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에 폴라리스 랩소디가 업데이트된 기념으로 예전에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을 올려 봅니다.
(『폴라리스 랩소디』 결말과 함께 『퓨처 워커』,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며
이영도 작가(이하 ‘작가’)의 장편소설은 종종 불친절한 결말로 원성을 사곤 하지만, 그중에서도 『폴라리스 랩소디』는 유독 악명이 높습니다. 다른 장편 소설들처럼 소위 ‘열린 결말’로 느껴진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도무지 예상치 못한 전개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난데없이 폴라리스가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만들어졌으면 망할 수도 있지. 뭐가 그리 놀랍다고.’ 그렇습니다. 폴라리스가 멸망할 수도 있겠지요. 비록 주인공 일당으로 여겨지는 노스윈드 해적단이 세운 나라이며, 하리야와 (키와 알버트를 제외한) 선장들이 폴라리스를 건국 및 보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길고 상세히 묘사했고, 몇몇 감동적이기까지 한 장면들로 독자들이 감정 이입을 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했지만…… 뭐, 투표 결과로 망할 수도 있죠. 그러라고 한 투표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남습니다. 폴라리스 건국 과정이나 그 직후에 발발한 전쟁을 수백 페이지에 걸쳐 보여주었던 작가가 왜 멸망 과정은 단편적인 정보만 제시하면서 몇 페이지 만에 후다닥 처리해버린 걸까요? 라이온이 레갈루스로 돌아가 왕좌를 되찾는 사건에만 한 챕터를 할애했으면서 “두캉가와 라이온은?” “죽었어.” 세 마디로 죽여버리는 건 좀 지나치게 밸런스가 안 맞지 않나요? 예지 능력은 없지만 전지 능력을 가진 벨로린은 투표 결과가 폴라리스 멸망으로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환호했던 걸까요? 아니, 애초에 투표 결과가 ‘복수’였는데 왜 폴라리스가 멸망한 걸까요? ‘복수’의 선택이 반드시 폴라리스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하기에는, 다벨 vs 폴라리스의 전쟁 결과와 하이마스터들의 자유 vs 복수 투표 결과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아무래도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단계를 밟아가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 비춰 보면 의아한 기분도 듭니다. 왜 하필, 굳이, 이런 느닷없는 멸망 방식을 선택했을까요?
여기까지 공감하셨다면 한번 의심을 품어볼 법도 합니다. 폴라리스는 과연 멸망한 걸까요?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어쩌면 익숙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요). 폴라리스의 멸망은 본문에 아주 명료하게 선고되었으니까요. ‘폴라리스는 멸망했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멸망에는 다소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그래. 이렇게 저렇게 해서 멸망했군.’이라고 쉽게 납득되는 서술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폴라리스는 멸망했다.’로 끝나는 대목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을까요?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작품이 제공하고 있을까요?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이야기의 개연성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작가 본인은 독자의 해석은 독자의 자유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 관점에 따르면 어떤 해석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한다거나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어떤 해석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굳이 그 해석만을 고수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다양한 해석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더 폭넓게 경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글에서는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작품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려 합니다. 첫째는 물리 법칙을 바탕으로 한 개연성의 측면, 둘째는 서술 기법의 측면, 셋째는 관념적인 정합성 측면입니다.
항해가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려면
먼저 문제의 장면이 나오는 대목을 살펴보지요. 종이책으로 5권 419면, 챕터로는 제23장인 「자유, 복수, 해류를 위한 리프레인 refrain」에서 많은 독자에게 악몽을 선사한 다음 문장이 나옵니다.
제국력 1025년 6월 33일. 폴라리스의 개국 기념일. / 폴라리스는 멸망했다.
다시 봐도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으니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앞뒤 맥락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벨로린과 킬리, 켈커가 등장해 폴라리스가 멸망했음을 알려주는 이 장면은 410면, “병사의 방패가 힘껏 내밀어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앞에는 장면 전환을 나타내는 기호가 표시되어 있지요. 직전에 나오는 장면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스톨 장군에게 폴라리스 공격을 명하는 하드루스 대통령, 이루미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에름 후작, 제국 기사단이 된 소사라와 그를 보며 심란해하는 킬드온, 테리얼레이드로 돌아온 파킨슨 신부와 데스필드를 만난 코리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395면입니다. 15쪽 동안 꽤 바쁜 여행을 했네요. 이 앞의 394면까지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폴라리스가 다벨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하이마스터들은 투표 결과 복수를 선택했고, 율리아나와 오스발이 심상치 않은 대화를 나누지요. 율리아나는 394면이 마지막 출연이지만, 오스발은 “폴라리스는 멸망했다.”는 대목이 끝나는 419면에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부록을 제외한) 본문 마지막 페이지인 420면에서 오스발과 자유호와 마주하면서 피날레를 장식하지요.
