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목련 사진관>을 보게 된 이유, 간단하다. <목련>이 끌려서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아파트는 목화, 근처에는 목련이라는 아파트가 있었다. 기억은 가물거리는데 아마 그 아파트에 친구가 살았고 나는 이따금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았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놀이기구도 별 것 없었지만 그 순간이 즐거웠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아마도 봄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나는 그네를 탔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벤치에 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물한 기억 속에도 ‘감정’만은 남는다. 내게 목련이라는 단어가 좋은 이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갑작스레 떠난 연인을 애도하기 위하여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낯선 도시로 흘러 들어간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했던 사진을 업으로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이 차린 사진관 한 편에는 하얀 목련이 크게 그려진 그림이 있다. 봄이 오기 직전의 맹추위 속에서 활짝 핀 목련, 연인을 잃고 그 목련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느낀 주인공은 사진관의 이름을 ‘목련 사진관’으로 짓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 이 소설은 그러한 목련 사진관에서 주인공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힐링 소설이다.
실은 이러한 힐링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신파가 되고, 때로는 너무나 감정과잉이 되기도 해서다. 스릴러나 추리, 코미디나 판타지와 같은 장르를 쓸 때보다 더 어렵고 무거운 게 바로 힐링, 휴먼 드라마를 그려내는 것인데 이 소설은 오랜 만에 끝까지 읽어낸 보기 드문 ‘휴먼 드라마풍’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잠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불치병에 걸린 한 남자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우연처럼 찾아든 사랑에 가슴 뛰어하기도 하고, 흔들려 하기도 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가 결국에는 스러져버리는 그 영화를 나는 매우 좋아했다. 어쩌면 이 소설을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문체가 ‘담백’해서 일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고, 감정 과잉의 순간이 적재 적소의 때’에만 삽입되어 있다. 이 소설 역시 담백해서 차분하게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일화를 알게 되고,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게 된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것은 주인공의 감정이 처음으로 터져나온 순간이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졌다는 데 있다.
서술, 설명의 형태로 그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야기 되어 알고는 있었지만 주인공의 감정을 들여다 볼 만한 장면이 없다가 (주인공의 적응기와 사진관을 키워나가는 이야기가 주로 보여져서) 갑자기 그의 기일에 슬픔이, 감정이 터져나온 느낌이랄까. 물론, 일상에서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선 적어도 감정이 터져나오기 전에 [그럴 만한 순간]이 쌓인다던가, 단초가 하나 필요하다.
이를 테면, 바쁜 삶을 보내며 사진관이 잘 되는 와중에도 방 한 켠에는 빈 맥주캔이 쌓여간다거나, 순간순간 목련이 활짝 핀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는 때가 있다던가, 눈물이 후두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이 있어서 현서에게 들킬 새라 급하게 닦았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주인공의 균열이 보여지는 ‘찰나’ 같은 것들이 앞에 깔린 이후에 현서 앞에서 폭발하듯 감정을 드러내는 게 나왔다면 어땠을까. 주인공의 감정선이 잘 잡히지 않는 구간들이 많았다. 내면도 그러했지만, 현서와 주인공 사이의 감정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서가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라는 게 그의 말뿐 아니라 행동 혹은 에피소드로 하나 보여졌다면 어땠을까. 이를 테면 손발이 착착 맞는 걸 보여줄 만한 하나의 이야기여도 좋겠다.
[당신을 이윽고 보내는 뜨거운 여름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좋았기에, 스르륵 물 흐르듯 읽게된 ‘오랜만’의 힐링 소설이기에 아쉬움을 좀 더 이야기했을 뿐, 지금도 편안하게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다만 휴먼 드라마, 힐링 계열의 장르는 주인공과 관련자들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마지막에 잔잔한 마음으로, 분명 입은 웃는데 눈은 울듯하게 이 소설을 떠나보냈을 거란 생각이 남는다.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아마 이 영화는 취향에 상관없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깨달았다. 켜켜이 쌓인 감정선, 인물의 이야기, 에피소드가 사람을 얼마나 울리는지. 결말이 나에게 도달하기 전에 나는 이미 울었다. 어떠한 결말인지 알면서도 허물어져 펑펑 울었다. 주인공은 울지 않고, 나는 울었을 때 그 영화는 [명작]이 되었다. 휴먼 드라마의 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날 울려달라는 이야길 이렇게나 길게 썼다. 사람에 따라 감상이 다를 것이니 만큼 이 리뷰를 끝까지 본 당신이 있다면 한번 스윽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