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채 푹 썩어가는, 잊힌 자들의 원한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릴 잊은 너희에게 (작가: 파란바람,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8월 11일, 조회 25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 선정작입니다.

https://britg.kr/reviewer-novel-curation/196906

 

“영혼은 원한이다.”

 

이 리뷰는 2024년 7월 29일 연재분인 68화: 혼, 풀 (3)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온갖 혐오와 범죄가 만연하고, 이것이 제대로 정화되거나 처벌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한을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죽은 사람들은 어떤가요? 말할 수도, 들어줄 수도 없는 이들의 원한은, 얼마나 더 깊고 어두울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사실, 상상하기 싫은 것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의 하소연을 듣는 것도 염증이 나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하소연에 혐오와 조롱으로 답하는 것이 더 가까운 선택지처럼 보이기까지 하지요. 이런 와중에 그 누가 죽은 이들의, 잠시 시간만 지나면 잊힐 이들의 원한이나 하소연 따위를 신경 쓰겠습니까?

잠시 공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지요. 공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으며, “삶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음에 대해서 어찌 논하겠느냐”라고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죽은 조상들의 영혼을 모시는 행위인 제사를 대단히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이는 조상의 존재로 인하여 지금의 자신이 있으니, 그분들을 위한 효와 경의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 질서가 세워진다고 봅니다. 유교는 이러한 가화만사성의 덕목을 확장합니다. 가족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세상으로 확장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을 효와 경의 자세로 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의 질서에 이바지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여 원한을 품고 있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을 풀어주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작금의 세태를 보십시오. 죽은 자들의 원한을 혐오와 조롱으로 대하는 것은, 무덤의 잡초를 뽑아 정리하기는커녕 다른 곳의 잡초와 제대로 발효하지 않은 퇴비까지 동원해 겹겹이 쌓은 뒤 푹 썩히는 짓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무덤만이 아니라, 그 무덤이 있는 곳과 그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원한을 들어주기 위해, 혹은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악령들을 처치하기 위해 사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팀을 이루어 활동하지요. 특히 죽은 이들의 원한이 법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이들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집니다. 법이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법에 대한 불신이 높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파란바람 작가님의 <우릴 잊은 너희에게>에서 등장하는 잊힌 자들은 죽은 자들만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의 원한 중에는 남겨진 유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소시민적이고, 쉬이 잊히는 존재들입니다. 사도가 신경 써서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죽은 자들의 원한과 함께 파묻히고 사그라질 존재들 말입니다.

한편, 상황이 바뀌면서 다시 떠오른 잊힌 자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33화부터 36화, <엄마라는 이름의 타인>에서는 영인이 과외 선생을 할 적에 수강생이었던 정윤이 등장합니다. 관리자가 사도들에게 한 약속 중 세 번째 약속이 깨지며, 과거의 인연과 계약으로 엮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일은 이 이전에 잠시 등장했습니다. 21화부터 24화, <언덕집의 악령>에 등장하는 배우 이예선은 미한의 대학 동기입니다. 계약이 아니라 악령 사냥으로 엮인 것이니 약속이 직접적으로 깨진 것은 아니지만, 잊고 있던 과거의 인연이 얽힌 것이지요.

사실 그 악령 사냥부터 진정한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죠. 66화부터 68화, <혼, 풀>에서 명칭이 공개된 혼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예선의 집에서 일어난 악령 사냥에서부터였으니까요. 그리고 이 혼풀은, 그 자체로 ‘잊힌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혼풀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망자의 토막이 난 영혼입니다. 사도들을 만나 원한을 풀 기회를 얻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망령이나 악령이 되지도 못한 채 존재들. 이들은 혼풀을 피워내는 의문의 세력에게 이용당할 뿐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잊힌 자’는 사도들의 전 동료인 지혜입니다. 지혜는 지난 악령 사냥에서 영인이 자신의 구명줄을 잘라버린 것에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인을 비롯한 옛 동료들에게 복수하고자 하지요. 지혜는 복수의 기회를 제공한 자들의 실체를 점점 알아가며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아가고 있으면서도, 복수심에 칼을 갈고 있습니다. 설령 옛 동료들이 사실은 그녀를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더라도 말이지요.

 

앞으로도 잊힌 자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의 원한은 겹겹이 쌓일 것이고, 푹 썩으며 악취를 풍기고 세상을 오염시킬 것입니다. 그게 죽은 자들이든, 산 사람들이든, 사도들의 옛 인연들이든, 혼풀에 갇힌 영혼들이든, 혹은 지혜든 말이지요.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세상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더 지독하게 쌓여도 괜찮다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사도들은 그 원한들과 뒤에 숨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파란바람 작가님의 <우릴 잊은 너희에게>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처럼 뛰어난 능력은 없지만, 자신의 주변과 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지독한 현실과 화려한 판타지 사이에서 분명하게 보여주니까요.

 

앞으로도 열심히 읽으며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만들어주시는 파란바람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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