오스발이 출연하는 394면과 419면 사이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폴라리스 멸망을 비롯해 총 5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실린 구간입니다. 파킨슨부터 벨로린까지 나오니 편의상 [파킨슨~벨로린 구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파킨슨~벨로린 구간]에 실린 에피소드를 등장 순서대로 배열하면 [파킨슨-데스필드 씬], [킬드온-소사라 씬], [이루미나-에름 씬], [바스톨-하드루스 씬], [벨로린-킬리 씬]이 되겠네요. 여러 진영과 지역을 넘나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떨까요? [파킨슨~벨로린 구간]에서 시간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모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밤거리는 스산하고 어두컴컴하며 적의에 차 있는 교활한 야수 같았다. 그리고 그 위로 1월의 바람이 한 꺼풀 불고 있었다. [파킨슨-데스필드 씬]
서 킬드온은 겨울 벌판을 바라보았다. [킬드온-소사라 씬]
창 밖으로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카밀궁의 정원이 흰빛을 가득 뿌리고 있었지만 (…)
“그들이 바로 작년에 일으킨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제국인들은 모두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 [이루미나-에름 씬]
계절은 초여름이었고 (…) 장군은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 그들은 작년에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바스톨-하드루스 씬]
제국력 1025년 6월 33일. 폴라리스의 개국 기념일. / 폴라리스는 멸망했다. [벨로린-킬리 씬]
월에 따르는 계절 변화로 보아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사용하는 달력은(6월에 33일까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비슷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파킨슨과 데스필드가 몇 년 뒤에나 테리얼레이드에 도착한 게 아니라면 [파킨슨~벨로린 구간]은 1025년 1월부터 6월까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있군요.
[파킨슨~벨로린 구간]이 나오기 전은 어떨까요? 직전에 오스발과 율리아나가 대화하는 [율리아나-오스발 씬]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묘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챕터 제20~22장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보입니다.
부활의 법황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두 번째 급보가 날아들었다. 바로 다음날인 10월 26일, 스톰라이더호를 기함으로 하는 카밀카르 함대가 출항했다는 소식이었다. (제20장)
(…) 율리아나는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가을의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제21장)
가을이라 아침은 늦고 (…) (제22장)
흐름상 제23장 초반부의 [율리아나-오스발 씬]의 배경도 10월 말~11월 초 가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제22장에서는 아침부터 정오까지 폴라리스군이 다벨군과 전투를 치른 게 전부고, 그동안 율리아나와 오스발은 계속 같은 배 안에 머물러 있던 것으로 보이니까요. 카밀카르에서 다림까지 가는 데도 시간이 걸렸을 테니, 일단 11월 초로 가정하지요.
이번엔 [파킨슨~벨로린 구간]의 뒤를 볼까요? [오스발-자유호 씬] 역시 계절 묘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안개는 이미 푸르스름한 빛깔을 띄고 있었다. 아침이 머지 않았다. 오스발은 노를 끌어당겨 보트 위에 내려놓았다.
어디선가 비슷한 서술을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율리아나-오스발 씬]으로 돌아가 볼까요?
오스발은 다시 노를 당겼다. / 별빛을 삼킨 안개는 오스발의 팔다리에 휘감기며 고요히 흘렀다. 빛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안개가 감도는 것으로 보아 아침이 머지 않았다.
[율리아나-오스발 씬]과 [오스발-자유호 씬]은 공통적으로 안개 낀 새벽을 배경으로 하는군요. 이쯤에서 챕터 제23장의 시간 흐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율리아나-오스발 씬]1024년 11월 가을, 안개 낀 새벽[파킨슨-데스필드 씬]
1025년 1월 겨울
[킬드온-소사라 씬]1025년 1~2월 겨울[이루미나-에름 씬]1025년 1~2월 겨울[바스톨-하드루스 씬]1025년 초여름[벨로린-킬리 씬]1025년 6월 33일 여름[오스발-자유호 씬]연월과 계절 미상, 안개 낀 새벽
시간순으로 본다면 마지막 [오스발-자유호 씬]의 배경은 폴라리스가 멸망한 1025년 6월 33일 즈음이나 그 이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율리아나와 함께 있던 함대에서 출발한 오스발은 1024년 11월에서 1025년 6월 말까지 최소 일곱 달 동안 보트에서 노를 젓다가 자유호와 만나는 셈입니다.
