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다브라, 열려라 참깨,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이 셋은 모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주문(呪文)이다. 주문이란, 주술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외는 글귀를 의미한다. ‘주문을 왼다’라는 말을 들으면 작고 귀여운 소원을 이뤄달라고 비는 꼬마 아이부터,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마술사까지 다양한 인물이 떠오른다. 수많은 주문의 수만큼 그것을 외는 사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주문은 보통 신비한 판타지 영화나 동화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주문은 해리포터 시리즈, 아라비안나이트 등의 신화나 소설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자신이나 타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주문을 외면서 위기를 빠르게 극복한다. 이처럼 주문에 따라 소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대체로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에서 그것이 실제로 사용되기란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현실에서 주문을 외운다고 상상해 보자. 물론 특정 종교에서는 신께 올리는 기도의 마지막에 맺음말을 붙이거나 같은 경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읊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소원을 이루기 위한 주문이라기보다는 신을 향한 믿음 또는 소망 자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기도가 아닌 일상에서, 예를 들어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 중에 갑자기 누군가 퇴근을 기원하는 주문을 외운다면, 그는 퇴근이 아닌 퇴사를 눈앞에 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당당하게 ‘코코 포리고리’라는 의문의 주문을 사내에서 외우고 다니는 직원이 있다. 이 주문에는 승진도, 월급 인상도, 원활한 이직도 아닌 ‘사랑’을 이뤄주는 기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주문을 듣는 사람은 모두 특정 두 사람이 사귄다고 믿게 된다. 이를테면 직원 모두에게 이 주문을 한 번씩 외우면 내가 사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하게 승인된다. 나와 그가 사귀고 있음이 자연스럽게 사실화되는 것이다.
이런 신비한 주문이 실제로 있다면, 이렇게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면, 한 번쯤 외우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하지만 ‘코코 포리고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뜻밖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아침에 뭐라도 잘못 먹은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다면, 아래의 절차에 잘 따라야 한다.
내가 사귀고 싶은 대상을 A라 하자. 먼저 나와 A의 연애를 믿어야 하는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연애의 배경이 사내(社內)라고 가정했을 때, 우선 모든 사원이 나와 A의 관계를 인정하면 좋다. 그리고 부모님, 가족, 친척들이 이 관계를 인정한다면 연애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코코 포리고리 주문이 작동하려면, 상대가 나와 A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조금 까다롭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조건이다.
주문을 외울 준비가 되었으면 상대의 눈앞에서 박수를 두 번 친다. 그리고는 “아가씨가 그러는데, 나랑 그 사람이랑 사귄다더라.”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주문에 말려들어서 나와 A의 연애를 믿게 된다. 갑자기 남의 눈앞에 손뼉을 두 번 친다는 게 보통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힘들다. 실패한다면, 상당히 난감한 분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만 한다면, 사랑을 시작할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소문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이 소설은 고전 설화 중 ‘서동요’와 비슷한 구조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소문을 퍼뜨린다. 코코 포리고리, 코코 포리고리. 쉬지 않고 주문을 외우며 다닌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주문에 걸리고 나면, 이 소문이 사실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애하고 싶은 상대 A 역시 나를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소문’에서 시작한 사랑이 완전할 수 있을까. 이 주문은 과연 소원을 이루어 주는 마법일까, 아니면 분위기뿐인 가짜 연애에 빠지게 하는 저주일까.
여기 실제로 코코 포리고리를 해본 사람의 증언이 있다. 물론 사실로 믿기에는 너무 가짜 같지만, 듣다 보니 왠지 그럴듯하기도 하다. 저도 모르게 밑에서 짝짝, 박수 연습을 두 번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손뼉을 치고 속삭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코코 포리고리, 아가씨가 그러는데.
Xx 작가의 단편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은 설화 서동요의 환상적인 현대적 재창작이다. 괴담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시작해 약간의 반전을 지닌 로맨스로 끝이 나는 이 소설에서 주가 되는 것은 ‘코코 포리고리’라는 주문이다.
‘코코 포리고리’는 발음이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기능으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소문’의 무서움이 특히 강조되는 시대에서, 이미 문화적으로 서동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서 이미 이 주문은 절반 이상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게다가 주문을 매개로 판타지와 로맨스 요소가 현실에서 결합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게 되는 일이 눈앞에서 마법처럼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상 파티션 너머로 흘긋거리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서로를 위하고 돕는 게 회사 안에서도 허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이 소설이 서동요에서 출발했다면, Xx 작가의 상상력에는 이야기를 비트는 센스가 있다.
서동요에서 시대적 배경이 현재로 한번, 현실에 가상을 덧씌우는 과정이 한번 첨가되어야 이 소설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Xx 작가는 장면의 디테일을 설명할 줄 안다. 코코 포리고리 주문을 설명하는 그는 최대한 세부 사항을 꼼꼼하게 정한다. 실제 주문에 쓰이는 문장부터, 사람들에게 주문을 거는 상황, 당시 윤정의 심리까지. 코코 포리고리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시간과 순서에 맞추어 꽤 사실적으로 진행된다. 윤정은 주문을 외면서 느꼈던 현실적인 감정을 100퍼센트 털어놓는다. 주문이 실패하면 사용하려고 했던 대처법과 주문이 성공한 후의 안도감, 주문이 실제 발현하기 위해서 따져야 할 기준과 상황 조건들을 얼마나 계산했는지가 윤정의 말에서 생생히 보인다.
