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족이 아니니까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벌목 사냥 (작가: 준식,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6월 25일, 조회 20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자연은 우리 모두의 터전이니까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고라니는 대한민국 전역과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멸종위기종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 대부분은 고라니를 해로운 짐승으로 여기지요. 돼지는 어떤가요? 사실은 인간이 그들의 터전을 먼저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농사를 망친다며 죽이기 일쑤입니다. 공장형 축산 체제는 가축들의 고통을 가중하며, 환경오염이나 전염병 등의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의 일부 연구에 따르면, 식물 또한 고통을 느낄뿐더러 자신을 누가 공격했는지도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벌목이나 수확을 위해 나무를 자르거나 열매를 수확하면, 그 나무토막과 열매도 자신이 본체로부터 분리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합니다. 심지어 농사는 그 자체로 환경오염을 일으킵니다. 온갖 과일과 채소는 인간의 욕심에 따라 개량되고, 키워지고, 수확됩니다. 이 모든 일이 진정 식물들이 바라왔던 일일까요? 우리가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면, 살기 위해 먹는 것 이상의 일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개량이나 능동적인 농경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놔둬야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존중할 수 없습니다. 존중할 생각도 사실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니까요. 동족이 아니니까요. 가족이나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서로를 항상 존중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동물이나 식물인 그들을 존중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이러한, 가족이 아니기에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장면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맨 처음에 주인공 앨런은 남의 집 양을 훔치려다가 걸립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양치기견인 란돌프에게 붙잡혔기에 몽둥이찜질을 당했지요. 소녀가 마지못해 빵 하나를 앨런에게 먹여주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녀는 그를 식충이나 아저씨라고 부르며 신랄하게 공격합니다. 명석하지만 존중하는 모습은 아니죠.

여동생 레이나가 미쳐버리게 된 이유도, 꽃을 삼키게 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거지 같았다고 앨런이 수긍할 정도로, 레이나에게는 어린 나이에 가혹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한다든가, 숲에서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할 정도로 레이나는 가족 외의 인간에게 환멸감을 한가득 느끼고 있었습니다. 레이나가 꽃을 삼키고 식물재난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학살한 존재가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이었음에서 그 분노가 느껴집니다. 사실 그 뒤에 가족들을 습격하여 파랑새로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족들을 향한 분노가 정말 없었던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앨런이 쓰고 있는 검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엘프들의 보물이며, 앨런이 훔친 것입니다. 그래서 엘프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앨런을 추격했습니다. 검이 갖고 있는 자아가 스스로 앨런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하자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이를 갈면서 물러났지요. 처음부터 앨런이 엘프들을 존중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더라면, 엘프들이 종족의 보물인 그 검을 빌려주지는 않더라도 좋은 무기나 조언을 구해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들을 존중하지 않고 훔칠 생각이었기에 그 사달이 났던 것이지요.

앨런과 레이나의 대화 역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관통합니다. 인간은 잡초를 밟으면서 잡초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작을 패고 태우며 나무가 느낄 고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앨런은 인간이 자연에 빚지고,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논리로 삼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니까요. 억압하고 지배하는 지배자의 논리니까요. 마치 낙수효과로 인해 하류 계층에게 떨어지는 푼돈을, 자신들이 베푸는 자비처럼 여기는 상류 계층 같다고 할까요. 그렇기에 그 위치가 역전되었을 때는 울고 떼를 쓰며 억울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가족이 아닙니다. 식물과 인간 사이에서는, 그리고 인간 사회 안에서도 진정한 가족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앨런 본인도 레이나를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식물재난이 되어버린 레이나의 자아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지금의 레이나는 모습도 성격도 변한 빈껍데기일 뿐. 앨런은 레이나를 죽이고,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파랑새로 변해버린 다른 가족들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하고요. 그런 그는 너무나도 태연합니다. 자신이 치명상을 입는 와중에도요. 이러한 앨런의 행보는 레이나가 더 가족이 아니기에 그런 것 같다는 자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앨런은 정작 레이나를 쓰러뜨리기 직전에 혼란을 느낍니다. 레이나가 5년 동안 숲을 이루지 않고, 자신을 쫓아다닌 것이라면 그건 가족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레이나를 죽인 이후에도 비슷한 생각은 이어집니다. 레이나는 앨런에게 빵을 주었던 소녀를 죽였습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길을 앗아갔습니다. 인간 역시 식물의 미래를 앗아갑니다. 식물재난의 행태는 정당한 앙갚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과 식물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어느 하나를 완전하게 배제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마저도 인간 중심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우리는 때로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식물과 인간은 정말로 가족이 될 수 없는 것인지 다시금 의문이 듭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며 시기하고 증오하는 인간들 역시 서로를 끝끝내 존중할 수는 없는 것인지도 다시금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 답을 내리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겠지요. 앨런은 죽었고 그의 주검은 동물들에게 파먹힌 채 로벨리아를 피우는 거름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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