좋습니다. 살다 보면 긴 항해를 할 수도 있죠. 그럼 『폴라리스 랩소디』 세계의 통상적인 시간관념을 살펴봅시다.
『폴라리스 랩소디』 첫 장에서 노스윈드 해적단이 남해에서 카밀카르 함대를 습격한 것은 1024년 봄입니다. 탈출한 율리아나와 오스발이 추위에 떨지 않고 새알을 까먹는 것을 보면 초봄은 아닌 듯하니 이때를 4월로 가정해 보겠습니다.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것은 제9장, 초가을에 돌입하는 것은 제18장이며 [파킨슨~벨로린 구간]에 도달하기 전까지 겨울이 오거나 해가 바뀌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따라서 『폴라리스 랩소디』 본문은 마지막 챕터인 제23장을 제외하면 1024년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그림1] 1024년 봄 ~ 1024년 가을 키 드레이번의 이동 경로
일반적인 이동 시간을 추측할 수 있도록 위의 지도와 함께 간단하게 키 드레이번의 행적을 보지요. 4월에 남해의 이보레 열도 인근에서 레보스호를 탈취한 키는 며칠 후 미노 만에 상륙합니다. 거기서 육로로 오스발과 율리아나를 쫓아 테리얼레이드와 검은 황야를 거쳐 다림에 도착하지요. 이때가 5월 초입니다. 챕터 9장에서 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추적에 나선 키는 다림(육로)→라트랑(해로)→레갈루스(해로)→라트랑(해로)→잊혀진 탑(해로)→다림의 여정을 거칩니다. 해로의 경우 라이트버드호와 마법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레갈루스 등 육지에서 지체한 시간도 있으니 공제해도 되겠지요. 키가 챕터 18장에서 트로포스를 만나 다림으로 돌아오는 때가 가을이군요. 참고로 그동안 휘리는 다림 외곽에서 다벨로 돌아가 록소나, 팔라레온, 다케온을 정복한 다음 폴라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반년은 다림에서 카밀카르까지 몇 번을 왕복하고 주변 4개국과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기간입니다.
오스발이 탄 보트와 자유호는 거리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보트를 내리기 전에 오스발은 율리아나와 함께 카밀카르 함대의 스톰라이더호에 있었습니다. 카밀카르 함대는 다림 해역의 먼바다에 떠 있었지요. 먼바다란 앞바다가 아닌 바다, 육지에서 가깝지 않은 모든 바다를 일컫습니다. 강조를 하는 까닭은 글쓴이인 제가 먼바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아주아주 멀리 있는, 예컨대 태평양 한가운데 같은 바다인가 하고 오해했었기 때문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10월 26일에 카밀카르에서 출발한 카밀카르 함대는 며칠 후 다림의 동향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 방관자의 역할을 자처하지만 여차하면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건 다림에서 몇 시간이나 며칠 거리의 위치가 되겠지요. 아래 본문으로 계산해 보면, 정오에 다림에서 출발한 자유호가 다음날 동틀녘에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대충 하루 거리라고 치겠습니다.)
정오. (…) 그 함성 속에서 자유호는 먼바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22장)
오스발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
“조금 후 동틀녘이면 자유호는 이 배를 따라잡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그 전에 떠나겠습니다.” (제23장)
지도를 놓고 보면 이렇게 됩니다.
[그림2] 1024년 가을 자유호와 스톰라이더호(카밀카르 함대)의 위치
[오스발-자유호 씬]을 다시 볼까요? 카밀카르 함대를 떠난 오스발이 자유호와 만나는 때가 폴라리스 멸망, 즉 1025년 6월 33일 이후일 경우, 오스발은 7개월 이상 항해를 한 것이라고 앞서 계산했지요. 카밀카르 함대는 다림을 관찰할 수 있는 하루 거리에 있었고요. 그렇다면 오스발과 자유호는 하루 거리의 바다를 반년 넘게 떠돈 것이 됩니다. 게다가 그 하루 거리에서는 함대를 동반한 전쟁이 벌어졌지요. 겨울과 봄이 지나든 말든, 사트로니아와 카밀카르, 필마온, 다벨이 협공해서 폴라리스를 멸망시키든 말든, 레갈루스 전함까지 합세해 폴라리스와 공멸하든 말든, 저 멀리 보이는 다림이 불타든 말든…… 그런 속세의 일과 자신들은 아무 관계 없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발발한 대규모 전쟁에 아무 영향도 안 받는 것처럼, 표표하고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술래잡기를 한 것입니다. 반년 동안 술래잡기를 하려면 카밀카르에서 페리나스 해협까지 몇 번은 왕복해야겠군요. 물론 전쟁의 화마를 피해 다니면서요.
