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 귀향길에는 라이터를 필참할 것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그날 밤에 불을 놓다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4월 20일, 조회 18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 이성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에 진지하게 논하기에는 미덥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그들’을 우리는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귀신이거나 요괴거나, 유령이거나, 도깨비거나 저승의 사자거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현상. 물리적 법칙으로 도무지 계산되지 않는 일들에 우리는 종종 그들이 개입했다고 믿어오곤 했다. 현실적으로 그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끔은 미신과 초월적 힘에 기대곤 한다. 과학보다 귀신이 오래되었으며, 이성보다 신이 더 오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왔다고 말하는 게 과언일까.

신은 죽었고, 신앙을 ‘미신’으로 보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긴 역사를 신에 기대어 왔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그들’의 힘은 유효하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왜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환상과 현실의 공존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신비함을 지니고 있다. 그 신비함이 주는 힘이 막강해질 때, 사람들은 때로 그 힘에 의지한다. 그렇게 ‘신’이 만들어진다. 어쨌거나, 인간에게 이익이든 해가 되든, 좋은 신이든 악한 신이든, 위대하든 사소하든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들이 평소보다 자주 지상에 돌아다닌다는 날을 만들기도 했다. 귀신이 돌아다니는 날, 죽은 사람의 영혼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날, 천상의 문이 열리는 날 등 나름의 기준으로 평소보다 영험하다고 믿어지는 시기에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들’의 날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 존재하는 문화다. 2017년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멕시코의 명절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영화로 신선한 전개와 ‘죽은 자의 땅’이라는 뛰어난 공간 설정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여전히 잘 만들어진 신과 영혼의 이야기는 환영받는다.

배명은 작가의 단편 〈그날 밤에 불을 놓다〉는 잘 만들어진 현대식 영혼담의 ‘스케치’처럼 보이는 소설이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고민을 거칠 때 독자를 울릴 수 있는 단편이기도 하다. ‘나’라는 일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사건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물의 행동이 완전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끝맺어진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납득이 가능한 인과와 개연성이 보완될 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양한 가능성으로 뻗어갈 수 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기로 선언한 ‘나’와 그에게 갑자기 도착한 어머니의 위급한 소식. 명절에 귀향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홀로 다급한 ‘나’에게 한순간 펼쳐지는 비현실에는 적절한 환상성과 신비함이 깃들어 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어쩌면 그에게도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 존재를 플랫폼에서 목격한 ‘나’에게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가짜 눈”, “포졸”, “가주” 등 예스러운 말투 안에서 ‘나’는 그들이 어쩌면 평범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 이때,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네, 담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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