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간한 역술 잡지에 숨겨진 소소하지만 강력한(?) 비밀
가업이든 뭐든 물려받아서 한다고 하면 뭔가 그럴싸하다.
한 자리에서 100년을 이어 3대가 운영한다는 식당에 대한 소문은 거길 직접 가지 않아도 어쩐지 ‘그 집, 맛있을 거 같아.’란 생각이 절로 머리를 선점하고 만다. 실제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한 곳에서 오래도록 옛 맛을 유지하고 어릴 적 찾아오던 이가 나이 들어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또 오면 그건 진정한 맛집 아닌가.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 할아버지로부터 잡지사를 물려받은 ‘나’가 있다. 손자 넷 중 가장 역술에 편견 없게 생겼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맡게 된 잡지사. 간행 잡지 이름도 ‘전 세계 지성인이 함께 보는 계간 역술’이란다.
잡지는 계간지인데 300페이지밖에 안 된다. 폰트는 유아용 수준으로 서체는 바탕체에 컬러 화보 없이 종이는 심지어 갱지다. 예전 내용을 가져다 편집만 바꿔 발행하기에 ‘나’가 생각해도 수준 이하인데 이게 또 생각보다 잘 팔린다.
노동 대비 수입도 괜찮은 편이라 1년 정도 지날 즈음 ‘나’는 역술 잡지를 제대로 만들어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세상일이란 게 각 잡고 뭔가 좀 해보려 하면 꼭 사달이 나기 마련!
월간에 고급스럽고 전문가스러운 가격마저 저렴한 경쟁 잡지가 생긴 것이다. ‘나’가 보기에 콘셉트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만.
이참에 ‘나’는 잡지를 폐간하기로 한다. 그런데 한 구독자로부터 항의 전화가 온다. 사정을 설명하지만 그때부터 ‘나’가 사는 원룸에 생긴 구멍을 통해 아저씨 귀신들이 뿜뿜 출몰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고 보니 할아버지가 자부심을 가지고 간행해 오던, 허접해 보이는 잡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잡지를 내 놔. 봄 호랑 여름 호.”
“3, 40년 전 내용 계속 돌려가며 쓰는 거예요. 과월호 또 보시는 거랑 다를 거 없어요.”
“거짓말 마. 완전히 다르거든! 매번 다른 잡지라는 거는 우리 귀신들이 더 잘 알아!”
이게 무슨 조화인가.
돌려막기식으로 만드는데 다르다니. 물론 전월 것과는 다르겠지만.
할아버지의 잡지는 귀신들도 함께 보던 것으로 인간들과 달리 팬이 살아, 아니, 남아있었다!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걸 귀신들 보라고 돈을 써가며 발행할 순 없었던 ‘나’.
그렇게 귀신과의 동거, 아니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달림 끝에 잡지를 다시 만들려 했지만 ‘나’를 괴롭히는 일에 맛 들인 귀신들은 이제 잡지에 관심이 없다.
삶이 피폐할 즈음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해결할 방도를 찾을 수 있는 조언을 해주고 ‘나’는 할아버지의 도움 덕에 길고 긴 귀신들과의 동거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잡지를 다시 만들기로 결심한다.
세상엔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것에 중요한 포인트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할아버지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발행한 잡지처럼. 그 잡지가 귀신을 붙들어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돈도 안 되고 허접한 것이라 여긴 것이 돌고 돌아 의미를 입고 ‘전 세계 진정한 지성인이 함께 보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귀한 것일지 누가 알았겠나.
무더위로 지친 여름,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는 아니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심통스런 귀신들이 왕창 등장하는 발랄한 호러물을 즐기고 싶다면 이 소설에 발을 들여보라 권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가 휘두른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퇴마철은 웹 사이트 어딘가에서 조용하고 무게감 있게 광고하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맹세하건대 나는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