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때문에 만년 2등일 수밖에 없었던 2등이 1등을 질투한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1등이 죽어버리고, 2등은 그토록 원하던 1등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1등의 원혼이 2등의 죄를 묻고 결국 2등도 죄책감으로 죽는다.
다소 변형되거나 각색되기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고전적인 괴담입니다. 성적이 중요하고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거기에서도 학업에 더 열심인 여학교를 다녔다면 꼭 한 번은 들어 봤을 괴담이죠. 이 괴담은 많이 변형되고 변주됩니다. 만년 2등이 결국 1등이 되지 못해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거나, 2등이 1등을 옥상에서 밀어 버리거나, 아니면 1등이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던가…….
‘북쪽 교차로에서 악마가 나타난다.’는 바로 이 괴담을 소재로 한 단편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편에는 북쪽 교차로에서 나타나는 악마가 등장합니다.
이 악마는 소원을 들어 주는 악마입니다. 악마를 불러낼 정도로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이 혼자 교차로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며 악마를 찾으면, 악마는 모습을 드러내고 거래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말하고, 악마는 그 대가를 약속 받으며 소원을 들어 줍니다. ‘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교차로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악마를 불러내는 데 성공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악마에 대해 수군거릴 때 혼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치부하며 대화에도 끼어들지 않았던 나는, 왜 그곳에서 악마를 불러냈을까요. 하나, ‘나’가 원하는 간절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 적극적인 부정, 그것은 곧 적극적인 긍정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악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나는, 친구들이 악마에 대해 나누는 허황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그것을 정말 없는 이야기, 헛소문, 괴담 따위로 치부했다면 오컬트 책을 빌리는 일도, 교차로 악마의 내용을 찾아 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호모포비아, 즉,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동성에게 끌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동성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고 설렘과 사랑을 느끼기에 오히려 그런 자신을 부정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다, 라고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의 내림으로서 타인의 의심 어린 시선을 피하고, 자기 자신을 세뇌합니다. 자신에게 갖는 거짓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악마를 믿지 않습니다. 악마를 믿어서, 그 악마에게 간절히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는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악마는 없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번 인정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것이기에. 외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런 ‘나’의 의식적인 거부는 아라가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결승선을 넘은 뒤 몸을 숙이고 숨을 몰아쉬던 아라가키의, 붕대로 단단히 싸인 가슴. 날씬한 몸과 길고 탄탄한 허벅지. ‘나’는 아라가키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고백할 수 없습니다. 아라가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히로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히로세와 아라가키는 어릴 때부터 같이 육상을 하며 자라 온 절친한 친구이자 단짝이자, 그 이상의 관계입니다. 괴담에서는 2등이 1등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질투하지만 여기에서의 2등인 아라가키는 히로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고, 함께 달립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그렇기에 아라가키에게 마음을 고백해도 거절 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아라가키에게 마음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는 것처럼 ‘나’는 히로세와 아라가키의 사이가 멀어지는 징후가 없는지 관찰하고 관심을 가집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한 것이 어쩌면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징조가 아닐지 기대합니다. 그 이외에 다른 증거는 발견할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아라가키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 후 열린 첫 육상 경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1등이었던 히로세가 아라가키에게 진 것입니다.
그 뒤로 아라가키가 북쪽 교차로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돕니다. 흔한 괴담의 흐름처럼, 2등이 1등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저주와 같은 그것이 히로세의 다리를 붙잡았고 그래서 아라가키가 1등을 할 수 있었다는 소문은 그럴싸하기에, 모두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잘 아는 이야기이기에 설득력을 가집니다. 거기에 오컬트 책에 적혀 있던 아라가키의 이름.
‘나’는 반발심을 가집니다. ‘나’는 아라가키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라가키가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비열한 방법으로 1등을 차지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라가키를 좋아하는 ‘나’는, 아라가키가 히로세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아라가키가 얼마나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에게 소원을 빌었다는 친구들의 말에 반발심을 품고 책을 확인해 보지만, 그곳에는 정말로 아라가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아라가키가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걸까? 그렇다면, 아라가키와 히로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라가키가 그렇게 해서라도 히로세를 제치고 1등을 하고 싶어질 만큼,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진 걸까? 내가 확인하고 싶은 진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라가키의 마음은 무엇일까?