재미있게도, 오스발과 자유호가 나머지 세상을 무시하는 것처럼 세상도 그들의 존재를 무시합니다. [벨로린-킬리 씬]에서 작가는 노스윈드 해적단의 일곱 선장(과 라이온)의 운명을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오닉스, 두캉가, 라이온은 죽었고, 킬리, 하리야, 트로포스는 살아 있으며, 돌탄은 그랜드파더호의 피격과 함께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미 죽은 알버트 선장은 물수리호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지요. 하지만 키와 자유호, 세실리아, 그리고 자유호에 남겠다고 고집한 식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키나 자유호의 상황을 암시하기는 간단합니다. “키 선장님은 결국 오지 않는 건가.”라거나 “자유호는 끝까지 소식이 없군.” 같은 문장만 한 줄 넣으면 되니까요. 1024년 다벨 vs 폴라리스 전쟁에서 하리야와 노스윈드 해적단은 키와 자유호가 끝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에 굉장한 아쉬움을 드러냈으므로, 킬리나 벨로린이 폴라리스 멸망을 목도하며 한 번쯤 키를 언급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니, 언급해야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식 명단에 이름이 없다 뿐 키 드레이번과 자유호는 노스윈드 해적단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함선으로서 폴라리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실제 전력에도 도움이 되니(세실리아까지 합류한다면 더더욱), 폴라리스가 불리한 전쟁을 벌인다면 키를 의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라이온과 두캉가의 사망을 세 마디로 꼼꼼하게 알려준 작가가 키 드레이번을 깜박하고 안 넣지는 않았겠지요. 그 장면에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거나 언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언급을 배제한 것입니다. 마치 ‘여기선 키와 자유호를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처럼요.
시간 여행의 refrain : “…는 자신을 먼 곳으로 보냈다”
※『퓨처 워커』,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 후반부가 언급됩니다. 중요 사건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나온 이야기를 간단하게 되짚어 보겠습니다. 『폴라리스 랩소디』는 1권 1장부터 23장의 [벨로린-킬리 씬]까지 1024년 4월~1025년 6월 33일을 거의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한 서술적 장치(예컨대, 2권에서 키와 바라미의 대결을 나중에 보여주는 것과 같은)가 없다면 23장의 피날레인 [오스발-자유호 씬] 역시 6월 33일 또는 그 이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몇 가지 어색한 점이 있습니다. 하루도 안 걸릴 거리의 바다를 반년 넘게 항해해야 하고, 그 거리에서 일어난 전쟁을 없는 존재처럼 취급하지요. 그럼 보기와 달리 [오스발-자유호 씬]은 시간순으로 배치된 게 아니라는 뜻일까요?
[율리아나-오스발 씬]1024년 11월 가을, 안개 낀 새벽[파킨슨~벨로린 구간]1025년 1월 겨울 ~ 1025년 6월 33일 여름[오스발-자유호 씬]연월과 계절 미상, 안개 낀 새벽
23장의 시간 흐름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위에서는 그냥 넘어갔던 [율리아나-오스발 씬]과 [오스발-자유호 씬]의 공통점이 눈에 띄는군요. 작가가 둘 다 안개 낀 새벽으로 묘사한 것이 우연은 아니겠지요. 중간의 방해꾼만 없다면 같은 날 새벽으로 간주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마침 우리는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었으니, 문제의 구간을 가위질하고 앞뒤를 붙여보겠습니다.
오스발은 다시 노를 당겼다.
별빛을 삼킨 안개는 오스발의 팔다리에 휘감기며 고요히 흘렀다. 빛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안개가 감도는 것으로 보아 아침이 머지 않았다. 방향을 짐작할 것은 아무데도 없었지만 오스발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규칙적으로 노를 당겼다 밀었다.
그리고 오스발은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다시 어둠을 만든 오스발은 자신을 먼 곳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394면)
오스발은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싼 안개는 이미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아침이 머지 않았다. 오스발은 노를 끌어당겨 보트 위에 내려놓았다. 보트는 이제 해류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오스발은 두 손을 모아 깍지 낀 다음 무릎에 얹었다.