윤정이 비현실적인 ‘주문’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로맨스’가 ‘회사’라는 일상적인 공간과 만나 독자들의 공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한 번 더 이야기를 전환한다. 이 전환은 ‘과연 주문으로 쉽게 완성되는 사랑이 끝까지 해피엔딩일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주문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지금은 막연히 덮어놓은 해피엔딩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독자층의 이런 성향을 아는 작가는 강제로 사랑을 이루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소설 안에 충실히 담는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과 타인의 시선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마음만 맞고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아도 시련이 닥칠 수 있고, 주변에서 아무리 권해도 둘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완성될 수 없는 관계다.
“실상은 사귀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는 만나기까지 아무런 감정적 유대도 없었고, 이상한 수단을 통해서 억지로 엮인 상태였으니까요.”
코코 포리고리는 양방향의 사랑이 없이 일방적인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강제로 연인 관계를 형성해 버리는 주문이다. 게다가 지훈은 윤정의 주문 때문에, 잘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만다.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던 윤정은 지훈과의 연애를 그만두기로 한다.
코코 포리고리, 도련님이 그러는데.
주문을 푸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우선 주문을 걸었던 사람들을 순서대로 되짚어가며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주문을 외어야 한다. 똑같이 눈앞에서 손뼉을 두 번 치고 “도련님이 그러는데, 나랑 김지훈이 헤어진다더라”라고 말하면 된다. 다행히 첫 번째 사람에게 주문을 외니 그다음 사람에게로 가는 가상의 줄이 연결된다.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서 주문을 해제한 윤정은 지훈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되돌린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나버린 로맨스가 되겠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액자 밖으로 나와 조금 더 장면을 이어간다. 윤정은 마지막까지 대화를 나눠 준 지훈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 소설의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던 ‘나’의 이름이 ‘김지훈’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다. 김지훈은 코코 포리고리로 연애에 대한 기억만 상실했을 뿐, 자신의 이름을 잊지는 않았을 텐데 윤정이 말을 끝낼 때까지 그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지훈이 술값을 계산하면서 ‘그건 내 이름이었다’라고 마치 자기 이름을 그때 깨달은 것처럼 글을 맺기보다 ‘그녀는 왜 내 이름을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이름으로 불렀을까’라며 궁금해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또는 코코 포리고리의 마법이 아직 걸려 있었다는 설정으로, “도련님이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주문이 끝나면, 그가 자신의 이름을 깨닫는 결말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작가는 이 소설의 결말로 ‘윤정이 지훈을 사랑했다’라는, 예측이 가능한 안전 루트를 택한다. 하지만 코코 포리고리라는 주문이 가진 신비한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독특한 결말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윤정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이라는 걸 끝내 모르는 상태로 서술자 ‘나’가 윤정에게 다시 그 주문을 사용하며 이야기가 끝나면 어떨까. 본래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익숙한 잔상이 기억에 남아 그의 마음에도 어느새 윤정이 들어온 것이다. 완전한 단단함으로 매듭지어지는 소설이 아니라, 약간의 열린 결말이 어울리는 단편이다. ‘주문’이라는 것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장르가 ‘호러’가 아닌 일반 판타지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전반부의 ‘나’가 윤정에게 들려준 괴담은 정석으로 무서운 이야기다. 그러나 후반에서 윤정은 지훈에게 자신이 실제로 겪은 사건의 과정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코코 포리고리 주문은 괴담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에 가깝다.
만약 지훈과 윤정의 이야기를 모두 살리고 싶다면, 전반부와 후반부를 분리해 각각 하나의 단편으로 완성하면 된다. 지훈이 윤정에게 들려준 괴담과 코코 포리고리 이야기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반부는 따로 떼어 독자적인 공포 소설 또는 연작을 완성하고 후반부는 코코 포리고리만으로 완성되는 로맨스 단편을 쓰면 된다. 지훈의 괴담은 짧은 여러 개의 공포 소설을 좀 더 구석진 술자리에서, 또는 점심시간 같은 업무 휴식 시간에 나누는 회사원 여럿의 일상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윤정의 로맨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담담히 고백한다는 구조는 유지하되 서사의 곁가지를 정리하고 코코 포리고리라는 주문이 쓰인 일화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물론 이런 내용이 필히 수정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작품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사소한 보완 사항이 있음에도 이 소설은 독자에게 충분한 매력으로 다가간다. 별것 아닌 일상의 신비한 판타지를 간접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평범한 장소인 ‘회사’에서 누구나 한번은 품을 수 있는 보편적 사랑의 감정을 조금 건드려 공감을 불러낸다. 정말 코코 포리고리라는 주문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주문을 쓴다고 과연 내가 더 행복할까.
요컨대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단편이다. 무작정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행복의 완성은 아니며, 오히려 뜻하지 않은 기회에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다. ‘코코 포리고리’ 주문을 외우면 시작되는 소문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무수한 아가씨, 도련님들이 아닌 ‘나’와 ‘너’가 일대일로 완성하는 사랑만이 결국 의미 있다.
그러니 차라리 창포꽃을 백 일 동안 세 번 접는 마음으로, 소문이 아닌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정말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제목을 ‘코코 포리고리’가 아닌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으로 정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