아라가키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이것이 ‘나’의 욕망입니다. 악마를 눈 앞에 두고 ‘나’는 고민합니다. ‘나’의 본질적인 욕망은 ‘아라가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 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악마의 힘으로 이루어 버리면, 아라가키의 진짜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악마가 아라가키의 마음을 조종해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그것은 ‘아라가키의 진짜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라가키에게 사랑 받고 싶은 ‘나’는, 그렇기에 가짜 아라가키의 가짜 마음은 욕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라가키가 악마에게 소원을 빌었는지 물어볼까? 그것은 아라가키의 진짜 마음을 짐작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아라가키가 정말로 악마와 거래를 해서 1등이 된 것이라면 아라가키와 히로세 사이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간접적이고 애매합니다. 아라가키가 악마에게 소원을 빈 게 아니라면 어쩔 건데? 그냥 진짜 우연이었다면?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히로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라가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진실. 그 진실을 통해 어쩌면 ‘나’는 아라가키에게 고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금까지와 같이 마음을 영영 덮어 두고 모르는 척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도 가능성이 없는지,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는지, 혹시 내게 기회가 있는지 알고 싶은 내가 선택한 진실은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악마에게 빈 소원은 마치 원숭이 손 같아, 이루어지긴 이루어지되 결코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히로세의 유서를 읽습니다. 그곳에는 내가 원하던 진실이 있습니다. 왜 아라가키가 히로세와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는지. 왜 그 육상 대회에서 아라가키가 1등을 할 수 있었는지. 아라가키와 히로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 수 있는 진실입니다. 진실을 알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소원을 빌지 않아도 히로세는 자살했을지 모릅니다. 그날의 일은 내가 소원을 빌기 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히로세의 죽음은 ‘나’의 소원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을 원했기에, 진실을 알고 싶어했기에 악마는 쉽고 간단히, 모든 것이 정리되어 깔끔하게 적혀 있는 히로세의 유서를 ‘나’에게 주었습니다. 어쩌면, 소원을 빌지 않았다면 아라가키와 히로세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화해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소원을 빌지 않았다면 히로세의 부모님이 아라가키에 대한 히로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날의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더 행복해졌거나 혹은 더 불행해졌거나……. 그 어느 쪽이든, ‘나’는 악마에게 소원을 빌어 두 사람의 관계에 간섭했습니다.
그 결과 히로세가 자살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아라가키 역시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으로 ‘나’ 역시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아라가키와 히로세에 대한 유일한 속죄이기 때문입니다.
아라가키는 악마에게 소원을 빌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생각대로 아라가키는 히로세를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하고자 하는 욕망 따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라가키가 1등을 하고 히로세가 2등을 한 것은 악마의 소행이 아닌,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주지 않은 부모님의 탓입니다. 부모님에게 ‘만년 2등인 아라가키가 나의 앞날을 막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히로세는 결승선 직전 걸음을 늦췄고, 아라가키는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쟁취한 1등이 아니었기에 아라가키는 처음으로 해낸 1등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히로세 역시 자신이 아라가키의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망가트렸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북쪽 교차로에서는 악마가 나타난다’는 ‘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라가키의 마음도 히로세의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 ‘나’도 나의 진짜 마음을 부정하고 숨기려 하니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가 참 많습니다. 마지막 히로세의 유서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모든 것이 명쾌해지는 순간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 이어지는 비극적인 결과 역시 훌륭한 마침표였다고 생각합니다. 옥상으로 오르는 ‘나’의 귓가에 악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연출입니다. ‘나’는 단순히 진실을 원했을 뿐이고 히로세와 아라가키는 서로 사랑했을 뿐인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결국 세 명의 죽음으로 맺어지는 비극이 제 취향이라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하지 않았지만 ‘나’가 악마와의 거래를 선택한 그 순간 모두가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이겠죠. 이 모든 것이 북쪽 교차로의 악마가 짜 놓은 판이었다고 상상해도 즐겁습니다.
좀 더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두어도 좋았겠지만, 마지막에 모든 것을 명쾌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어 오히려 찝찝한 맛 없이 산뜻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길지 않은 단편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이야기를 맺는 솜씨가 세련되었다고 느낍니다. 인물들의 배경이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괴담을 차용하여 예상하던 흐름에서 반전을 주었다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