그리고 오스발은 어둠을 향해 말했다. (420면)
꽤 그럴듯하게 이어지네요. 오스발이 눈을 감은 사이 어떤 깊은 상념에 잠기거나, 세계가 보내는 응답을 듣거나, 이곳이 아닌 곳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났다가 오거나, 시간이라는 책의 몇 장 뒤를 훔쳐보는 장면 같은 것을 넣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듯한 기분이 드는군요.
앞뒤로 이어지는 서술 사이에 전혀 다른 장소나 시간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이 독특한 기법은 『폴라리스 랩소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퓨처 워커』와 『눈물을 마시는 새』의 극후반부에서도 비슷한 서술 기법을 사용하거든요. 잠깐 두 작품의 본문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아일페사스는 의아했지만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들어올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으로 머리를 곧추세운 아일페사스는 곧 자신 속으로, 그리고 모든 세계로 들어섰다.
(…)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일페사스는 전 대륙의 곳곳을 향해 질문들을 보냈고 일자왕의 질문에 ‘대륙은 대답했다.’ (『퓨처 워커』 4권 제10장)
문득 용은 자신이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용을 부르고 있는 것은 지금-이곳이 아니었다. 용은 난처하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에 따라 그의 분화공들이 가볍게 벌름거렸다. 그때 또다시 부름이 들려왔다.
용은 그 부름을 거절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스화리탈은 날개를 펴 지금이 아닌-이곳이 아닌 곳을 향해 날아갔다.
(…)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부름이 다가왔다.
‘저 곳으로, 그때로.’
아스화리탈은 날아올랐다.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제17장)
생략한 (…)에는 다른 장소 또는 다른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퓨처 워커』에서 아일페사스는 ‘자신 속으로 들어가’ ‘대륙이 대답하는 것’을 듣습니다. 덕분에 제자리에서 날개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그덴산과 카레한 탑,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또는 일어났었는지) 알 수 있었지요. 『눈물을 마시는 새』의 아스화리탈도 비슷하지만, 아일페사스보다 좀 더 적극적입니다. 대답을 듣는 대신 현장으로 날아가 직접 목격하니까요. 『피를 마시는 새』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내 시간을 멈춰 놨지.”
“멈춰 놨다고요?”
“조금 전,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조금 전에 소리는 말리의 턱에 충돌하고 있었어. (…) 그 순간을 멈춰 놓고 여기로, 그러니까 내게는 미래이자 (…) 네겐 현재인 이 시간으로 잠시 온 거야. 책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춰 놓고 몇 장 뒤를 훔쳐보고 있다고 할까?” (『피를 마시는 새』 8권 제40장)
서술 기법은 『퓨처 워커』나 『눈물을 마시는 새』와 다르지만 『피를 마시는 새』에서도 일종의 시간 여행이 등장합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용인 아일페사스와 아스화리탈과 달리 『피를 마시는 새』에서 시간 여행을 한 화자는 인간이지만요. 『피를 마시는 새』의 화자는 현재도 과거도 아닌 미래로 건너가며 미래의 인물과 대화까지 나눕니다. 화자는 그것을 ‘책 몇 장 뒤를 훔쳐보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다른 작품은 더 없을까요? 또 다른 장편 소설인 『그림자 자국』은 한층 스케일이 큽니다. A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B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A와 B 모두 존재하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를, 마치 게임에서 어떤 루트를 선택하듯 자유자재로 오가며 시간을 주물럭거리니까요.
『퓨처 워커』,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그림자 자국』에는 모두 각각의 특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넓은 의미의) 시간 여행이 나오고 있습니다. 작가가 시간 여행 소재를 즐겨 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군요. 물론 4개 작품에 시간 여행이 나온다고 해서 5번째 작품에도 반드시 나온다는 법은 없지만, ‘여기서 뜬금없이 웬 시간 여행이야?’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이미 4개나 선례가 있으니까요.
다시 『폴라리스 랩소디』와 오스발에게 돌아가 봅시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스발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눈을 감고 시간 여행쯤 한다고 해서 놀랄 건 없겠지요. 만약 오스발이 1024년 11월에 머무른 채로 『피를 마시는 새』의 화자처럼 미래를 ‘내다본’ 거라면 어떨까요?
[파킨슨~벨로린 구간]이 오스발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시간 여행인 경우 앞서 살펴본 몇 가지 곤혹스러운 의문점이 해결됩니다. 먼저 오스발과 자유호는 하루 거리의 바다를 반년 동안 항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새벽에 출발한 오스발이 얼마 후 자유호와 만난 것뿐이니까요. 불타는 다림과 격파되는 레갈루스 함대를 애써 못 본 척할 필요도 없어지지요. 폴라리스 멸망 장면에서 키가 배제된 까닭도 설명됩니다. 1025년 6월 33일은 키가 오스발과 재회한 후거든요.
