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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과양각시의 아들 (작가: 김은애,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3월 25일, 조회 17

옛날 옛적 동경국에 아들 아홉 형제를 둔 버물왕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위로 삼 형제와 아래로 삼 형제가 시름시름 앓다가 하루아침에 모두 죽었습니다.

남은 세 아들도 어린 나이에 죽을까 하루하루가 불안하던 버물왕에게 어느 날 웬 스님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세 왕자님의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왕궁에 계속 머물면 열다섯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미 왕자 여섯을 잃었소. 어찌 살릴 길이 없겠소이까?”

 

내일이라도 왕궁 밖으로 내보내 3년 동안 세상을 떠돌게 하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광양 땅에 과양각시라는 요물이 살고 있으니, 그곳엔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합니다.”

 

―송언, 『저승사자가 된 강림도령』, 한림출판사

 

 

저승사자 강림이 차사가 된 이야기, 작자 미상의 제주 신화 『차사본풀이』에는 위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경국에 살던 버물왕에게 아들이 아홉 있었는데 모두 단명하고 셋만 남았다. 남은 아들들에게 주어진 목숨도 본디 짧다는 걸 알게 된 버물왕은 스님의 권유대로 아들을 집 밖으로 보낸다. 그러나 배가 주려 금기를 어기고 과양각시의 집에 들어간 세 아들은 각시의 꾐에 넘어가 잔인하게 목숨을 잃는다. 그들의 시체를 모두 연못에 던진 이후 과양각시는 태몽을 꾸고 세 명의 아들을 낳지만, 한날한시에 과거 급제를 한 아들들은 각시에게 인사를 올리던 중 모두 돌연사한다. 알고 보니 그녀의 아들들은 버물왕 아들들의 환생이었다. 염라대왕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걸 들킨 과양생이 부부는 몸이 찢기고 빻아지는 형벌을 받게 된다.

전형적인 신화 구도이지만, 지금 읽어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차사본풀이』의 과양각시 설화는 이야기 자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는 않으나,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자극성과 환상성, 신비성을 모두 갖춘 민담이다. 한날한시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버물왕의 세 아들들이 살인자의 집에 환생해 같은 나이에 죽는다. 그들의 반복되는 탄생과 죽음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권선징악을 상징하며, 지금 콘텐츠 창작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인 ‘환생’ 모티프에 부합한다.

과양각시 설화는 충분히 다양한 서사, 특히 공포, 추리, 스릴러 장르로 재창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귀에 기름을 붓는 방식으로 버물왕의 세 아들을 죽여 연못에 빠뜨리는 과양각시의 계략이나, 염라대왕에게 살인을 들킨 과양생이 부부의 몸이 빻아져 가루가 된 것, 그 가루가 모기와 각다귀로 환생했다는 등의 상상은 극단의 잔혹함과 함께 묘한 선악의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이쯤 되면 원형 설화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과양각시 설화가 대중에게 왜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이처럼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민담은 그것을 발굴한 창작자에게 무한히 확장되는 상상의 폭을 선물한다. 아직 거의 시도되지 않은 이야기, 낯선 원형 설화는 그것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 대중적인 설화를 택해 새로운 글을 쓰기는 쉽지 않지만, 아무도 몰랐던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은 비교적 수월하다. 조금만 비틀어도 이미 독자에게 새롭기 때문이다.

김은애 작가의 단편 〈과양각시의 아들〉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과양각시 설화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짧은 분량 안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발생하는 살인과 환생, 그리고 빙의는 과양각시 설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두 이야기가 완전히 같은 구조는 아니다. 오히려 제목이 밝혀주지 않는다면, 이제 막 도입부에 선 독자는 아무도 이 단편이 과양각시 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없다.

기괴하게 잘린 채로 동네 뒷산에서 시신의 손목이 발견된다. 그걸 발견한 아이는 남들보다 조금 어리숙한 성격인데, 사리 판단이 불가능해서인지 자신이 가져온 손목을 산삼인 줄 알고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사람들은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경악한다. 이후 아이는 크게 앓는다. 기도로 지극정성인 아버지의 마음이 닿았는지, 아이의 몸은 점점 회복된다. 사람의 손을 씹어 먹던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성격이 본래 그렇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다시 창식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마을에 하나의 충격으로 끝이 날 법했던 ‘손목 사건’은 이후 아이의 성격이 종종 완전히 남처럼 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후 독자는 이 소설이 과양각시 설화의 ‘빙의’ 소재를 바탕으로 하였음을 알게 된다. 빙의된 아이를 통해 사람들 앞에는 완전히 경악할 만한 사건과 그것의 진실이 펼쳐진다. 작가는 이야기의 후반에, 그리고 제목에 한 번씩 과양각시 설화의 내용과 인물을 인용한다. 창작된 단편 소설이 과양각시 설화를 바탕으로 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선, 설화를 소설에서 떼어 놓고 이야기해 보자.

 

그러니까, 동네 바보 창식이가 산에서 잘린 손목을 가지고 내려온 사건부터 시작하자는 말이다.

 

 

심 봤다! 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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