도덕성의 결핍은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보이즈>의 홈랜더와 <관종영웅 태권소년!>의 형우는 이러한 선한 마음과 도덕성의 결핍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슈퍼히어로나 태권소년이 되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 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3. 글을 마치면서
31기 브릿G 정기리뷰단이자 추천리뷰어로서, 이규락 작가님의 <관종영웅 태권소년!>의 리뷰글을 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2024년 8월 1차 편집부 추천작으로 선정된 작품답게, 이규락 작가님 특유의 재치있는 문체가 일품이었습니다. 저도 다각도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소설을 집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41매의 리뷰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