오스발과 키가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스발은 ‘그들이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므로’ ‘이 새벽에 하나는 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 개의 태양은 물론 오스발 자신과 키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두 태양 중 하나가 떨어진다면 키와 오스발 중 한 명이 죽을 수도(중세시대 결투 버전), 애초에 없었던 존재가 될 수도(『그림자 자국』 버전), 아니면 둘이 하나로 합치될 수도 있겠지요(『퓨처 워커』 또는 『눈물을 마시는 새』 버전).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끊은 것으로 보아 작가는 오스발vs키의 결과를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고 싶은 것 같습니다. 기껏 일부러 여백으로 남긴 부분을 오스발의 상상에서 스포일러 해버리면 김새지 않겠어요?
앞에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이 가설로 설명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챕터 23장 제목인 「자유, 복수, 해류를 위한 리프레인refrain」입니다. refrain을 사전에서 찾으면 두 가지 정의가 나옵니다. ‘그만두다, 자제하다’를 뜻하는 동사와, ‘후렴, 반복구’를 뜻하는 명사지요. 문법 구조로 보나, 소설 제목에 포함된 ‘랩소디'(=광시곡)와의 조화로 보나 여기서 refrain은 명사인 ‘후렴’을 뜻한다고 봐야겠군요. 국어사전에 의하면 후렴은 ‘노래 곡조 끝에 붙여 같은 가락으로 되풀이하여 부르는 짧은 몇 마디의 가사’라고 합니다. ‘되풀이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폴라리스 멸망이 실제인 경우, 챕터 23장은 시간순대로 사건을 나열할 뿐이므로 특별히 반복적인 특성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굳이 연결을 짓자면 이 세계의 이야기-각자가 자유나 복수의 편에서 싸우고 악마들이 투표를 하는 것과 같은-가 이전에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되풀이되리라는 암시가 될 수 있겠군요. 폴라리스 멸망이 오스발의 상상인 경우에는 ‘후렴’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테면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할 수 없어서 폴라리스가 멸망하는 상황’은 첫 번째 후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두 개의 태양 중 하나가 떨어지는 상황’은 두 번째 후렴이 될 테고요. 둘 중 누가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세 번째 후렴도 나올 수 있겠지요. 물론 앞에서 본 ‘이 세계의 이야기가 되풀이된다’는 암시도 여전히 지닐 수 있습니다.
태양이 둘일 수 없기에
슬슬 머리가 아파오므로 여기서 다시 한 번 상황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우리를 당황시키는 폴라리스 멸망 장면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설1. 폴라리스 멸망은 실제로 일어났다. 챕터 23장은 지금까지처럼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설)
가설2. 폴라리스 멸망은 오스발의 상상(또는 시간 여행)이다. 챕터 23장은 현실-상상-현실 구조를 띠고 있다. (상상설)
상상설은 실제설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상당 부분 해소해 주므로 제법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그렇지만 오스발은 왜 굳이 이런 상상을 해서 우리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걸까요? 상상에 불과하다면 꼭 필요한 장면도 아닌 것 같은데요. 폴라리스가 멸망해야 할 이유는 알겠는데(투표 결과라고 하니까요. 잠깐, 그런데 무슨 투표였죠?)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금 전에 인용했던, 자유호를 맞이하며 오스발이 하는 대사를 다시 자세히 들어봅시다.
“둘 다는 안 되는군요. 그들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겠지요. (…) 오십시오. 이 새벽에 하나는 떨어져야겠지요.”
오스발이 키를 만나려는 이유는 ‘이 새벽에 하나는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떨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오스발은 뭘 보고 ‘그들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맥락상 앞에 나온 [파킨슨~벨로린 구간](그중에서도 폴라리스가 멸망한 장면)이 오스발의 판단 근거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발의 대사가 다소 추상적인 감이 있으니,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제설과 상상설에 각각 입각해 오스발의 대사를 풀어 써보겠습니다.
실제설(a) :
내 악마적인 능력으로 지난 반년 동안 육지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보니 역시 복수가 둘이면 안 되는군요. 인간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하이마스터들이 복수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대행하는 폴라리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라도 선장님과 내가 담판을 지어서 인간에게 태양을 한 개만 남겨줘야겠습니다.실제설(b) :
내 악마적인 능력으로 지난 반년 동안 육지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보니 역시 복수가 둘이면 안 되는군요. 인간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하이마스터들이 복수를 선택한 결과 복수를 대행하는 폴라리스에게 멸망을 돌려주었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라도 선장님과 내가 담판을 지어서 인간에게 태양을 한 개만 남겨줘야겠습니다.
상상설 :
내 악마적인 능력으로 미래를 내다보니 역시 복수가 둘이면 안 되는군요. 인간은 아직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하이마스터들이 복수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대행하는 폴라리스는 반년 후면 멸망하고 말 겁니다. 하이마스터들이 복수를 선택한 이상 내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둘 수는 없지요. 선장님과 내가 담판을 지어서 인간에게 태양을 한 개만 남겨줘야겠습니다.
실제설에 따르면 키와 만나서 ‘태양을 하나 떨어뜨리려는’ 오스발의 행동은 취지가 좀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키와 오스발이 뭘 하든 폴라리스는 이미 멸망했으니까요. 폴라리스를 재건한다고 해도, 그럴 거면 왜 반년 전에 미리미리 키와 만나지 않았는지 의아해집니다. 만약 폴라리스가 오스발이 ‘복수’를 실천하는 데 별 관계가 없다면, 오스발이 왜 폴라리스 멸망을 근거로 ‘그들은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한다’ 같은 말을 한 것인지 설명하기 곤란해지지요. 바스톨이나 발도 로네스 등 ‘자유’를 실천하는 자들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치게 된 상황에서 오스발이 무슨 수로 ‘복수’를 실천한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반면 상상설에 따르면 오스발의 목적이 보다 분명해집니다. 인간이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해’ 폴라리스가 멸망하는 미래를 오스발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미래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키와 만나려는 것이지요. 오스발의 바람대로 태양이 한 개만 남는다면 그 미래는 오지 않는 셈입니다. 폴라리스는 멸망하지 않을 테고(물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만 2025년은 아니겠지요) ‘복수’를 실천하는 하리야, 트로포스, 킬리, 알버트는 하이마스터의 도움을 받아 계속 자신의 뜻을 관철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스발이 어떤 방식으로 ‘복수’한다는 건지도 조금은 실마리가 잡힙니다. 하리야, 트로포스, 킬리, 알버트의 선례를 참고할 수 있으니까요(어쩌면 참고가 가장 많이 되는 인물은 키일지도 모르지만, 특수한 위치에 있으므로 일단 제외했습니다).
‘투표는 투표고, 폴라리스는 폴라리스 아닌가? 둘을 꼭 연결 지어야 하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애당초 악마들은 모처럼 인간 세계에 왔으면 인간들을 골려주면서 유람이나 다닐 것이지 뭣하러 투표 같은 걸 했을까요? 다시 오스발의 설명을 들어 봅시다.
“그들은 이 세계에 살 수 없습니다. 존재할 수는 있지만 생존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나라면 이런 식으로 살겠다는 거죠. 그리고 그들은 인간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정했지요.”
하이마스터들은 자신이 살아갔으면 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인간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다수결에 따라 오스발도 자동으로 ‘복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복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각각 다른 세력에 흩어져 있었다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오겠지만, 일곱 명-걸어다니는 ‘복수’인 키를 포함하면 여덟 명-이 모두 노스윈드 해적단인 것이 우연은 아니겠지요. 폴라리스는 그들이 세상에 ‘복수’하면서 세운 나라고요. 앞서 오스발의 대사에서 ‘폴라리스가 복수를 대행한다’고 쓴 것은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하이마스터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대행하는 인간들을 상징적으로 선택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을 제공하기까지 합니다. 벨로린과 바라미는 실제로 폴라리스의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하지요. 오스발의 상상에서 라오코네스는 마음만 먹으면 폴라리스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니힐은 파킨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고, 테리얼레이드에서 죽은 자들을 불러모은 직스라드가 어떻게 발도 로네스를 도울 수 있을지도 짐작이 갑니다. 아델토와 기릭스도 상상 가는 바가 있으며, 역시 오스발의 상상에서 벨로린이 하는 말로 미루어 보아 자신들이 선택한 인간을 돕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걱정 마. 에레로아와 아델토가 지켜줄 테니.” “기릭스도 오래는 못 버텨.”).
악마들끼리의 능력 우위를 가리는 건 지난한 일이 되겠지만, 또 단순하고 조야한 논법이긴 합니다만, 초월적인 능력을 빌려주는 악마의 머릿수로만 따져도 넷(오스발까지 포함하면 다섯)에게 선택받은 ‘복수’, 즉 폴라리스는 전력 면에서 ‘자유’보다 우세합니다. 다수결의 결과가 ‘복수’를 가리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고, 실제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폴라리스는 카코스다이몬이 현현하기 전에 이미 승승장구하던 다벨군을 괴멸하고 다섯 번째 검이라 불리던 휘리를 무너뜨렸지요. 어떤 극적인 반전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예컨대, 두 개가 된 태양을 인간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이제까지 폴라리스를 지지하거나 방관했던 모든 나라가 돌연 힘을 합쳐 폴라리스를 협공하는 것과 같은-폴라리스가 지금까지의 기세를 타고 한동안 번영을 누린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겠습니다.
앞서 서술 기법 대목에서 [파킨슨~벨로린 구간]이 실제인지 상상인지에 따라 챕터 23장의 제목이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을 살펴보았는데요. 챕터만이 아니라 작품 제목도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폴라리스 랩소디’를 한국어로 바꾸면 ‘북극성 광시곡’이 되지요. 랩소디/광시곡이 어떤 음악을 말하는지 백과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요약 : 형식 ·내용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곡풍의 기악곡.
본문 : 광시곡(狂詩曲)이라고도 한다. 랩소디란 원래 서사시의 한 부분 또는 계속적으로 불리는 서사시적 부분의 연속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성격적으로는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이 그 한예이며, 랄로, 드보르자크, 바르토크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드뷔시의 《클라리넷과 관현악을 위한 랩소디》에는 이러한 경향이 거의 보이지 않고, 브람스의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는 발라드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다. 자유분방한 요소는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채를 띠는 환상곡이라니, 『폴라리스 랩소디』의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리네요. 특정 민족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집단을 무대/주인공이니까요. 사실 랩소디의 정의는 지금 논의하려는 주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작품 제목을 음미하기 위해 찾아봤습니다. 특별히 비극적이라거나 희극적이라는 특징은 없어 보이는군요. 그럼 폴라리스를 둘러싼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환상곡풍의 노래를 BGM으로 상상하며 제목을 다시 봅시다.
폴라리스 멸망이 실제라면, 폴라리스 랩소디라는 노래는 구슬픈 곡조를 띠게 됩니다. ‘제국력 1024년, 원대한 뜻을 품은 남해의 한 해적단은 항구도시에 나라를 세워 폴라리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오왕자의 검을 분쇄하여 반왕의 출현을 막아냈지만, 운명의 장난-복수를 선택한 악마들의 투표와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반응-에 의해 영웅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건국 1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인생무상. 어쩐지 교훈적인 역사 소설 같은 기분이 듭니다.
폴라리스 멸망이 오스발의 상상이라면, 즉 현 시점에서 폴라리스는 다벨과의 전쟁에서 막 대승을 거두었으며, 어떤 앞날이 그들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면-하지만 희망적인 관측이 가능하다면-폴라리스 랩소디는 다른 분위기의 노래가 됩니다. ‘제국력 1024년, 원대한 뜻을 품은 남해의 한 해적단은 항구도시에 나라를 세워 폴라리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오왕자의 검을 분쇄해 반왕의 출현을 막아낸다. 악마들의 지지까지 얻어낸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복수할 것인가?’ 노래의 뒷부분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대서사시의 일부를 들여다본 기분이 듭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수’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며 오히려 이를 통해 ‘인간의 종족적 완전성’을 이루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희망에 대한 노래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는 인간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지와도 연결되니, 자아 성찰적인 여운도 남기네요.
나오며
드디어 이 글의 끝이 보입니다. 폴라리스가 멸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왔군요.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 폴라리스가 멸망했다는 주장은 5권 제23장 394~419면[파킨슨~벨로린 구간]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전제로 한다. (실제설)
- 실제설은 오스발과 자유호가 하루 거리의 바다를 반년 동안 항해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 서술 기법으로 보아 394~419면[파킨슨~벨로린 구간]은 오스발의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상상설)
- 상상설은 작품의 개연성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 부분 보완한다.
- 상상설에 따르면, ‘폴라리스가 멸망하고 라이온, 두캉가 등이 사망하는 시간선’은 오히려 일어날 수 없는 미래다. 그 미래를 저지하기 위해 오스발과 키가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줄 요약 : 폴라리스 안 망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음에 드는 가설을 선택해서 미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상상설을 좋아합니다.